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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16. 2019

현실에 드라마는 없어

내가 상상했던 삼십 대 모습과 비슷한 구석이 없네.

  지하철 손잡이에 체중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팔 하나 움직일 공간도 나지 않는다. 엉덩이에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하는 지옥철. 무수히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내 코는 나보다 작은 이의 정수리를 향해 있고 그게 싫어 머리를 돌린다. 

  목적지인 을지로역에 내리면 사람이 많다. 느리게 걸어가는 동안 생각한다.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좁은 보폭으로 걷게 되는데 표정도 없이 주춤주춤 걷는 사람들이 다들 좀비 같다. 얼굴에는 ‘졸려, 퇴근하고 싶다. 출근하기 싫어’라고 쓰여있다. 지쳐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계단을 오르면 앞사람 엉덩이가 내 얼굴에 와 있다.

‘아 싫다. 남의 엉덩이에 코 박고 걸어가는 이 자세.’

 회사에 도착해서는 허둥지둥 하루를 보내고 빽빽한 전철에 끼어 아침에 했던 생각들을 곱씹는다. ‘어릴 때 내가 꿈꾸던 커리어 우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서른 살 쯤엔 빌딩 숲 어딘가 내 오피스텔이 있을 거라 믿었다. 빌트인 가전이 채워진 오피스텔에서 거품목욕을 하며 야경을 향해 와인을 홀짝일 줄 알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리고, 빨간 스포츠카로 출근한다. 회사에서는 쉴 새 없이 자판을 움직이고, 통화한다. 퇴근 후 애인과 근사한 저녁을 나눈다. 주말에는 세컨드 차량인 노란색 JEEP에 몸을 싣고 레트리버와 함께 여행 다니며 살 줄 알았는데...     


돌고 돌다 보면 문득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상상했던 삼십 대 모습과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네.

드라마 같은 현실은 없다.

     

“결혼이란 지루한 일상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거예요.” 김창옥 교수

    

  인생 또한 지루한 나날을 꾸준히 이어가는 걸까? 나날이 내 상상과는 멀어진다 생각하면 허탈하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던데 언제쯤 현실에 만족하며 설레게 살 수 있을까?     

  현실에 만족하는 방법을 늘려가려 하는데 쉽지 않다. 그새 고단한 마음이 올라오고 짜증도 불쑥 튀어나오고 미움도 샘솟기 마련이다. 감정을 누르기보다 좋은 것들을 늘려가며 좋은 것들로 채우는 방법을 택했다.

 

 정원이 있는 삶이 내게 큰 안정감을 준다. 마루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쿵쿵 울리는 우퍼 소리가 정원 밖으로 넘어오면 나는 햇살을 등지고 앉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드러눕는다. 바람이 불면 그것을 느끼고, 햇살을 받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편하게 정원에 앉아 있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정말 이렇게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큰 재물이나 성공이 전부는 아니겠지. 조급하지 말자. 

우리집 뚱땡이랑 둘만의 시간


  내게는 어진 아빠와, 말투는 밉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착한 신랑이 있고,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분홍 배를 뒤집어 보이는 방석같이 생긴 고양이도.


  애쓰지 않고 이대로만 살아도 감사할 것 같다. 찰나의 기분이지만 만끽하려 노력한다. 비록 저녁이 되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노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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