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오는 날, 저녁 생각

by 김준식
Katsushika_Hokusai_-_Thirty-Six_Views_of_Mount_Fuji-_The_Great_Wave_Off_the_Coast_of_Kanagawa_-_Google_Art_Project.jpg The Great Wave Off the Coast of Kanagawa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0~32

태풍오는 날, 저녁 생각


태풍이 오기는 온 모양이다. 바람과 비가 아파트 베란다 창틀을 때린다. 여러 가지 소리들이 들렸다가 멀어지고 또 가까웠다가 사라진다. 필요한 만큼의 비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비가 와도 우리는 늘 그 상황에 단지 적응해야 하는 존재들일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니 우리는 확실히 이 세계의 주인은 아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주인은 누구인가?


너무나 얕고 좁은 지식을 가지 내가 나의 범위 안에서 무엇인가를 窮究한다고 해서 확실하고 현명한 답을 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저것 들은 바를 토대로 꾸며낼 수 있는 것이래야 겨우 한 줌도 되지 않는 논리일 것인데 (그 논리도 바닥이 훤히 보이는) 자연의 순리와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범위를 확실히 넘고 있다. 하지만 살아온 지난날이 그러했고 또 살아갈 앞으로가 그러할 것처럼 나는 늘 자연이라는 이 공간에서 절대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따라서 내가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할 이 자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 이 비바람 치는 오늘 하루 종일 나의 화두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유신론자들은 틀림없이 神이라고 말할 것인데 도대체 그 神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답을 들을 수 없다. 대략 그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얼버무리고 말거나 아니면 나의 무지를 지적하는데 그들이 지적하는 ‘나의 무지’에 대해서는 나는 늘 동의할 수 없다.


서양 사회에서 신이란 당연히 기독교적 신이거나 아니면 이슬람의 신일 공산이 크다. 종류(신에 대해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불경한 것인가?)가 거의 확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이 신들에 대해 연구를 해 왔지만 21세기가 된 지금도 모호한 것은 변함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90%는 매우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과 그 단어들의 조합에서 오는 언어적 유희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말은 저들도 여전히 신의 존재 방식이나 신의 속성을 모르고 있거나 어쩌면 애당초 없는 것을 있다고 설명하는 데서 오는 언어적 피곤함일 것이라는 추측을 슬그머니 해 본다. 물론 유신론자나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지옥불로 떨어질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동양은 신이 너무 많다. 그것은 역으로 신이라고 특정해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심지어 동양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神이라는 경건한 단어 앞에 雜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도 한다. 그 雜神은 이미 신이 가지는 절대적 이미지를 잃어버린 것으로서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이것저것’의 수준과도 비슷한 의미가 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경건하고 전지전능한 神性의 의미가 깃들어 있을 것인가?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서 있던 큰 회화나무에 매달아 놓은 새끼줄과 그곳에 끼워져 있던 붉은색, 노란색, 천 조각과 잡신의 가치는 동일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동양에서도 이 신은 여전히 모호하다. 아니 일상화되어버린 특정 대상의 중요한 가치 모델로 존재하는 이름이 단지 神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여전히 바람이 거세다. 저 바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과학이다. 그렇다고 과학을 神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학은 신과 가장 거리가 먼 개념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저 바람의 원리를 과학이 설명하기는 하지만 바람의 실체에 대해서는 과학도 여전히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저 비바람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물론 나의 좁고 좁은 지식의 범위지만) 거의 없는 셈이다. 이 무지의 상황에도 아무런 불편 없이 50년 이상을 잘도 살아오고 또 다른 방법으로 窮究해 볼 생각도 의지도 없는 존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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