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특정학교, 혹은 특정인을 공격하는 모양으로 비칠 수도 있고 실제로 공격이 되기도 한다.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업무 줄이기를 고민하다. 연간 거의 10000건에 해당하는 공문을 접수하면서 그것이 선생님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민하는 것은 학교장으로서 당연하다. 누군가 그 공문을(단순 고지 또는 안내 공문 조차도) 관리해야 하고 자주 공문에 따라 기안문을 작성해야 하며, 심지어는 10페이지 이상의 계획서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근본적으로 상급 기관의 공문이 줄지 않는 이상 학교 업무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가망이 별로 없다. 아래의 이야기는 특정 학교를 비방하자는 목적이 아니라 현재 학교의 체제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1. 업무 줄이기의 함정
2021년 학교 혁신과 주관으로 3~4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학교 업무 줄이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 분야에 절대고수이신 밀주초의 #박순걸 교감선생님의 코칭을 받고 강의를 했는데 제법 효과가 있었고 효과가 있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어제 산 길을 걷다가 그 3~4곳의 학교 중 한 곳의 선생님을 만났다. 안부를 묻고 헤어지려는데 불쑥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 “ 우리 학교 업무 줄이기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어요!”
나: “왜요?”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올 초에 새로 오셨거든요!”
……
사실 학교의 업무는 그 명확한 한계를 정하기가 어렵다. 즉,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가 모호하다. 법령 및 조례나 규칙, 그리고 학교의 규칙으로 정해 놓은 것 외에도 생겨나는 업무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업무는 지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거대한 웅덩이처럼 모여들기만 할 뿐 배출되는 사례가 적었다. 그래서 해마다 업무가 늘어나는 마법에 학교 선생님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혁신학교와 행복학교 철학이 확산되면서 업무 줄이기가 교육혁신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경남만 하더라도 도 교육청에서는 교무행정원의 증원과 재교육으로 업무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문제는 2022년 경남교육정보원 산하 교육정책연구소의 중요 연구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2. 시스템인가? 사람인가?
교무 행정원 숫자를 늘리고 정책 연구를 통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시스템으로 업무 줄이기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분명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각 학교마다 운용의 편차는 분명 존재한다. 확실한 통계를 산출해보지는 못하지만 학교 업무 줄이기의 각 학교 별 표준편차의 값은 기대만큼 작지 않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아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학교에서 이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은 학교장이다. 현재 학교의 구조는 학교장의 생각에 따라 시스템 운용의 방향이 결정된다. 즉 학교장이 교육활동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업무는 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부분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학교장이 업무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학교가 많아질수록 업무 줄이기 시스템은 안정화될 것은 분명하다. 아주 간단한 업무 줄이기의 예가 회의를 줄이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학교장의 철학에 따라 달라진다.)
산에서 만난 그 선생님의 말을 분석해보면 새로 부임하신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은 기존의 사라진 업무 중에 몇 개를 되살리거나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 내신 걸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교육활동에 필요하다면 새롭게 업무를 만드는 것은 학교장의 순수 재량행위다. 다만 지난해 학교 구성원들이 고민해서 만든 시스템을 학교장의 철학으로 원점으로 둘리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