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각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진지도 벌써 8개월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위 K-방역이라고 불리는 방역 체계 덕에 다소 안정세로 접어들어 미세하게나마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내가 소속되어 있으며 평생을 받쳐 일해 온 교육 현장에서 2020년 1학기는 코로나로 인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이미 발생하였고, 또 앞으로도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문제도 매우 다양하고 각각의 사안 별로 강도나 파급 범위도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다.
여러 선생님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러한 걱정과 고민을 공유하고 있으며 역시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분야의 토론회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학기 온라인 수업(준비를 겨우 한 달 정도도 하지 않았다.)을 문제없이 진행해온 이 나라 모든 선생님들의 능력과 에너지를 감안한다면 코로나 이후의 교육문제들도 결국 무리 없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몇 가지 문제는 논의의 방향성에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한 방향성의 문제점을 가지는 현안 중 하나가 코로나로 인한 ‘학생들의 학력’ 문제이다.
이 학력의 문제는 현대 교육이 가지는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에 속한다. 이를테면 학력 향상을 해야 한다는 대 전제는 동일할지 모르나 어떤 방법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그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개입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21세기 세계에서 학력은 자본과 거의 겹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간주된다.
자본이 요구하는 학력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자본 창출에 도움이 되는 학력이다. 외부로 나타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지식이 곧 자본이 요구하는 학력이다. 지금 거의 모든 곳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4차 산업’이라는 수식어의 이면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자본을 창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학교 교육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산업 역군의 양성!’ ‘미래 먹거리’…….
그런데 지금 학교 교육의 상황과는 약간의 괴리가 있어 보인다. ‘배움 중심 수업’ ‘학습 공동체’가 강조하는 지식 습득의 핵심이 산업 역군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가 쓴 ‘삶을 위한 수업’이라는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육의 방향은 어쩌면 4차 산업 사회의 자본의 창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산업 역군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은 지난 세기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내재된 의미는 달라진 것이 없다. ‘4차 산업’을 운운하면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말들은 우리가 지난 세기의 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말들의 21세기 매끈한 버전일 뿐이다. 결국 교육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을 그 방식에 맞게 육성해내야 한다는 목표를 상실할 수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코로나 시기의 학생들의 학력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단순히 먹거리를 위한 교육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의 삶의 모습과 방향을 돌아보고, 그저 먹고살기 위한 과정으로서 지난한 삶의 현장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고자 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노력한다. 코로나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고생하는 분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살피려는 따뜻한 눈길과 마음도 사실은 우리의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한다. 그 교육의 가치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면 교육은 대단히 위계적이다. 위계적이라는 말은 상층과 하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수평과는 배치되는 개념이다. 위계적으로 본다면 생산의 담당자는 하층이다. 상층은 생산의 요구자이자 동시에 설계자이다. 여러 가지 장치들로 인해 상층과 하층이 수평화되고는 있지만 담당 역할 자체가 수평화되기는 매우 어렵다. 어차피 노동자는 있고 사용자는 존재한다. 문제는 그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 인데 현재의 교육체계에서 학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이 노동 감수성은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력 향상 만을 가장 큰 목표로 하여 달려온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자신이 상층에 존재한다고 믿는 위계적 가치관에 매몰되기 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학력은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21세기 현재 코로나가 지배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학력의 문제가 이 능력이라면 우리 교육은 여전히 유물 같은 산업 역군 양성의 패러다임 속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