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이는 밤에 코피를 자주 흘린다. 비염 때문에 밤마다 콧속이 간질간질 하다가 코피가 뻥! 하고 터진다. 세 살쯤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 불이 꺼진 새벽, 아이가 울길래 이상히 여겼는데 불을 켜고 보니 아이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순간 코피라 생각은 못 하고, 피를 토하는 줄 알았다. (오 하나님!)
초보 엄마, 아빠는 피가 범벅이 된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냅다 뛰었다. 무색하게도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했다. 의사는 아이 코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난다면 문제지만, 금세 그치면 괜찮다고 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안도의 한숨 내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고 자주는 아니지만, 새벽에 가끔 코피를 흘린다. 다행히 8년간 부모 짬이 생겨서 지금은 웬만한 코피로 놀라지 않는다. 당연하게 화장실로 향하고, 휴지로 코를 막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잠이 든다. 며칠 전도 그랬다. 아이가 코피가 났고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코에 박힌 휴지를 빼내는데 도통 휴지가 나오는지 않는다. 억지로 빼내면 콧속 점막에 상처가 날 것 같아서 휴지 꼬랑지에 물을 살짝 적셨다. 아주 살살- 달래가며 휴지를 싸악- 빼려는데 맥없이 휴지가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이 콧속엔 잡을 수 없는 피 묻은 휴지가 그대로 박혀있었다. 그걸 보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 다원아. 코를 흥 ! 해서 휴지를 밖으로 꺼내야 해. 들이마시면, 큰일 나! 숨을 안으로 쉬면 휴지가 코로 넘어가니까 절대 들이마시면 안돼! 큰일나! 그럼 병원 가야 해! ”
남편은 어떤 일에도 호들갑 떨지 않는다. 나는 반대로 작은 일에도 호들갑, 큰일엔 거의 혼비백산, 놀랐을 땐 무조건 비명! 까악— 다원이는 내 반응에 놀랐는지 이미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코에 휴지가 껴서 응급실로 달려야 하나? 생각이 들던 차, 다원이가 스스로 흥! 코에 힘을 줘서 뺐다. 휴-
사실 콧구멍에 관한 추억이 있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아주 더럽고 발칙한 일화.
내가 유치원 다닐 때 몬테소리라는 교구로 활동을 했었다. 그날은 콩 옮기기 활동이었는데, 젓가락으로 콩을 하나하나 옮기는 (아시죠?) 콩이 아주 작고 까만 검은 콩.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들었다. 콩밥을 좋아하시는 할머니에게 콩을 가져다줘야겠다 마음먹고, 어디다 숨길지 물색했다. 주머니에 넣으면 금세 들킬 것 같고, 마땅히 숨길 때가 없었는데,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네.
바로바로! 콧구멍 !
콧구멍에 콩을 넣고 흥! 해보니 다시 잘 나왔다. 그렇게 콧구멍에 쏙 오- 옥. 왠걸 다시, 흥해도 콩이 나오질 않는다. (이대로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빨리 콩을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선생님에게 다가가 “선생님. 코가 아파요.” 이야기했다. 숨겨진 말은 어마무시했다. (코가 아파요 = 콧구멍에 콩 들어갔어요.) 선생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내가 코감기에 들었다 여겼다. 그렇게 계속 콩과 한몸으로 꽤 지냈던 것 같다. 집에 가서도 말하지 못하고 “코가 아프다” 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쭈욱 지내다, 어느날 코 푼 휴지에 검은콩이 짜잔 하고 나왔다. 할머니가 휴지 속, 콩을 보고 당황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쪼글쪼글한, 검정콩. 다행히 할머니에겐 잘 전달이 됐다. 차마 더러워서 먹지는 못하지만
콧구멍은 정말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