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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0. 2018

신독


獨立不慙影 獨寢不愧衾(독립불참영 독침불괴금)


중용의 ‘신독(愼獨)’을 풀이한 말이다. 이를테면 홀로 있을 때, 자기 그림자에게도 부끄러움이 없고, 홀로 잠들 때, 자기가 덮는 이불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바로 신독이라는 것이다. 중용이란 모든 것의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의 본질 이전의 단계, 즉 만물이 가진 본래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중용의 자세란 치우침이 없는 본질적 평형상태를 말하고 그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 혹은 결과가 신독이라는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복잡한 생각이 문득 오늘 아침에 명료해졌다. 결국 문제는 내 속에서 자라거나 또는 쇠락해간다. 내 마음과 외부의 나는,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이제 천천히 아름다워지겠지만 그 역시 계절과 시간의 가면일지도 모른다. 실체를 보는 눈은 늘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이 가을, 가을의 아름다움에 또 얼마나 휘둘리게 될지! 하여 신독이 절실해진다. 


저녁 약속이 있어 퇴근 후 다시 밖에 나갔더니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따뜻한 옷을 꺼내 입는다. 피부가 찬 날씨에 건조해지듯 감각도 건조해지기 쉬운 계절이 왔다. 이즈음의 풍경은 깊은 가을에 대한 준비이며 동시에 냉기를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따뜻한 옷을 꺼내 입듯이 우리의 감각에도 이러한 준비가 있어야 되지만 감각에는 딱히 월동의 준비가 없다. 그래서 겨우 내내 우리의 감각은 동결과 해빙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 봄이 오기 전에 감각은 거의 바스러져 간다. 매년 우리가 그렇게 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에 아마도 이러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각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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