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등교했다. 오늘은 아주 오래전 계획이 되어있었던 이색 체육 캠프가 예정되어 있어서 나의 철학 수업이 없는 날이다. 결과적으로 지난주 수업이 올해 마지막 수업이 되고 말았다. 1월 중순이 되어야 방학을 하는 관계로 아직 두어 시간 더 수업이 있을 예정이다.
어제 '얼굴 책'(face book) 세상에서 또 한 명의 사람을 차단했다. 정작 그분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차단하는 나는 제법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차단하는 사람은 나였는데 내가 상처를 입다니......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맞이하는 일보다 힘들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다. 길이 다르고, 보는 곳이 다르며,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난세다. 말 그대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장삼이사들이 모두 제 각각 의견을 내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춘추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책략과 모략이 횡횡하는 시절이 지금이다.
그분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교수다.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방략을 제시하는 글을 써 오시는 분이셨다. 언제부터인가 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의 수위가 비난으로 변하더니 최근에는 모략과 매도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물론 나도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고 또 그 수위를 점점 높이고는 있다. 하지만 완전히 경도된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극우, 극좌는 예외로 한다.
그분의 최근 글에서 느낀 것은, 이른바 극우 인사들이 현 정부를 공격하는 대단히 부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그러한 내용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논리로 출발했다면 논리로서 공격하고 논리로서 비판함이 옳다. 하지만 거기에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나 풍문이 개입되면 논리는 사라지고 당파와 진영의 논리가 되고 더 나아가 혐오만 가득한 글로 추락하고 만다.
하여 그 교수에게 현재 교수님이 쓰신 글이 어쩌면 Doxa일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오히려 나를 측은하고 안타까워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놀랍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 모든 것을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오전 내내 유보하다가 오후에 마침내 차단을 결정해버렸다.
Doxa(독사)란 참된 인식이 아닌, 낮은 주관적 인식을 가리켜 부르는 단어다. 즉, 각자가 세상을 보는, 눈에 비친 바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인류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것이 Doxa다. 한자로는 臆見(억견)이라 부르고, Doxa의 반대말은 Episteme(에피스테메)이다. 우리의 의견이 에피스테메는 되지 못할 망정 독사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 정부의 노선은 점점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잃고 동시에 지지를 철회하고 또 반대한다. 결국 선명성과 때를 놓친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수많은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