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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16. 2019

떠나보낼 수 없는 것들

의리인지, 미련인지 모르겠지만 궁상은 아니오

   손에 익어 십오 년을 써도 질리지 않는 가방이 있다. 스물두 살에 삼만 원 주고 샀던 빨간색 크로스백이다. 가짜 가죽이지만 크로스백은 큼직하고, 튼튼하다. 가방 앞면에 빛바랜 동색의 징들이 제각각 박혀 있다. 군데군데 헤지고 닳아 하얗게 바랜 곳도 있다. 나의 이십 대를 함께 했고, 주말이나 여행 갈 때마다 늘 그것을 찾았다. 오래된 세월만큼 마음과 시간이 쏟아진다. 가방을 빵빵하게 채워 넣어도 부담이 없고 물건이 없이 흐물거려도 추레한 느낌이 좋다. 여행 사진 속 빨간 가방이 돋보인다. 사진의 필터에 따라 쨍한 빨간빛이었다, 붉은빛이었다가 여러 색을 뿜는 가방. 시간이 물들었다. 손길이 머무는 곳에 그 가방이 있다.     

20대와 30대를 보내준 크로스백


  휴대폰을 잘 안 바꾸는 편이다. 많은 데이터를 옮기는 것이 귀찮고, 손에 익어버린 그것을 바꾸는 것에 저항감이 있는 편이다. 내 데이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휴대폰. 초기화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나는 휴대폰을 바꾸어도 이전 폰을 그대로 간직한다. 초등학생 때 샀던 다마고치부터 시작해서 삐삐, 단음의 무료 폰, 모토로라 스타텍, 애니콜, 아이폰 첫 모델인 3gs까지 가지고 있다. 최근 썼던 아이폰들은 네비로도 쓰고,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화면 켜지지 않는 모형의 휴대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묵은 추억들은, 충전기를 찾을 때 까지는 깊숙이 간직되어 있겠지.


10대 때부터 모아 온 나의 연락 도구들 스마트폰 세 개는 네비로, 노래 재생용으로 사용하느라 첨부하지 못했다.


  임신했을 때 큼직하고 탄성 좋은 원피스를 몇 개 샀다. 어떤 것은 목 밑에 단추가 몇 개 있고, 어떤 것은 겨드랑이 양옆으로 절개선이 들어가 있는 ‘수유복’이었다. 모달 소재라던 수유복은 삼 년 내내 질기게도 내 곁에 있었다. 세탁되고 건조기 안에서 빳빳하게 말려지기를 수백 번 했을 수유복은, 처음엔 보풀이 나더니 나중엔 보풀마저 점점 사라지며, 얇아지다 못해 매끈매끈해졌다. 몇 군데는 구멍이 뚫렸고, 구멍은 점점 커지는데, 아직 그것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만큼 편하다. 더는 털릴 먼지도 없을 만큼 야윈 원단이지만 몸에 익어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물건을 가지게 되면 오래 쓰다 보니 내 지인 중 하나는 그런 날 보면서

"이제 얘들에게도 안식을 줘. 얼마나 쉬고 싶겠냐?"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게 "너만 꾸미고 다니지 말고 할아버지 같은 휴대폰 좀 바꾸라."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오롯한 내가 기특하기까지 하던 걸.




   내 첫차는 그랜져 XG였다. 아빠가 몰던 차를 물려받은 것이다.  불룩한 디자인의 보닛은 촌스러움을 업 시켜 주었고, 푸르스름 안이 다 비치는 필름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초보 운전 표시는 일부러 붙이지 않았건만, 누가보아도 미숙한 내 운전은 도로 위 사냥꾼들의 먹잇감이었다. 누군가는 굳이 속도를 줄여 내 옆에 서가며 또 친절히 창문을 내리며 삿대질을 했고, 누군가는 내 앞길을 막아서며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던 사람도 있었다. 핸들에 머리를 박고는 죄송합니다를 녹음기처럼 재생하던 그 날들.


   한 번은 회식이라 차를 상점 앞에 주차해놓고 다음날 찾으러 갔는데 주인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폐차 버리고 간 줄 알았네요."라며 무안을 주었다.

   직장동료에게 "오늘은 내가 차 가져왔으니 우리 좀 멀리 나가서 밥 먹자."라는 말에 "똥차 무서워서 못 탄다.  택시 타자"며 나를 놀려대도. 나는 꼿꼿하게 나의 XG를 지켰다. 종종 핸들을 돌리다 보면 시동이 꺼지기 시작했고, 주차를 하면 XG가 잠들어 버려서 출동 서비스(심폐소생술)를 부르기도 여러 번 했다.

   차를 팔면 오십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백만 원을 들여서 차를 수리해 타고 다닐 만큼 정이 들었다. '달릴 때만 멈추지 말아 다오.' 어르고 달래며 탔던 차라 그런지, 폐차 날짜가 가까울수록 아쉬운 마음이 부쩍 들었다.

    폐차하는 사람에게 차를 넘기기 전 XG안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곤 사진을 찍는 나름의 작별식을 고했다. XG와 작별하기 전 키브니라는 새로운 차를 가져왔을 때에는 XG가 보지 못하도록 멀리 대놓고 걸어 들어가기도 했었다. 무생물일지라도 함께 해 온 연정이랄까.




  그러고 보니 연애도 한 사람과 오래 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신랑에게는 '오빠가 나의 첫사랑이야' 라며 믿지도 않을 말을 둘러댔다.(오빠 공유 닮아서 결혼한 거야.라는 거짓말도 종종 하는데,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래라'며 민망해하면서도 기분 좋아하는 걸 보면 멈출 수가 없다.)

   첫사랑과는 칠 년을 연애했었다. 그 후의 연애들도 연단위로 끊어졌던 걸 보면, 나란 사람 진득한 구석이 있는 듯싶다. 새로운 경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들인 것들은 오래도록 지니는 걸 보면 말이다.


  떠나보낼 수 있던 것들과 보낼 수 없는 것들의 차이는 차지하는 자리가 너무 큰 것들이었다. 사람이든, 차량이든. 고장 나 버려서 혹은 유효하지 않아서.


  떠나 보내고 새 것을 들이고 또 떠나 보내는 반복의 과정들. 그러다 운명처럼 만나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것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며 손에 익어 여물어 가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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