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1)

by 김준식


노자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다. 그가 살았다는 춘추시대 楚나라는 서기전 1000년쯤에서부터 역시 서기전 400년까지 중국의 장강(중국명 양쯔강) 유역의 국가로서 주나라의 제후 熊 씨가 통치한 나라였으므로 熊楚로 불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 초나라 사람인 노자의 성은 이 씨(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이다.)였는데 성씨 때문에 당나라를 세운 이 씨들에 의해 노자는 졸지에 대성조大聖祖라는 이름이 붙은 추존 황제가 된다. 웃기는 일이다.


노자가 지었다는 도덕경은 81장 5000자로 된 詩다. 즉 音律이 있는 문학 작품이다. 완전한 문장으로 서술된 것이 아닌 시적 함축의 이미지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도덕경의 한글 해석은 조금 명성이 있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문자가 가진 특성상 유사한 이미지의 범위를 가지게 되고, 그런 범위 내에서 도덕경의 의미를 통찰해내는 것은 온전히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공자와 노자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학설들이 구구하다. 다만 공자가 노자보다는 한 수 아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증거로 사마천의 사기 노자 열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40대의 공자가 60대의 노자를 만난 뒤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孔子去, 謂弟子曰: ‘鳥, 吾知其能飛; 魚, 吾知其能游; 獸, 吾知其能走. 走者可以爲罔, 游者可以爲綸, 飛者可以爲矰. 至於龍吾不能知, 其乘風雲而上天. 吾今 日見老子, 其猶龍邪!’”(공자가 돌아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새는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짐승은 달린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달리는 것은 덫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낚을 수 있고, 나는 것은 주살(矰 - 화살과 같은 개념)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노자를 보니 바로 용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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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그 노자가 지었다는 도덕경을 읽다가 문득 이 구절에서 멈췄다.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絶學無憂)

(도덕경 제20 장)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동안 엄청난 양의 지식을 쌓았고, 또 여전히 쌓으려고 한다. 그런데 쌓으면 쌓을수록 허전하고 불안하며 동시에 쫓기는 느낌이다. 뭔가! 이 느낌은? 그렇다고 쌓은 지식의 총량이 어마어마한가? 아니다!! 한 줌도 안된다. 노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빈정거리며 내게 말한다.


“봐라! 쌓으려고 노력하더니 별거 없구먼! 결국 그게 그것이지. 배운다는 것은 무용한 일일 지도 몰라!" 요즘 말로 뼈 때리는 말인데 반박할 것이 별로 없다.


사실 제20 장의 이야기에 대한 답은 제48 장에 바로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학문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쌓아가지만,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에 이르나니, 무위 하면 이루지 못하는 게 없다네.) 마지막이 좀 찜찜하다. 뭔가를 이루려고 역시 뭔가를 덜어내는 느낌! 어쨌거나!!!……


노자는 그래서 배우는 것을 끊으라는 것이다. 사실 인식이 생긴 이후의 내 삶은 배움에 대한 강박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 결과 남은 것은 한 줌도 되지 못하는 알량한 지식과 태산 같은 편견과 엉터리 기준들뿐이다.


그리고 나는 교사다. 그 배움의 축적을 목숨처럼 중하게 여기는 이념 속에서 한평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그리고 그 축적을 강조하고 또 강요한다. 얼마나 무용한 일인가?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뭔가 있어야 덜어낼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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