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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an 03. 2021

신혼을 예찬하던 부부는 지금

결혼은 현실이 맞다.
남자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가는 것처럼
즐겁고 설레는 신혼을 꿈꾸던 로망이 현실이 된다.

- <신혼예찬> p.151 '신혼의 밤' 중에서



결혼 후 2년간의 시간을 기록한 <신혼예찬>은 제목 그대로 신혼생활을 예찬하는 에세이다. 결혼이 현실인 이유를 남자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로망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라 한 데서 짐작되듯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핑크, 그것도 아주 진한 핑크다.

독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는데, 한편에서는 '결혼 권장도서'라며 치켜세워준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진짜는 겪어보지도 못하고 하는 이야기'라며 책 내용과 실제 결혼생활과의 간극을 지적했다. 결혼 10주년, 20주년을 앞둔 선배들이 주로 후자에 속했다. 선배들은 말했다. 아이까지 낳아보라고. 아이를 낳아야 '진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고.


실제로 주위의 사십 대 이상 부부 중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여전히 핑크색인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음 생에는 지금의 배우자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아니, 아예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겠다는 말을 꽤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 내 결혼생활도 그들이 말하는 '진짜'에 도달할까? 결혼생활의 본질은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고 삶을 버거워하며 함께 지쳐가는 것일까? 임신 전 우리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염려했던 한 가지는 우리 둘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3년 9개월, 부모가 된지는 1년 9개월.

선배들이 말하던 '진짜' 현실 안으로 성큼 들어온 지금, 우리 부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득 <신혼예찬>에 담긴 신혼의 풍경과 현재의 우리를 비교해보고 싶어 졌다.






남편을 두고 간 여행지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애틋하다. 좋은 경치를 보면 다음에 함께 와야지, 맛있는 걸 먹으면 다음에 사줘야지, 하는 마음은 둘이 함께일 때는 가질 수 없다. 몸이 떨어져 있지만 나의 생각과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남편은 여행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면 대화의 폭도 훨씬 넓어진다.

<신혼예찬> p.73 '각자의 시간' 중에서


신혼 때는 명절이나 연휴에도 며칠씩 따로 고향을 방문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남편 없이 친구들과 여행도 종종 다녔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세트상품처럼 늘 붙어 다니지 않고 서로의 시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겠다던 우리,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NO'. 둘만 있을 때는 독립적인 삶이 선택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이를 낳고는 친구들과의 가벼운 술자리나 혼자 하는 여행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상대방의 양해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배우자는 내 몫의 육아까지 두배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말 중 하루 정도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남편과 교대로 자유시간을 가지곤 한다. 일주일에 겨우 서너 시간이지만 임신 전 통째로 주어졌던 하루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영화도 보고 싶고 서점에도 들르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해 늘 쫓기듯 집에 온다.

신혼 때와는 분명 달라졌다. 결혼을 하면 내 생활이 없어진다는 말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내가 귀가하기 무섭게 바통을 이어받고 나가는 남편의 걸음도 바쁘다. 혼자서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으면.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그 짧은 외출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혼자 하다가 결혼 후 남편과 나눠하니 오히려 편해졌다. 게다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미루지 않고 빨리빨리 해치우고 있어서 집은 오히려 더 깨끗하고 빨래도 미혼일 때보다 빠른 주기로 세탁기에 들어간다. (중략)
집안일뿐 아니라 서로의 사정과 기분까지도 ‘분담’하는 진짜 부부가 되어간다.

<신혼예찬> pp.125~127 '가사분담' 중에서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던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자취방과 다름없었다. 식사는 대부분 밖에서 해결했고 빨래나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삼십 분이면 뚝딱 끝낼 수 있었다.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이 각자 자취 때만큼만 분담해도 결혼 전보다 훨씬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21개월 아이가 사는 집에는 늘 끝내지 못한 집안일이 있다. 청소나 빨래처럼 시작과 끝이 정해진 일들은 집안일 중 극히 일부다.

하루 종일 아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먹이고 치우고 닦기를 반복한 남편은 내 퇴근시간 무렵이면 이미 지쳐있고, 나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런 남편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남편이 마지막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양치를 시키고 거실을 정리한다.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아이 재우기. 어르고 달래어 겨우 재우고 나니 아까 정리한 거실이 다시 엉망이다. 아이를 재우느라 펼쳐 든 책과 어느새 다시 흩어진 장난감들. 휴, 이건 내일 아침에 치워야지, 하는데 남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아, 손톱도 깎아줘야 하는데.


육아기의 집안일에는 청소와 빨래, 설거지와 요리처럼 딱딱 나누어 맡을 수 없는 들이 더 많다. 공평하게 나눈다고 일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남편은 신혼 때보다 더 많은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고 나도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은 더 지저분하고 빨래는 늘 쌓여있다.

얼마나 고된 하루를 보냈는지 상대방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 종종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던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다. 연애 시절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헤어져서 살아온 시간이 무려 30년이라 못다 한 이야기는 언제나 있다. “오빠는 어떤 어린이였어?” “오빠도 사춘기 겪었어?” “군대에 있을 때 편지 많이 받았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남편의 인생에서 지나간 페이지를 들춰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남편의 지난 인생에 참여해 그 시절의 남편과 수학여행이나 엠티 같은 곳에서 만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신혼예찬> p.149 '신혼의 밤' 중에서


- 기저귀 몇 개 없지? 같은 걸로 주문할까?

늦은 밤 침대 위에서, 남편을 지척에 두고 보낸 카톡 메시지다. 남편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말소리에 어렵게 재운 아이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이제 남편과 나 사이에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양손을 하나씩 잡느라 둘이 손을 맞잡을 일이 잘 없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도 남편과 나는 나란히 눕지 않는다. 'ㄱ'자 모양으로 머리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두고 발만 한쪽으로 모은채 잠자리에 든다. 혹시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우리 몸을 방패로 쓰고 있다.


신혼 때처럼 특별한 날이면 케이크를 준비하지만, 케이크의 주인행세를 하지 못하고 한걸음 물러나 아이가 촛불을 끌 때까지 기다린다. 케이크는 제대로 분위기를 잡아보기도 전에 아이의 습격을 받아 초토화되기 일쑤다.

갑작스러운 사고라도 일어나면 서로의 안부보다 먼저 아이의 안부를 챙기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언제나 아이 몫.

나는 남편에게, 남편은 나에게 더 이상 1순위가 아니라는 걸 서로 인정하고 있다.






선배들의 말이 옳았다. 아이를 낳은 후 결혼생활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확실히 신혼 때처럼 핑크색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가늠해보그 또한 신혼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당시의 남편은 그저 남자친구에서 한 단계 승격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없는 미래를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내 삶에 깊이 포개진 유일무이한 존재. 게다가 남편은 이제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출산 후 결혼생활의 풍경과 우리 관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이 좋다. 나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이 아니라 '가습기 좀 씻어주면 안 될까?' 부탁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으면 '진짜'를 경험할 거라며 겁주던 선배들도 결국은 '다음 생'을 운운하고 있었다. 이번 생에 당장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공식적인 제도가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아이가 자라 부모의 도움과 관심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때가 오면 다시 우리 둘이 남게 될 걸 안다. 그때는 다시 손을 맞잡고 걷고 싶어서, 나름 치열한 삶의 한 절기를 지나는 지금, 다시 넘어오지 못할 선을 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서로에게 오래 상처로 남을 말은 하지 않으려고, 가끔은 의식적으로라도 아이보다 남편을 먼저 안남편의 이름을 눈 맞추며 부르려고 한다. 육아기를 지나 또 무수히 많은 인생의 절기를 지난 후 둘만 남았을 때, 신혼 때처럼 다시 핑크색 공기 안에 있으려고.


아이는 남편의 등에 머리를 대고 자는 걸 좋아한다. 옆으로 돌아누워 불빛을 숨기며 몰래 스마트폰을 만지는 남편의 등에 아이가 동그란 머리를 대고 있을 때면 남편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그 순간만큼은 운동에 관심 없고 눕기 좋아하는 남편이, 그래서 푸짐하고 따뜻한 등을 가진 남편이 내 아이 아빠라서 참 다행이라 여긴다.

원래는 내 것이었던 남편의 등, 아이한테 잠깐 빌려주지 뭐.


어릴 때는 ‘부부’란 반드시 어떤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서로 다투지 않고 마냥 아껴주는,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의 모습만이 부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부모님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그리고 세상 모든 부부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끈은 때로 자녀이기도 하고 서로의 생계이기도 하며 때로는 함께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나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끈이 너무 거칠고 무거워서 다투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 부둥켜 쥐고 있는 모습이 또한 부부인 거다.

<신혼예찬> pp.108~109 '부부' 중에서


원래는 내 것이었던 남편의 '손'도 아이한테 잠깐 빌려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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