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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an 16. 2021

일할래? 애 볼래? 물으신다면

신입 때 팀장님이셨던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는 잘 자라는지, 남편은 잘 지내는지, 부서원들은 무탈한지를 차례로 물어보신 후에 약간 짓궂은 말투로 내 안부를 물으신다.


일하는 게 낫니, 애 보는 게 낫니?


놀기 좋아하고 철없던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나는 어쩐지 마냥 가벼운 내가 되고 싶어진다. 역시나 깊은 고민 없이, 오전 내내 전화와 회의에 시달린 당시 상황에 비춰 재빠르게 대답했다.

"애 볼 때가 낫죠. 낮잠 잘 시간도 있고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덜 바쁘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는 선배님의 말투. 아차 싶었다. 육아를 해보지 않은 분이 가진 '육아가 회사일보다 쉽고 편하다'는 생각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해버린 듯하여. 화제가 바뀌기 전에 얼른 말을 보탰다.

"근데 또 애 볼 때는 일하는 게 낫다 싶었어요. 집에서 애 키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거든요."
"그래?"

"그럼요.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잖아요. 애 볼 땐 나가서 일하고 싶고 일하니까 또 집에 가고 싶은 거죠."


육아휴직 중에 창밖을 내려다보면 직장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이의 침이나 밥풀이 묻을 일 없는 깔끔한 옷차림, 줄 서서 잘 설계된 식단을 받아먹고 퇴식구에 반납하면 그만인 구내식당, 정해진 출퇴근 시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무엇보다 내가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타인들과 스스로의 인정.

복직을 앞두고 느낀 두근거림은 오랜만의 직장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설렘도 컸다.


하지만 돌아온 직장에는 늘 깔끔한 옷차림일 수밖에 없는 이유, 정해진 출퇴근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업무, 월급과 인정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휴직 중에는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이다.

마음에 반하는 일을 상사가 시켜서 부득이하게 해야 할 때, 밖에서 만나면 언성 높여 싸워보기라도 했을 무례한 고객에게도 고개 숙여 '네네'를 연발해야 하는 순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열두 시간 모니터만 보느라 지친 눈이 가로등을 달과 혼동했다는 걸 알아차린 퇴근길에는 스마트폰 달력 어플을 열어 퇴사 시기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오빠는 회사 다니는 게 좋아, 애 보는 게 좋아?"

휴직 중인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회사 다니는 거!!!"

요즘 많이 힘들구나, 애 보느라.

짠한 마음이 일다가도 한편에서는 쿡 웃음이 나온다. 불과 반년 전 육아휴직을 앞두고 설레어하던 게 누구더라? 동료들을 두고 혼자 포상휴가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기쁨을 감추느라 입꼬리에 힘주고 다니던 사람이 누구였지?

하지만 남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니까, 설사 모르더라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남편이 좋아하는 맥주와 치킨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기로 했다. 건배!


출산 후 1년 만에 복직한 건 직장생활에 대한 엄청난 열망이 있어서는 아니다. 나는 회사 안에서의 대단한 성공을 바라는 야망 있는 직장인도 아니다.

남편과 번갈아 육아휴직을 한 건 육아와 돈 버는 일 모두가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둘 중 누구라도 한쪽에 특화돼 있었다면 역할을 나눌 생각도 했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조금 더 잘 돌본 건 딱 아이와 더 오래 함께 있었던 시간만큼이었고 지금은 주양육자인 남편이 더 잘 돌본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둘 다 열심히 일하고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 보상으로 적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 고만고만한 직장인들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에서는 육아가 더 쉬워 보이고 집에서는 직장일이 더 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일종의 기대감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속한 세상은 힘들지만 여기만 탈출하면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

육아휴직 후 남편은 비로소 말로만 공감하던 육아의 고충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자기 정말 힘들었겠다, 하고 지난날의 내 노고를 인정해준다. 나도 요즘은 반성 중이다. 야근하는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는 은근한 압박을 섞어 보낸 과거의 메시지들을, 대화창에서도 남편의 머릿속에서도 지워버리고 싶다.


휴직기간 내 단골질문이었던 "언제 와?"는 1년이 지나 "몇시쯤 올거야?"로 돌아왔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힘내지 않은 날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을, 대학 때는 취업을, 취업 후에는 직장에서의 인정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나의 24시간은 늘 힘을 내고 있었다.

육아에 전념하면 아이의 세끼 밥을 챙기는 일에 마음정성쏟을 것이고, 직장일에 전념하면 경력개발을 위해 온 힘을 쓰겠지.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고 삶이 큰 차이로 편해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삶을 선택한 이상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때보다는 더 많은 힘이 들겠지만 그래도 하루는 여전히 24시간. 두 가지를 병행해도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힘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당분간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우는 삶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이나 육아에서의 빈틈에 대한 구실이 생기고, 아이를 향한 마음도 더 애틋해진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직장에서의 고단함을 메워주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돈'이다. 두툼한 지갑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얇은 지갑보다는 더 많은 걸 우리 가족에게 허락해줄 거라고 믿는다.


일할래? 애 볼래? 묻는 질문에 하고 싶은 대답은 사실 따로 있다.

"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요? 둘 다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데."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아이와 남편에게 충실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으면서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너무 큰 욕심일까. 하지만 꿈꾸는 건 자유다. 꿈꾸고 동경하는 창밖의 풍경은 지금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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