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쏟아지는 賞들.
상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상이 많은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잘 한 사람을 칭찬하고 그 일을 널리 알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 취지로 상을 준다. 그런데 이 좋다는 표시(상)의 종류가 많아지고 숫자가 많아지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상이 여러 종류에 걸쳐 많아지면 누가 무슨 일을 해서 상을 타는지, 그 일이 과연 상을 줄 만한 것인지, 극단적으로 상 받을 만한 사람이 상을 받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연말이 다가오자 공문에 각종 상을 추천하라는 이야기가 정말 많이 온다. ‘과연 이렇게 상을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당연하게 생긴다. 분야도 정말 많고 또 분야가 예민하지 못한 나에게는 모두 비슷비슷해 보인다.
이유는 천 가지, 만 가지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 그리고 지역 교육청에서 각자 맡은 업무의 성과를 나타내는 방식에 자주 쓰이는 것이 바로 ‘시상’이다. 특정 부서 혹은 특정 업무의 결과 값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표창이든, 그리고 일반적인 상이든 관계없다. 일종의 관행 같은 일이며 이것을 제한할 일도 아니다. 이를테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습에 바탕을 두고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먼저 이 상이 자주 ‘승진’이나 ‘인사’에 반영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상을 받는 사람이 ‘나에게 상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하는 다소 멋쩍은 일이 우리나라의 시상방식이다. 이른바 ‘공적조서’를 통한 방식인데, 형식은 시상자의 상급자가 작성하게 되어 있지만 추정컨데 90% 이상은 시상자 본인이 본인의 상에 대한 ‘공적 조서’를 쓴다. 웃기는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한다. 공적 조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받을 것을 확실하다는 전제가 따라붙는데, 이것을 좋지 않게 표현하자면 ‘짜고 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두 번째 너무 많은 상은 상의 공신력, 가치, 명예를 떨어뜨린다. 상은 매우 중요한 집단의식의 표현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공감이나 동의가 필수적인 요소다. 시상의 대상자가 집단 내에서 그 상의 가치와 지향점과 차이가 많다면 그 상은 물론이고 집단 내의 결속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아주 비밀스럽게 상을 주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상의 근본 취지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래도 저래도 문제다.
세 번째 이렇게 상이 많아도 해마다 상을 받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교 교직원 중에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상을 받으신 분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거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상이 많은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상과 관계없는 일만 하시는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