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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Oct 16. 2016

먼 슬픔이 돼버린 너

시간이 불어와 이별도 풍화된다

오늘은 카레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한솥 가득 끓여 놓으면 일주일은 든든하니까.


평소엔 잘 서지 않는 싱크대 앞에서

카레에 들어갈 채소들을 다듬었다.


탁탁 탁탁-

양파를 썰고 감자를 썰고 당근을 썰 차례였는데

오랜만의 칼질은 서툴렀고

결국 당근을 썰다가 나는 그만 손가락을 베었지 뭐야.




상처는 언제나 그런 것 같아.

눈 깜짝할 새 생겨버리니까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어.


손에 바를 연고도 대일밴드도 

꼭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만 필요해 지니까.

별수 없이 난 따가운 채로 남은 재료를 마저 다듬었어.


그렇게 완성된 카레를 그릇에 담아 먹기만 하면 되는데

생각 밖의 사고는 또 생기더라.

탁자로 들고 가는 동안 그릇을 떨어뜨려 버렸거든.


몇 시간 노력해서 만든 게 

바닥에 처참히 쏟아지니까

치울 생각도 

다시 떠서 먹을 생각도 않고

나도 넙죽 무릎을 감싸 안고 쏟아진 카레처럼 멈춰서 있었어.





차라리 누구를 위해서였다면 괜찮았을걸

왜 내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저 한 끼 아무거나 때우면 그만인데

피곤하게 일을 벌여선 

미욱한 내 모습만 들춰냈을까.


그런 나한테 화가 나서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어.

근데 이상하지, 그치지가 않는 거야.


누가 봐도 울만한 상황이 아닌데

손이 조금 베었다고

카레를 쏟았다고 

눈물이 나는 나이는 한참 지났는데.


그런데 나는 진짜 슬퍼했어.

얼마간을 그렇게 울다가 

새삼 니가 떠난 지 참 오래됐구나 싶더라.


분명 그때는 세상이 떠나갈 듯 

평생치의 눈물샘이 말라 버릴 듯

눈에서 너를 떨궈냈거든.

그리곤 다시는 울 일이 없을 거 같았거든.


생활 속의 작은 슬픔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나를 지나쳤으니까.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릴 줄은 몰랐어.



아버지의 묘를 방문했던 한 작가는 그랬어.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게 된다고.

대신 그가 슬펐던 건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진실이었지.


그는 더 이상 전처럼 슬퍼하지 않는 이유를

풍화를 들어 표현했어.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해안의 절벽들이 처음부터

가파르진 않았을 거잖아.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져서 지금의 험준한 모습을 이룬 거잖아.

 그리고 지금의 모습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지.

또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자신을 내줄 테니까.



이제 넌 먼 슬픔이 돼버린 걸까.

자연스럽게 너는 가까운 슬픔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린 걸까.

오늘 난 슬펐다.


네가 없는 사실보다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점점 사라질 너에 대한 슬픔.

또 이를 알아버린 나.


                                                                                   


  > 김훈,  <라면을 끓이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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