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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05. 2017

일상의 여가

음악회 이야기

바리톤 최강지(우), 윤오건(좌) 교수님

러시아 무정부주의자이자 혁명가였던 크로포트킨은 그의 책 “빵의 쟁취”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혁명으로부터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빵이 확보된 후에는 여가가 최고 목표이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의, 식, 주)를 해결하고 남는 시간이 바로 여가다. 여가는 일상의 유지를 위해 애쓴 자신을 위로하고, 동시에 일상의 유지를 지속할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누릴 수 있는 것 중에는 다양한 예술적 활동이 있을 수 있다. 예술적 활동은 스스로 직접 예술적 창작을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이 실행하는 특정한 예술적 활동을 지켜보면서 예술적 감흥을 느끼는 방법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적 재능이 균일하지는 않다. 따라서 보통의 우리는 특별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예술을 감상함으로써 그들의 예술적 성과를 통한 대리만족의 기회를 얻게 된다.


오늘 저녁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문희정 아트 홀)에서 아주 특별한 음악회를 관람하고 왔다. 규모도 작고 별 다른 시설도 없었지만 아주 강렬하고 동시에 너무나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남성 바리톤은 지극히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 그들이 나눈 음의 높낮이에 따른 구분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바리톤은 그 어원이 deep-toned, deep-sounding 이므로 인간 영혼을 울리는 최고의 음색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바리톤이 부르는 춥지 않은 겨울밤의 화음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감동적이었다. 몇 번의 박수와 bravi를 외쳤다. 


그러나,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행복했지만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를 지그시 누른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 내가들은 아름다운 음악은 위대한 예술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예술은 자본이라는 또 다른 필터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자본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예술이라 하더라도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음악회에서 연주를 듣는 그 순간, 여전히 어느 곳에서는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을 것이며 진상 손님을 맞이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저 아름다운 음악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세계이며 설령 그들에게 그 음악을 들려준다 하여도 그들은 내가 느끼는 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역설적으로 크로포트킨의 이야기를 이루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곧 그 혁명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왜냐하면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남는 시간을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그런 혁명은 인간의 역사 이후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분 바리톤의  음색과 자본과 여가.... 생각이 복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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