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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Sep 23. 2020

엄마와의 시간을 잊어버린 아이

어제도 밤 열 시가 지나 집에 왔다. 엊그제는 열한 시 반 퇴근. 지난주에는 52시간 근무 한도를 다 채웠다.

야근이 길어진 날이면 아이는 먼저 잠에 든다. 하루 종일 아이와 눈 한번 맞추지 못하는 날도 있다. 어제도 겨우 10분, 퇴근 직후에 한번 꼭 안아본 후에 씻고 나왔더니 벌써 잠들어 있었다. 하루 사이 또 자란 아이의 잠든 얼굴만 실컷 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훨씬 더 좋아한다. 1년 3개월, 뱃속에서부터 계산하면 2년이 넘는 엄마와의 시간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아빠'라는 말은 곧잘 하면서 '엄마'라는 말은 손에 꼽힌다. 엄마가 화장실에 가면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아이가 아빠가 잠깐 안 보이면 악을 쓰며 울어댄다. 그럴 때면 엄마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 옛날 아빠들이 이랬겠지?


아침 7시, 아이가 아직 잠든 시간.

발밑으로 밀려난 이불을 끌어다 배를 덮어주고 잠든 아이를 본다. 업무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다시 하루를 시작할 기운이 난다.



남편과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거실을 정리한다.

요즘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동요집인가 보다. 며칠째 매트 위에 펼쳐져있는 걸 보니. 어제 아침 작은 방 수납장에 넣어둔 주방놀이 장난감도 다시 나와있는 걸 보니 잘 가지고 노는 모양이다. 다른 집 애들은 싱크대를 똑같이 재현한 주방놀이 장난감도 가지고 놀던데 하나 구해봐야겠다.

남편의 펼쳐진 책에는 색연필로 마구 그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아이의 흔적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매트 위를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가 눈앞에 그려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으로는 제균티슈를 뽑아 매트 위를 닦는다. 눈에 보이지 않던 부스러기들이 소복이 모인다. 떡뻥과자, 김 부스러기, 얼룩으로 남은 수박까지. 엄마 없어도 잘 먹고 잘 놀았구나.

마지막은 블록 조립. 흩어진 블록을 모아 매일 다른 모양으로 조립해두고 옆에는 바퀴 달린 장난감들을 세운다. 매일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고 싶은 엄마 마음을 아이는 알까.


아이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복직 후에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더 커졌다. 직장생활의 고단함이 주는 반작용이거나, 전업 육아를 할 때는 육아노동이 주는 피로감 때문에 행복이 가려져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아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하게 차오른다. 마치 남편과 처음 연애하던 시절 같다. 그때는 특별한 걸 먹거나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마냥 좋았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궁금하고 보고 싶던 말랑말랑한 감정을 아이 덕분에 다시 경험한다. 게다가 이번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지도 않을 것 같다. (남편을 향한 마음이 옅어졌다는 의미는 절대, 절대 아니다. 그저 종류가 살짝 달라졌을 뿐.^^)

우리 엄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나를 궁금해하고 내 얼굴 보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를 보면.


아이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지면서, 전에 없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지금이야 남편이 육아를 전담해주고 있으니 마음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지만 그다음은? 남편도 나도 회사일을 대충 대하는 성격은 아니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지도 않지만 계신다 해도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손에 맡기기는 불안하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시기에 아이는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돌볼 수 있는, 필요한 총량의 관심과 보호를 나 아닌 누구라도 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아이는 식물처럼 누구라도 물만 주면 되는 생명은 아니다. 나의 빈자리가 나비효과처럼 아이의 훗날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될까 봐 솔직히 걱정된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와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이 엄마가 되고도 나 개인의 삶을 철저히 지켜내겠다던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 사회적인 성공보다 아이와의 시간이 백배 더 간절한 요즘이다.


아이는 매일 조금씩 자란다. 얼마 전 몸무게가 10kg을 넘었고 복직 전 잘라준 앞머리는 어느새 눈썹 언저리까지 길었다. 혼자서 옷도 벗을 줄 알고 아빠의 2:8 가르마를 싫어하는 취향도 생겼다.

조만간 아이는 말하는 법을 익힐 테고 하루가 다르게 할 줄 아는 단어들이 늘어갈 텐데, 그 소중한 순간을 대부분 놓치게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아쉽다. 아이의 시간을 직접 보지 못하고 남편의 입을 통해 요약된 상태로 전해 들어야 한다는 게 서운하다.


지금 당장, 이 아니라 먼 훗날까지 생각하면 일을 관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절대적 시간의 양도 점차 줄어들 것이고, 나중에는 오히려 아이 쪽에서 나와의 시간을 거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하지만 직장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변화다. 당분간은 머릿속으로 직장인으로 사는 삶과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삶을 저울질하게 될 것 같다.


나와 동생을 키우는 일에 인생을 쏟은 엄마를 안쓰러워했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데는 엄마의 시간을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비록 몸은 힘들고 때때로 고단했을지라도 엄마는 행복했다는 걸,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리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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