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여정
"기술의 목적은 노동의 절약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랑에 있다." -멈포드
디자이너는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상품은 판매를 위한 것이며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에 초점이 맞춰있다. 너무나 당연한 경제원리이다.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었는데 나는 잘 팔리는 상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국의 소비는 유행하는 것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 유행하면 누구나 그 제품, 그 비슷한 제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 획일화된 소비패턴을 따라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일이 힘겨울 때쯤 공정무역회사에서 일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몇몇 단체들이 커피나 소품류 등을 사입의 형태로 막 들여오던 시기였고 공정무역의 대표적인 상품인 '아름다운 커피'도 공정무역을 활성화시키려는 시기였다.
내가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공정무역 패션브랜드 회사를 들어가게 되면서였다. 그전에는 들어 본 적도 없는 개념이었다. 노동자가 아닌 생산자라는 개념도 뭔가 신기하고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매력 있게 들렸다.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공정무역에서 일하면서 제품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물건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건 안에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영혼이 있는 경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단순히 물건의 만듦새나 쓸모, 효용성뿐 아니라 생산자,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소비는 줄고 가치를 따지는 신중한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넘쳐나는 상품들의 홍수에서 나도 종종 길을 읽고 휩쓸리기 일쑤였다.
공정무역의 주요 거래처였던 네팔의 생산자들과 원거리소통을 하며 제품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단 영어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느린 인터넷이나 전기 사정이 열악했던 네팔은 연락두절이 자주 되었고 이메일 답장을 받는데도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공산품에 익숙해진 한국 소비자들은 조금의 오차도 허용해 주는 않았다. 원단의 색이 고르지 못하거나 물 빠짐(천연 염색), 베틀원단의 특성상 실을 잇는 매듭이 보인다든지, 사이즈의 오차 등 너무나 많은 디테일들이 일반 공장(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퀄리티를 따라갈 수 없었다. 네팔의 생산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소규모의 공장, 또는 공방이라고 불러야 하는 사이즈였다. 대형 공장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 환경이었다. 초창기 우리를 도와주던 일본의 공정무역업체에 전화를 해 하소연하면 생산자의 환경을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면 소비자를 교육시키라고 하셨다. 소비자에게 생산자들의 상품 퀄리티에 눈을 맞추도록 교육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어디에서도 말해준 적 없는 새로운 접근이었다. 제품의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생산자들의 생산 시스템을 바꾸려고만 했지 소비자들을 이해시키고 기다리고 투자하게 하는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진짜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균형사이에서 헤매고 허우적 되던 어느 날, 캄보디아의 장애인 기술학교 <반티에이 쁘리업>에 방문하면서 내가 고민하던 것들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고민 없이 캄보디아행을 택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1년 과정의 봉제반을 갓 졸업한 두 명의 여성 생산자들과 프로덕션을 만들고,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굿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라는 나라의 환경과 장애를 가진 생산자들의 상황에 맞는 제품들을 생산했다. 원단이나 부자재 등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보다는 활용이 쉽고 작업환경에 맞는 디자인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의 상황에 맞게 접근하는 시도는 오히려 캄보디아니까 할 수 있었던 작업들을 찾게 했다. 이것 또한 디자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의 쓸모이지 않을까.
에코백을 앞치마로 만들면서 이제는 나의 쓸모를 바꾸어야 할 때라고 느꼈다. 에코백의 쓸모는 여전히 가방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랍 속의 에코백은 쓸모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쓸모는 물건과 나의 관계속에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서랍속에 에코백이 된 것 같다. 쓸모는 여전히 있지만 쓸모를 찾을 수 없다.
'에코백'으로 살아온 나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이제는 '앞치마'로써 살아가고 싶은 나의 쓸모를 찾아보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쓸모를 찾아 떠날 수 있었던 용기가 다시금 필요한 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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