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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20. 2016

앙가주망

참여, 그리고 일상.

Eugène Delacroix 작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1830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오늘, 나의 블로그에 기록된 글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참담함은 시간의 경과와 무관해보인다.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지고 상황은 나빠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오늘 검찰은 개가 가지는 속성을 조금 배신하고, 주인을 향해 약간 으르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아직 개의 속성이 남아있는 관계로 약간 으르렁거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00만 국민의 분노 앞에 하는 수 없이 으르렁거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일부도 주인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참으로 가증스럽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 위대한 국민의 에너지를 느끼는 계기 정도는 되었다. 주권자의 함성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여 두 눈 부릅뜨고 이 사악한 집단들이 또 다른 음흉한 술수를 부리는지 우리는 감시해야 하고 분노해야 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매우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지나친 계산적 행동에 진력이 났을 뿐 아니라, 각자의 명분논리에 스스로 잠식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특정 누군가의 지도력에 의해 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시민들 또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강력한 지도자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80년~90년대를 거치며, 참으로 인간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이념적 동질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까지 단절되어야만 했던 가슴아픈 기억을 나는 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2016년에도 그 문제는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중립이나 무관심을 견지하는 것은 오히려 범죄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천 6백년전 그리스의 개혁가 솔론(Solon, 기원전 630 무렵~560 무렵)은 개혁 입법의 하나로 ‘중립금지법’을 만들었다. 솔론의 중립금지법의 취지는 이러하다. “도시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한다” 이것은 공동체의 위기를 외면하고 개인의 안일만을 꾀하거나, 어느 편이 이기는가를 주시하며 위험을 피하는 사람은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솔론은 “가장 잘 다스려지고 있는 폴리스는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합심해 가해자를 벌하는 곳”이라고 했다.  2016년 11월 20일 오늘, 나는 이렇게 중립지대에서 안전하게 회색으로 서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마음으로 정리해버렸다.

Honore Daumier 작 An unhappy young child hung on a wall by his nurse, who has gone dancing. 1850
2014. 11. 20 

1.
북한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국제적 간섭은 남, 북한이라는 정치적 체제와이념을 떠나 썩 유쾌하지는 않다. 엄밀하게 내정 간섭의 냄새도 나지만 인권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기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펴고 있는 정책의 대부분은 반 서민(공무원 연금, 보육료, 무상급식, 노인기초연금정책의 폐기 또는 예산 중단), 반자주적(전시 작전권 문제, 독도 영유권문제) 냄새가 난다. 당연한이야기겠지만 이 정부의 기초가 그런 집단이었고 또 그 밑동은 친일, 친미에 맞닿아 있으니 어쩔 수 없는현실이다.

수능이 끝난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싫다. 아니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싶은 모양이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선생으로서참담함 역시 숨길 수 없다. 

2.
장 폴 사르트르는 프랑스 출신의 현상학자다. 사르트르는 1924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전후 프랑스 지성계를이끈 레이몽 아롱, 조르쥬 캉귀엠, 모리스 메를로 퐁티를만나게 되는데 특히 메를로 퐁티와의 관계가 눈길을 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는 모두 현상학자로서 또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때로는 같은 길을, 때로는 서로 엇나간 길을 걷기도 하면서 전후 프랑스의 지성계를 주도하게 된다.1929년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르트르는 같은 시험에서 2등을 한 시몬느 드 보봐르를만나 세간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계약결혼을 했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대표하는 말로 앙가주망(우리말로 한다면 참여 정도로풀이된다)이라는 말이 있다. 만년의 사르트르가 극좌 청년조직의전단 살포까지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상상력이나 의식의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과 그것의 실천을주장한 사르트르로서는 너무나 당연함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한 앙가주망이란 그 어느 것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의식이 객관적 세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지고 자기 자신을 거기에 참가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지식인의 윤리로 통용되어야 할 철학이라고주장했다.

3. 
다시 풍찬 노숙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눈 돌리고귀 막고 굽어진 채로 그럭저럭 시간만 보내야 할 것인가? 새벽 눈 뜰 때마다 현실은 무겁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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