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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Feb 13. 2022

내 아이의 우울증






다원이 책가방에 들어있던 종이들을 식탁 위에 빼두었다. 아침에는 스피드가 생명이니 확인할 새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아이가 등원하면 온 세상이 평온해진다.




물건이 이리저리 널브러진 거실과 식탁을 차분히 정리했다. 아이 책가방에서 나온 각종 종이들을 살펴보는데 유치원에서 만든 새해 복주머니 카드에 이런 글이 보였다. 아이가 적은 “우울증 빨리 났게 해주세요” 복주머니 카드에는 그 외에 다른 글도 많았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8살 아이 입에서 우울증이라니. 그것도 유쾌한 나의 딸 입에서!





그날 하루는 계속 고민이 많았다.




내가 아이에게 애정이 부족해서 우울한 건가? 역시 너무 부족한 엄마구나. 자책하다가 또 그건 아니지, 우리 아이보다 훨씬 악조건의 환경을 가진이도 많다. 아이가 적어놓은 한마디에 과한 걱정 할 필요 있나- 부모답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도 살짝 올라왔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복주머니에 적힌 거 봤는데 다원이 우울해?” “어 사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도 친구들이 나 놀리는 것 같아서 눈물 나고, 선생님도 내 말 잘 안 들어주는 것 같아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아이에겐 객관적인 사실보다 자기가 느낀 감정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지 않는 상황이어도 아이는 더 과하게 느낄 수 있고, 속상할 수 있다.








그날 저녁밥을 먹고 함께 패딩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랑스럽고 착한 곰이 주인공인 영화. 패딩턴은 런던에서 홀로 곰으로 살아간다. 겉모습만 봐도 사람과 곰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착하게 살아간다. 다원이도 패딩턴처럼 당당하면 좋을 텐데, 사실 나도 패딩턴처럼 당당하지 못한 학창 시절을 겪었던 터라 네가 그러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지 않을까.




패딩턴을 다 보고 다원이랑 함께 목욕을 했다. 평상시엔 다원이가 홀로 목욕한다. 또래 아이들 중에 홀로 하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가 도와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린 꽤 일찍부터 혼자 목욕하는 걸 가르쳤다. 나와 함께 목욕할 땐 다원이가 목욕탕 아줌마가 된다. 내 머리도 감겨주고, 몸도 거품을 내서 씻겨준다. 다원이가 그 놀이를 참 좋아한다. 내가 보기엔 다원이가 훨씬 움직임도 많고 아주 번거로운 놀이인데 아마도 엄마랑 하는 놀이라 즐거운가 보다.


내 머리를 감겨주며 다원이가 “손님, 머리숱 너무 많으시네요” 내 몸에 골고루 비누 거품을 묻히며 “ 뱃살이 좀 나오셨네요. 밥 많이 드셨나 봐요?” 목욕탕 아줌마가 손님 다 떨어지는 이상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웃긴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목욕을 하고 함께 잠에 들었다.


​​


오늘은 아이가 집에 돌아와 먼저 말을 꺼냈다.

​​​​​


“엄마! 오늘 유치원에선 눈물 안 났어”

​​​​​


어쩌면 너에겐 말로 해주는 위로, 이해보단 엄마와의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그리고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우울함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고 다원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잘 다스리고 함께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슬픈 마음과 우울한 마음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마음도 더 값지게 느낄 수 있거든! 그래도 조금만 우울하고 더 많이 행복하면 좋겠다. 나의 딸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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