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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Jun 07. 2016

오늘은 당신을 양보하기

나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지 않게

늦은 아침을 먹고, 언제쯤 여자를 데리러 가면 좋을까 생각하던 남자에게

메시지가 울립니다. 다름 아닌 여자였는데, 집에 일이 생겨서 못 볼 거 같다고.

진짜 미안하다는 짤막한 내용의 문자.


몇 날 며칠을 아니 오늘 새벽까지도 '어디 갈까'를 두고 고민하는 여자였기에, 

처음엔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하다가 큰일인가 싶어 걱정도 하다가.

'오늘은 나도 한게임 넣어줘' 이내 친구들에게 연락을 넣습니다. 


오랜만에 축구장에 나온 남자에게 쏟아진 친구들의 뼈 있는 인사들.

어쩐 일로 나왔냐부터 여자친구가 공 차고 싶대? 잠정 탈퇴 아니었어?

주말이면 공격수로 활약하던 남자는 여자를 만나고부턴 딱 한번 나왔을 뿐이라서,

멋쩍은 웃음으로 미안하단 말만 거듭합니다.


숨이 차게 뛰어다닌 남자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습니다.

가벼워진 몸, 시원한 기분은 여자와 있을 땐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었으니까요.

서로의 스케줄을 뻔히 아는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 일은 금기사항 같은 거라서,

혹여 사랑이 식었다는 말로 들리진 않을까 

다른 누군가를 만나겠단 말은 암묵적으로 피해 오기 바빴으니까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던 남자는

자신이 팔로우한다는 걸 알게 되면 몹시 흥분할 

여자의 SNS에 들어가 보는데, 만나기로 했던 날 올라온 여자의 멘션 하나.


도서관에 갔던 엄마는 갑작스런 소나기에 우산을 가져와 달라며 전화를 하셨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집에 온 엄마는 자식과 부모는 이렇게 다르다며, 자신은 

곧장 너에게 달려갔을 거라 말하셨다. 샤워 후 나가기 싫었던 

못된 딸이 적는 어느 저녁날의 소회.



좋은데 허전했던 순간들의 의미는

용기의 타이밍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함께할 용기보다 떨어져도 변치 않을 용기,

남자는 이제 내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말에 우리 놀러 가기로 했던 거 말야, 조금 미뤄도 될까?

친구 녀석 하나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안 만나주면 코 비뚤어질 때까지 마실 거래.

그러다 밤늦게 헤어진 여자친구라도 찾아가면...

그런 최악의 구남친이 내 친구가 되게 두고 볼 수는 없잖아." 


착 가라앉는 목소리로 여자는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응, 그러자. 그날 있잖아.

집에 엄마 혼자만 두고 나갈 수가 없었어. 여태까지 잘 그래 왔으면서 그날은.

나만 나가서 너랑 맛있는 거 먹고 좋은데 가면,

내가 진짜 나쁜 딸이 될 거 같았어."


알면서도 아는 척할 수 없는 남자는

"우리 잘하자.

부모님한테도, 친구들한테도.

우리 지금보다 조금씩 더 잘하자."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게 한 건 아닌지.


나보다 일찍 당신 곁을 지켰던 사람들.

나보다 오래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주라고, 내가 당신을 좋아한 건 아니니까.


우선순위를 정하려고

나를 제일 첫 번째 줄에 세워달라고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우리는 오늘 만나지 않기로 합니다.

그대가 머물렀던 풍경속으로 

오늘은 당신을 양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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