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eyond taiwa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Nov 16. 2024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언제부턴가 부적절해진 일드는 뭐가 문제였을까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가 군림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런저런 국내 컨텐츠에서도 소개된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不適切にもほどがある, 이하 '부적절')"라는 드라마가 있다.

분명 넷플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데 포스터에 왠 아저씨가 나와 있어서 딱히 재미 없을 것 같아 안 보다가 조승연 컨텐츠에서 내용을 소개하는데 컨셉이 꽤나 흥미로워 실제로 본 소감을 좀 풀어볼까 한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견해로 가볍게 읽어주시길!


일드가 부적절(?)해져버린 이유


'부적절'에 대한 평가를 적어보기 전에 예전에 비해 요즘은 거의 아무도 일드 얘기를 잘 안 하는지를 먼저 짚어보고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솔직히 한 때 잘 나가던 일드가 한드에 비해 몰락(?)한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낮은 몰입감'으로 보는데 몇 가지 요소를 꼽아보자면


첫째, 주제 자체가 비교적 가벼운 주제가 많고 심각한 주제의 드라마도 있지만 깊이가 한드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얕은 느낌이다. 이건 제작 환경과도 연관된 부분인데, 일단 드라마가 10회분으로 짧아 기본적으로 16회 이상 가는 한드에 비해 복잡한 주제를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그려내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큰 플롯 안에 작은 플롯들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매 에피소드에서 시작과 끝을 완결하려는 경향이 한드에 비해 강하다 (따라서 가볍게 한 회 보기엔 좋은데 뭔가 다음 화를 꼭 봐야겠다는 긴장감이 이미 전회에서 해소돼 버리는 경우가 많음)

'쇼무니'라는 클래식 일드의 회차별 에피소드 표 (왼쪽부터 회차/방영일/에피소드/각본/연출/시청률)

'쇼무니'라는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각 회차마다 '서브타이틀' 내지는 부제가 붙을 정도로 각 회차마다 하나의 플롯의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물론 큰 맥락에서의 흐름이란 게 있지만 이렇게 작은 문제가 매 회마다 발생하고 해당 회가 끝나기 전에 문제는 (때부분 해피 엔딩으로) 해결된다. 에피소드 서두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다보니 긴장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재밌는 건 이렇게 에피소드별로 제작이 되다 보니 각본 및 연출을 담당하는 사람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다. 왜냐면 전체적인 흐름(숲)보다는 각 에피소드 자체로서의 완결성(나무)가 한드보다 좀 더 강조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한드며 미드며 전체 스토리 속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하지만 이것들은 그저 큰 맥락의 지루함을 좀 덜어주는 양념 정도의 역할에 그치는데 일드는 배꼽이 배보다 더 큰 느낌이다.


셋째, 주제의 재탕이 한드보다 많다. 위의 쇼무니만 해도 1998년 드라마 성공을 계기로 2000년 2002년 그리고 2013년 총 3회에 걸쳐 '재탕'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이런 류의 시리즈가 꽤 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이걸 또 영화로까지 만든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 내에서 스토리를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마보다는 긴장감 내지 몰입감이 좀 낫긴 하지만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개인적으론 많았다. 게다가 새로운 역할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요 캐릭터나 배경을 어느 정도 이어가야 하다보니 창의력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아이보우는 올해로 무려 23시즌 닥터X는 7시즌 (맨 우측은 영화판 탁터X

물론 미드에도 프렌즈, 슈츠,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시즌제 인기 드라마가 있지만 미국은 스토리로 승부를 보는 느낌이라면 일본은 이미 구축된 캐스트의 아성(?)으로 승부보려는 느낌이 좀 더 강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넷째, 각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에서 '결' 부분에 이르면 주인공(들)이 대뜸 호통치면서 일갈 톤으로 뭔가 가르치려드는 부분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부적절'도 이 일드의 전형적인 일드의 티를 못 벗었다... 아직도 이런 스킴을 쓰는구나… 싶었다.

일개 직원이 부장이나 사장한테 일갈하는 게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매번 볼 때마다 너무 쌩뚱 맞아서 몰입감을 깬다. 뭔가 평소에 억눌려 왔던 일본인들의 불만을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서 해소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충 일드 보다가 이런 류의 멘트 들어본 적 있을 거다.

그게 아니란 말야~ (ちげぇんだよ!そうじゃねんだよ〜)

소중한 건 OOO란 말야~ (大事なのはOOOなんだよ〜)

(오우 적으면서도 오글거리네 ㅠ)

같은 엄청 닭살돋게 일차원적으로 뭔가 교훈을 막 어거지로 목구멍에 쳐넣어주려는 그런…

드라마 중 방송사 일개직원이 감독한테 뜬금없이 일갈하는 장면


아이러니한 것은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게 잘난 척하며 깔보는 소위 '우에카라노메센(上からの目線)'인데 평소 약자의 위치에 있거나 참고 있던 주인공 내지는 캐릭터가 뜬금 없이 자기가 우에카라노메센을 역으로 시전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마도 억눌려 있던 것을 극중 캐릭터를 대리만족하는 거 같은데 그 자체는 좋은데 너무 억지스러운 게 문제다.


부적절함의 정도가 있음을 안 드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값(?)을 하려는 듯 '부적절'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직은 미약하나마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1)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요즘 Y2K 유행하는 쇼와 시대를 그렸는데 버블시대 일본을 코믹하게 그려 GenZ들의 흥미를 나름 끌 수 있었던 점 (아니, 저 시대엔 저런 걸 거리낌 없이 했다고?!)

2) 신구 문화의 차이를 단순히 일방향 타임슬립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했다는 점

3) 굳이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낄만한 부분들을 잘 터치. 보통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K컨텐츠가 잘 하는 점이기도 한데 특히 PC가 득세하는 요즘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잘 그려낸 점

4) 좀 쌩뚱맞기도 하지만 발리우드 영화처럼 중간중간 뮤지컬을 넣어 헤비할 수 있는 주제를 좀 희화화해서 풀어내보려는 시도


등 기존 일드와는 차별화된 설정들을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잘 그려냈기 때문이고 (마치 드라마 제목처럼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는데 코믹이라는 요소로 그 ‘정도’를 나름은 잘 지킨 느낌?!)

이건 일본 사회같이 정말정말 변하지 않는 특히 몇십수년간 거의 비슷한 포맷으로 제작되어 온 일드에 신선한 시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곧 한국에서도 이게 리메이크된다고 하는 얘기도 있던데 PC성향이 일본보다 강한 한국에서 이걸 대체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보다 너무 궁금해진다 ㅎ (술 먹고 담배피는 장면은 그렇다치고 성차별/희롱 같은 멘트를 날리는데 이걸 시대 상황을 고려해 시청자들이 곱게 이해하고 넘어갈지가 관건ㅎ 아무래도 한국은 일본보다는 성차별적인 것들에 더 민감하기 때문. 물론 일본도 민감하긴 해서 드라마에선 드라마 중간에 자막으로 양해 문구가 나옴 ㅎ)


K드라마의 글로벌 선전에 일드도 나름 좋은 자극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변화해 갈 일드의 지형과 이런 기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한드는 또 어떻게 진화해 갈까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