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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Mar 06. 2018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웬만하면 운동을 거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허리 통증을 줄일 겸, 볼록 튀어나온 뱃살을 털어낼 겸, 쉽게 지치는 저질 체력을 증진할 겸, 기분을 전환할 겸…. 여유가 있으면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걷고, 여유가 없을 때에도 집 안에서 실내용 자전거를 다만 30분이라도 탄다. 이렇게 일주일에 5일 이상 운동하기를 몇 달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겨울은 코가 떨어져나갈 것처럼 춥거나 그렇지 않으면 코가 콱 막혀버릴 것처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좀처럼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미래 도시에 사는 미래인이 된 것마냥 공기청정기를 틀어놓은 집 안에서 실내용 자전거를 타며 〈설국열차〉와 〈매드맥스〉를 번갈아 상영하고 있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리워했다. 맑은 공기, 따뜻한 바람, 푸릇푸릇한 나무, 어여쁜 꽃을. 그 속에서 걷고 뛰는 내 모습을. 과거를 알고 있는, 과거를 알아버린 미래인처럼.

    

운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줄이고, 햇빛은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양을 늘린다. 뇌 과학 원고를 보다가 잠시 쉬는 시간, 거실로 나왔다. 밖은 추우니까, 저 추위가 물러가면 미세먼지가 올 테니까 차선책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거실에 누워 몸을 뒤척인다. 좋았어. 여기 누워 좀 더 행복해지겠어. 석쇠에 올라간 생선이 되었다 생각하고 뒤집어주는 이 없으니 혼자서 햇빛이 골고루 몸에 스미기를 바라며 뒤척뒤척. 골고루 행복해져야지. 그렇게 몸을 뒤척이는데 허리가 저릿저릿한 게 아이고고 신음이 절로 나온다.

신음을 삼키고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본다. 창백하고 메마른 나무를 보니 이번 겨울이 살아 있는 생명들에게 얼마나 모질었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아이고고 칼바람, 흙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신음을 삼키는 나무들의 목소리가 휘잉휘잉 들리는 듯도 하다. 모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또다시 모래바람이 불어올 텐데. 그 바람에 애써 틔운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 내릴 텐데. 그 계절은 또 어떻게 버티려나. (행복 호르몬이 나오고 있을 텐데도)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수영을 배워볼까? 이제 정녕 밖에서는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절망하고 있을 때 불현듯 수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엄치고 지나간다. 수영은 내 마음속에서만큼은 만년설에 뒤덮인 에베레스트산과 같다. 멀리서 바라볼 땐 ‘너무 멋지다. 언젠간 꼭 올라가보고 말 테야’동경의 대상이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울 만큼  두려운 대상으로 변신한다. 죽음의 이미지로, 신의 영역으로 우뚝 서서 서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수영이 좋은 건 이미 알고 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물 밖에서도 시시때때로 당황하는 내가 물속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몸을 놀려 물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겠지. 게다가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생기기 쉬운 허리병을 가진 나에겐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는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수영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수영이 얼마나 기분 좋은 운동인지 알아? 열이 나는 몸을 차가운 물이 식혀주는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를 시작으로 수영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직접 느껴보진 않았지만 상상만 해도 어떤 기분일지, 그래 정말 기분이 좋겠다, 알 수 있다. 그래서 떠올려보았다. 수영장에 가는 내 모습을.

먼저 수영장이 있는 스포츠센터를 검색한다. 수영장이 갖춰진 곳은 얼마 없으므로 집에서 가장 가깝고 시설도 괜찮으며 많은 사람에게 검증받은 스포츠센터를 금방 발견한다. 좋아, 여기로 하겠어. 잠깐잠깐. 여기로 한다고? 집에서 마을버스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안 빠지고 잘 다닐 수 있겠어?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응, 다닐 수 있어. 다녀보겠어. 굳은 마음으로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한다. 그리고 수영복을 사러 스포츠센터 근처에 있는 아울렛으로 향한다. 잠깐잠깐. 너 사람 많은 데 싫어하잖아. 쇼핑도 싫어하잖아. 근데 여길 들어가겠다고? 응, 수영하려면 수영복이랑 수영모랑 물안경이 있어야 해. 후딱 사서 나오면 되지. 주먹을 불끈 쥐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스포츠 용품점을 찾아가 ‘점원님, 제발 저에게 다가오지 마세요’ 아우라를 내뿜으며 이것저것 구경한다. 무난한 수영복과 수영모를 고르고 물안경을 고르는데…. 잠깐잠깐. 너 눈 나쁘잖아. 안경 벗으면 문인지, 사람인지, 물인지 구별은 해도 어디로 가는 문인지, 누구인지, 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잖아. 그런 눈을 갖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수영을 하겠단 거야? 물안경에도 도수를 넣을 수 있다던데. 그런 걸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아냐, 이 정도면 됐어. 대충 형태만 보면 되겠지 뭐. 그렇게 쇼핑을 마치고 아울렛을 나온다. 잠깐잠깐. 근데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날에는 어떡할 거야? 템포를 사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그거 괜찮은가? 온갖 잠깐잠깐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마음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럼에도 상상 속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모를 쓰고, 물안경을 든 채 수영장 안에 들어와 푸르른 물 앞에 서 있다. 자, 이제 물속에 몸을 던져.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잠수 연습도…. 잠깐잠깐. 잠수 연습이라고? 머리가 물속에 잠기면 무서운데. 숨이 콱 막혀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곧이어 물속에 머리를 넣지 못하고 수없이 고개를 쳐드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발차기 연습? 나 종아리에 쥐 잘 나는데. 물속에서 쥐라도 나면 어떡하지? 이번에는 뻣뻣해진 다리를 붙잡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반복 재생된다.

결국 나는 물에 발도 담가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수영장을 빠져나온다. 수영은 안 되겠어. 너무 무섭잖아. 한 번도 내처 달려보지 못한 채 머뭇머뭇하다 지레 겁먹고 지레 지쳐 나가떨어지고 만다.


알고 있다. 두려우니까, 두려워서 하기 싫으니까, 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늘 내 속에 자리 잡은 저 서늘한 두려움과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치기만 했다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생각만 요란했다는 것을.

여러 회사에서 원고를 받아 교정 일을 하다 보면 원고가 몰릴 때가 있다. A 회사의 원고 1교를 보고 있는데 B 회사의 원고 2교가 들어오고 C 회사에서 다음 주쯤 2교지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해온다. 그러면 나는 우선 일단 그게 수순이라도 되는 양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다. 여기저기에서 걱정을 빌려와 눈앞에 쌓아두고는 머리를 쥐어뜯는다. A 회사의 원고를 끝내고 C 회사 원고가 들어오기 전에 B 회사의 원고를 끝낼 수 있을까? 그렇게 못 하면 일정이 다 조금씩 뒤로 밀릴 텐데. 일정을 못 지키면 일 못하는 프리랜서라고 소문이 날 거야. 그럼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고 일을 주지 않을 테지. 날 싫어할지도 몰라. 급하게 빌려 쓴 걱정에는 이렇듯 괴로움이라는 이자가 붙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불어난 이자를 감당 못 해 몸부림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사실 일정을 확인하고 급한 일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면 된다. B 회사에 ‘언제까지 A 회사의 일을 넘겨주기로 했으니 그걸 끝내고 당신네 일을 시작하겠다. 그럼 언제까지 원고를 줄 수 있는데 그래도 일정이 괜찮겠느냐?’ 물어보고 조정하면 된다. ‘절대 안 돼요. 언제까지 일을 해주지 않으면 교정비를 깎아버리겠어요’라고 말하는 출판사는 한 곳도 없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이 정말 급하게 일정을 맞춰야 한다면 밤을 새서라도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일을 해야 하는 그 시간에 걱정을 빌리느라, 빌려온 걱정을 쳐다보며 발을 동동거리느라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더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하기 싫은데 해야 하니까 더더욱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런 악순환에 갇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나에게 코르티솔과 세로토닌을 알려준 그 뇌 과학 원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갈림길을 만났다. 어느 쪽 길로 가야 할지 끝없이 생각만 할 수도 있고 한 길을 선택해 쭉 따라갈 수도 있다. 언젠가는 선택한 그 길이 잘못된 길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돌아서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오면 된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때까지 기울인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의 길을 정해 가다가 경로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나는 자주 생각의 덫에 걸린다. 내 안전을, 안녕을 지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내가 걸려 자꾸 멈춰 선다. 갈림길에 주저앉아 끝없이 생각만 한다. 한곳을 정하고 쭈뼛쭈뼛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쉼 없이 의심한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그래서 또 자꾸 멈춰 서고 뒤를 돌아본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의연하게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선배, 그래서 내가 속으로 몰래 부러워하는 선배를 만나 두려움 많고 걱정 많은 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도 그래.”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안 그래 보이는데요?” “티를 안 낼 뿐이지. 티를 낸다고 해결되지 않으니까. 근데 나도 그래.” 두려움을, 불안함을, 걱정을, 흔들림을 티 내지 않을 수 있는 그 의연함 역시 부러웠지만 어쨌든 그런 선배도 나와 비슷하다는 데 조금은 안도했다. 그래, 사람들은 모두 주저하면서, 의심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한 줄기 칼바람, 흙바람, 모래바람에 쉬 떨어질 것 같은 연약한 모든 생명은 모진 계절을, 세상을, 삶을 견디며 버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것이구나.

생각 많고, 그 생각의 절반 이상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나는 이런 뇌를 가지고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해나갈 뿐이다. 머릿속 걱정이 나를 주저앉히려 하겠지만 발은 멈추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조금 더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렇게 하나하나 일을 해결해나가다 보면 걱정은 줄고 발걸음엔 일정한 리듬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수영을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한…, 50세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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