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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Mar 17. 2021

추억의 씨름(8) - 춘추전국 시대의 도래

1987년 제12회, 제13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1983년 민속씨름이 출범한 이후 총 11번 펼쳐진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민속씨름이 낳은 최고의 스타 이만기가 7차례 (1,2,4,6,7,9,11회),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가 2차례(5,8회), 1986년부터 '황제' 이만기의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한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 한 차례 (10회), 그리고 1984년 샅바싸움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끝에 깜짝 타이틀을 차지한 장지영이 한 차례(3회) 천하장사에 올랐다.


11번 펼쳐진 천하장사 대회에서 무려 7차례나 이만기가 독식하면서 팬들은 식상함을 느낄 법도 하였다. 하지만 1986년부터 30줄에 접어 들면서 씨름에 눈을 뜨기 시작한 205cm의 거구 이봉걸이 이만기 독주시대에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모래판은 후끈 달아오르게 된다. 1987년에는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기존의 3회에서 2회로 축소되었지만, 신년 통일 천하장사, 그리고 여름에 일본에서 특별 이벤트 형식으로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펼쳐지면서 씨름팬들은 거의 1년 내내 모래판의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접전의 재미에 빠져 들었다.


1987년 씨름판을 추억해 본다. 가장 먼저 치러진 공식 대회는 1월 신정을 맞이하여 프로와 아마 선수들이 총출동하여 펼쳐진 통일 천하장사 씨름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인간 기중기' 이봉걸 장사가 결승 조별리그에서 숙적 이준희, 이만기 등을 연달아 제압한 뒤 결승전에서 임용제 마저 3-1로 제압하고 1987년 첫 공식 대회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봉걸은 꾸준한 하체 강화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충전하면서 1987 모래판의 기선을 제압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예 장사 황대웅은 예선에서 이봉걸과 이준희 등을 연달아 눕히면서 4위에 올라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였다.



1987년 첫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3월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천하장사 대회를 앞두고 펼쳐진 체급별 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급 결승전에서 최고의 라이벌 이만기와 이봉걸이 맞붙었다. 백두장사급 결승전에서 이만기는 다양한 기술을 앞세워 이봉걸을 3-0으로 제압하고 건재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이봉걸은 더 큰 것(천하장사)을 얻기 위해 작은 것(백두장사)을 내주는 작전을 펼쳤다. 


사흘 뒤에 펼쳐진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이봉걸과 이만기는 다시 맞붙었다. 그러나 이봉걸은 백두장사급 결승전 때와는 달리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이만기를 공략하였다.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이봉걸의 큰 키를 이용해 들어오는 밀어 치기 기술은 이봉걸의 강화된 하체와 맞물려 더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이만기 또한 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이봉걸의 초반 밀어 치기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뒤 곧바로 안다리 반격으로 들어가 이봉걸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전술로 맞섰다. 밀어 치기와 안다리 공격의 맞불 대결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펼치면서 양 선수의 대결은 어느덧 마지막 다섯 번째 판까지 들어갔다. 


이봉걸은 마지막 판에서 밀어 치기에 이은 잡치기 기술로 이만기를 모래판에 뉘이면서 생애 두 번째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이만기, 이준희와 더불어 모래판에 본격적인 '3李 시대'를 열어젖힌 이봉걸은 1988년까지 자신에게 적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호기 가득한 소감을 밝히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백두장사에 이어 내심 천하장사까지 노린 이만기는 예전에 비해 몰라보게 강해진 이봉걸의 반격에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고, 평소 그 답지 않게 샅바싸움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이봉걸과의 승부에서는 초반 밀어 치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샅바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에 이만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봉걸의 밀어 치기의 위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다.


이만기는 여름에 개최된 번외 경기인 일본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결승에서 팀 동료 고경철과 맞붙어 화려한 기술씨름의 진수를 선보이면서 천하장사에 등극한다. 공식 천하장사 대회는 아니었지만 10월에 개최될 13회 천하장사 대회를 앞두고 이만기의 건재를 과시한 청신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만기는 10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13회 천하장사 대회 겸 체급별 장사씨름 대회에서 자신의 씨름 인생 중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천하장사에 앞서 벌어진 백두급 장사 결정전 8강에서 이만기는 황영호에게 무릎을 꿇고 탈락한다. 절치부심하여 천하장사 대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8강에서 장용철(일양약품)에게 예상치 못한 1-2 패배를 당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된다. 이만기는 5,6위전 진출 결정전에서도 신예 황대웅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7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만기의 탈락과 더불어 가장 큰 이득을 본 선수는 다름 아닌 이준희였다. 이만기가 예정대로 4강에 올라왔다면 이준희는 이만기와 힘겨운 승부를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팀 동료 장용철이 이만기를 제압한 덕분에 이준희는 4강전에서 팀 동료 장용철을 상대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준희가 예상을 깨고 결승까지 오르자 당황한 선수가 또 있었다. 바로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었다. 


이봉걸은 4강전에서 일본 오사카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자신을 눕힌 고경철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하고 결승에 진출한다. 하지만 이만기가 결승에 오를 것이라 예상했던 이봉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준희가 결승에 오르자 좀처럼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3-0으로 무너지고 만다. 이준희는 이만기보다 신장이 5cm가량 더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갔기 때문에 이봉걸의 밀어 치기 기술이 좀처럼 먹혀들지 못하였다.



이준희는 1985년 이후 2년 만에 자신의 생애 세 번째 천하장사에 등극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대회를 '유종의 미'로 장식한다. 이준희는 천하장사 등극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소속팀 일양약품에서 평생 이사대우를 보장받은 이준희는 은퇴와 함께 일양약품의 코치로 합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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