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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Oct 02. 2016

아빠를 만나러 시간을 달리다

지난 주말 나의 아주 가까운 지인이 결혼을 했다.

귓가에 매우 익숙한 딴 딴 따단~ 이 울리고,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세 살 많은 선배 언니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평소 볼 수 없었던,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이쁜 얼굴로 식장으로 들어왔다. 



결혼식 자리에서 미혼의 20대 싱글 여성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와야 할 대상은

멋지고 건장한 청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은 얼굴에 주름진 50대 남성의 실루엣에 고정됐다.


굳게 다문 입술과 표정 변화 없이 경직된 얼굴에는 

말할 수 없이 묵직하고 강한 애정, 내지는 슬픔이 배어있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고들 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하얀 실크 카펫 위를 행진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왜 나는 환하게 반짝이는 언니의 옆자리,

언니의 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언니를 인도하고

조용히 신부석에 앉는 모습. 

어쩌면 이 입장을 누구보다 애타게 준비하고 

두고두고 되새길 사람은 언니가 아닐 거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 또한 언제가 될지 모른 채

 50미터도 안 되는 저 길이를 걸어오기 위해서

 평생을 살고 계신 것은 아닐까.


평소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주장하며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기 일쑤인 자취녀는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무능력, 무뚝뚝, 무신경 3無 아빠의 전형이다. 

좋은 기억은 강화하고 나쁜 것은 망각시키는 

뇌의 보편적인 습성과 반대로

아빠를 향한 나의 정보 저장체계는 

상당히 오랫동안 편파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왔다.


이제 막 어른이 된 드라마 속 딸들이 읊어대는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라는 상투적인 대사는 나조차도 가장 먼저 

그에게 시구할 볼로 점찍어 두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가 나에게 주었던 물질적, 정신적 결과물들을 

빠진 것 없이 꼼꼼하게 반추해보기 시작했다.


함께 보냈던 시간과 기억들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쏟아내는 동안 

내 머릿속 타임리프는 상당거리를 비행해야 했다.


혹여나 받은 게 있을까 불안했던 마음은 

종착역에 다다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무소유에 대한 기쁨으로 변해갔다.


그를 마음껏 비난하면서 내가 느낄 일말의 양심에 대한 가책은 

그렇게 사전에 원천 봉쇄되어 

가뿐하게 나를 심판자 자리로 들어 올려줬다.




back to the past...

유년기 대표적인 학부모 방문의 자리인 열두 번의 운동회에서도 

초-중-고등학교 시작과 끝, 입학-졸업식의 자리에서 조차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아빠는 어디에 서있었을까?




걸음마를 배우며 

나란 사람이 세상에 한 발을 내디뎠을 순간에도 

그가 곁에 있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면으로부터 처음 공중부양을 시도하며 

두 발을 모두 자전거 페달에 싣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그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면서도

많은 말을 하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의 눈길을 나에게서 

한시도 거두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혼자 할 수 없는 운동 중의 하나인

 배드민턴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것도 

역시 그였다.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톡 떨어지는 셔틀콕에도 

인내심을 발휘하며 

한 번의 '핑퐁'이 완성될 수 있도록 

묵묵히 서브를 넣어주었다.



하나의 선을 만들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점들이 필요하듯 

내가 온전히 앞으로 걸어 나갈 시점들이란 연장선속에서 

그는 충실히 하나의 '점'으로서

그 역할을 채워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형체를 내어주며 

점의 모습은 연속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소리 없이 사라져 갔기에

존재 여부를 잊게 했다.


어느새 선이 돼버린 나는

알알이 박혀있는 점 같은 아빠와의 일상을

무심히 지나쳐 왔다.

분명 있었는데, 비록 손에 꼽는 순간들일지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타임리프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미래에서 온 치아키는 친구로서 자신과 함께 보낸

기억들을 모두 잊을, 과거에 살고있는 여고생 마코토에게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떠난다.




미래에서도 기다릴게요. 

영원히 나란 '선'의 '점'으로 존재해주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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