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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09. 2019

주관적 쇼핑

재킷 하나로 생각의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그 상황이 싫었다.

   트위드 재킷을 좋아했다. 원피스, 때로는 청바지 가릴것 없이 나름의 매력을 발하는 옷이다. 


  내 팔은 길쭉해서 기성 옷을 사면 팔이 댕강 올라가 남의 옷을 뺏어 입은 듯 어색했다. 맞춤으로 십만 원을 더 주고 구매한 트위드 재킷이 있었다. 안감이 풍부한 나머지 팔목 틈으로 흘러나와서, 시간마다 밀려 나온 안감을 밀어 넣어야 했다. 그럼에도 팔 길이가 맞는 유일한 것이어서 이십 대 때 나의 유니폼이었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녀는 일을 하지 않고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생활 했다. 고급차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생그르 웃는 작은 얼굴엔, 댕그란 눈과 높은 코가 꽉 차 있고, 피부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청바지에 편하게 들던 명품 가방의 입은 늘 아무렇게나 열려 있었다. 그런 그녀가 쇼핑을 한다고 해 같이 매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트위드 재킷이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내 재킷의 열 배는 더 주어야 했다. 그마저도 지금 가격이 많이 내려간 것이라 했다. 얼굴이 화끈했다.

‘미쳤다. 재킷을 백만 원 넘게 주고 산다고? 간절기 재킷을?’      

무심한 척 내려놓는데, 점원이 옷을 꺼내어 주었다.

“입어보세요. 컬러감 좋죠?”      


  점원이 건넨 재킷에 주섬주섬 팔을 밀어 넣었다. 유럽 브랜드라 그런지 팔이 길쭉했다.  팔 길이가 맞는다. 내 옷이었다.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아니 나를 위해 남겨졌다. 친구도 연신 맞장구를 쳤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예뻐요 정말. 근데 비싸서 부담돼요.” 

  점원은 기다렸다는 듯 직원 할인 찬스를 제시했다. 친구가 단골이라 이런 기회가 있다면서.      



  매장에서 나오는 내 손에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재킷을 옷걸이에 걸어 놓는데, 부푼 생각들이 둥실대며 떠다녔다. 

'과소비다 과소비'

'얼마를 벌어야 가격표 보지 않고 쇼핑 할 수 있는걸까?'

'적게 벌면 싼 옷만 입어야 되냐? 그런건 누가 정해?'

'내가 벌어 샀는데 왜 이렇게 찝찝 하지?'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왜 즐기질 못하니? 이거야 말로 돈 값 못하는 것 아닌가?'

  재킷 하나로 생각의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그 상황이 싫었다. 한동안 눈으로만 재킷을 입었다.  


회사 행사가 있던 날이 돼서야 그 쟈켓을 꺼내 입었다. 

 사람들로 꽉 찬 출근길,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어 회사로 향했다. 


 내릴 때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한 움큼 빠져나갔다. 한숨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 내 소매를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 한 순간, 트위드 재킷의 코가 어떤 남자의 가방 고리에 걸려 주우욱 늘어나며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아악! 아저씨! 움직이지 마요!!!”      


  황급히 남자에게 붙어 서서 고리에 걸린 재킷의 코를 빼냈다. 물어내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울상을 했고, 남자는 인사만 건넨 채 버스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바로 재킷을 벗어서는 실을 밀어 넣었다. 울고 싶었다.

‘하... 이런 옷은 자가용 있을 때 사야 되는 거구나. 만원 버스에서 백만 원짜리 트위드라니. 안 어울린다.’     




  


한 번은, 회사로 데리러 온 친구 차에 오르는데 불룩 튀어나온 내 재킷 주머니를 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윤아, 주머니에 핸드폰 넣지 마. 쳐져서 옷 망가져.”

  친구는 연신 ‘그 아이는 말이야.’ 라며 의인화시켰다. 소지품 넣으라고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가 쳐질까 넣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면서도 재밌어서 웃음으로 받아쳤다.

“사람 비위도 안 맞추는 내가 옷 비위를 맞추겠니?”     


  비싼 옷을 사는 그녀는 옷을 귀하게 다뤘다. 세탁 대신 늘 드라이를 맡겼다. 집에 돌아오면 그날 들었던 가방과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어 보관했다. 스무 살 때 샀던 신발들을 8년이 지난 후에도 깨끗이 신고 있다고 했다.   




  내 소비를 돌이켜 봤다. 세일해서, 저렴해서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간 입을 것 같다며 한 두 개씩 사들였던 것이 어느새 장롱 10자를 꽉 채웠다. 해가 지나 옷장을 뒤적이면 꽉 차 있는 옷 틈으로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아, ‘옷이 없어. 입을 옷이 없어’를 중얼댔다.

   옷이 몇 겹으로 쌓아 올려질 때마다 뒤로 밀려 나는 옷더미들이 생겼고, 옷장을 뒤지다 보면 ‘이런 옷도 있었네. 이건 나중에 입어야지.’ 다음을 기약하지만 막상 다음번 장롱을 열었을 때도 그 옷을 찾지 못한 채 ‘옷이 없다.’를 중얼댔다. 그렇게 꽉 차 버린 옷장은 옷을 토해내기 일쑤였다. 




새로 사 온 옷들을 넣어야 할 때가 돼서야  묵힌 옷들은 옷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새 옷이지만 헌 옷이 되어있었고, 마구 구겨져 있거나 고양이 털에 엉켜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휴지통으로 던져 넣었다. 싸게 샀으니까, 미련이 없었다.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소비를 했던 것이다. 헛헛한 마음 채운다며 저렴한 것들을 다량으로 채우던 쇼핑의 허기는 군것질처럼 영양가도, 남는 것도 없었다. 그래 놓고선 입을 것이 없다며 매년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찔끔찔끔 가랑비에 옷만 홀딱 젖는 소비를 하던 나였다.




  신랑에게 옷을 선물 받으며 '질 좋은 것'들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내 연봉도 조금은 올랐고, 묵직하게 지불하고 가져온 옷들에 맞추어 어깨가 뭉툭한 옷걸이도 수십 개 샀다. 

  외투를 옷걸이에 잘 걸어 두고, 입고 온 날에는 먼지를 털어 보관한다. 귀하게 다룬 옷은 몇 해가 지나도 사용감이 덜하다.

 

  더불어 결혼과 함께 장롱 10자를 꽉 채웠던 옷들을 비워냈다. 입어본 적 없던 새 옷들은 '리사이클 서비스'를 통해 기부했다. 이제는 기준 없는 쇼핑을 하지 않는다. 내 주관이 잡혔다.


 옷장이 비워질수록 나도 바뀌어간다. 질 좋고 오래갈 옷들을 삶에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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