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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Apr 11. 2021

추억의 씨름 - Prologue

유년시절을사로잡은장사들의 포효

1980년대 컬러 TV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야구, 축구 등이 프로화 되어 출범했고 농구, 배구 등의 스포츠도 겨울마다 대통령배 타이틀을 내걸고 전국을 투어 하면서 세미 프로화 형태로 대회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통 스포츠 중의 하나인 씨름도 1983년부터 체급별 장사 씨름 대회 외에 모든 체급의 선수들이 타이틀을 놓고 승부를 펼치는 천하장사 대회가 신설되어 팬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1960년대, 1970년대는 프로레슬링의 전성시대였다. 프로레슬링이 펼쳐지는 날이면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프로레슬링은 1980년대부터 인기가 퇴조 기미를 보이고 그 자리를 민속씨름이 대신하게 된다. 제1회 천하장사 대회부터 민속씨름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게 된다. 프로레슬링 못지않은 다이내믹함이 모래판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체육관은 1만여 명의 관중들로 들어차고 주관방송사 KBS 1 TV에서 월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중계방송이 시작되면 브라운관으로 전달되는 장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몰입하게 된다.


1980년대 민속씨름 중흥의 주역은 단연 이만기 장사였다.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약관 21세의 대학생 선수였던 이만기는 한라급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최소 20kg 가까이 무거운 거구들을 모래판에 메다꽂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천하장사에 오르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씨름의 폭발적인 인기몰이에 나선다.


이만기의 존재는 제1회 천하장사 대회가 펼쳐지기 전만 하더라도 무명에 가까웠다.


씨름하면 김성률이라는 얘기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을 통해 귀동냥으로 들어왔다. 김성률 장사가 씨름하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묘사를 통해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씨름의 김성률이라는 존재는 마치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스라소니처럼 전설의 씨름꾼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김성률 장사의 독주를 저지한 장본인이 홍현욱 장사였고, 홍현욱 장사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이준희 장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1970년대 후반부터 모래판을 지배한다. 1983년 1회 천하장사 대회는 김성률의 대를 이어 모래판의 강호로 군림하던 홍현욱 장사 또는 이준희 장사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예상한 대로 결과가 나온다면 스포츠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이변이 존재하고 순간의 방심과 자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된 이들에 의해 즉시 발각되고 제압당한다. 군중들은 예상하지 못한 승부에 더 열광하고 새로운 강자의 출현에 흥분한다.


이름답게 모래판에서 다양한 기술을 구가한 이만기는 씨름 보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였다. 그리고 이만기 외에 각자 자신의 필살기를 갖춘 장사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모래판에 포진하여 보는 재미를 더 배가시켰다. 이만기의 들배지기, 이봉걸의 신장을 이용한 밀어 치기, 이준희의 안다리걸기, 손상주의 낚시걸이, 이승삼의 뒤집기, 고경철의 잡치기 등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선수들이 펼치는 다이내믹한 승부는 씨름을 보는 재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 이만기를 비롯한 모래판 1세대의 퇴장, 그 후 새로운 세대교체 주역으로 등장한 강호동의 조기 은퇴, 이만기를 연상시킨 화려한 기술로 모래판을 접수한 소년장사 백승일의 방황을 몰고 온 졸속행정 등은 씨름 보는 흥미를 감소시킨다. 


1980년대 민속씨름 중흥기에 안주하던 민속씨름 협회는 트렌드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다가 씨름 인기의 추락을 맞이하게 된다. 1990년대 말에 IMF 구제금융 지원 환란은 결국 민속씨름에도 결정타를 날리게 되어 대부분의 씨름단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소속 없는 무적 선수 신분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사그라든 씨름의 인기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프로 스포츠 초창기에 모든 종목들이 그러했듯이 가장 아쉬운 점은 스토리텔링의 부재이다. 화려했던 1980년대, 1990년대 민속씨름의 중흥기를 알려주는 기록이나 스토리 등이 덧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MZ세대들은 이만기를 보면 축구 예능 프로에 나오는 아저씨로 생각하고, 강호동은 예능인, 백승일은 트로트 가수로 인지할 것이다. 그들이 모래판에서 펼쳤던 짜릿한 명승부도 세대를 거쳐 전달되고 보존될만한 가치가 있는 자산들이다.


어릴 적 TV를 보면서 우리 부모님, 친척들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 들었던 김성률의 화려한 무용담처럼 나도 나의 후손 세대들에게 씨름이라는 스포츠가 얼마라 다이내믹하고 짜릿한 재미가 있는지 그리고 예전에는 얼마나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씨름 팬으로서 유년시절, 청소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고 저장하려고 한다.


매년 3회씩 천하장사 대회가 열렸던 민속씨름 원년인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민속씨름의 추억들을 천하장사 대회 위주로 소환해본다.


소환된 기억들이 우리 민속 스포츠인 씨름의 스토리텔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대한씨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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