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rain Oct 05. 2016

남겨지다

이야기 열, 열하나

이야기 열


미국 드라마 sex and the city에 이런 대사가 있다. 

괜찮은 남자는 전부 짝이 있거나 게이야.


34살에는 누군가를 함부로 좋아할 수가 없다. 짝이 없을 확률이 있을 확률보다 훨씬 적다. 

가끔 한번 솔로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눠보면 그가 왜 지금까지 솔로인지 알 것 같은 사람들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트럼펫 연주자라는 사람이 내 지인을 통해 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고 소개를 받은 적이 있다. 다 같이 있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그를 소개받고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사람을 어지간하면 좋게만 보는 나도, '아. 이 사람은 이래서 지금까지 혼자 사는구나' 생각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고 지쳐가고 있을 때 즈음. 한 사람을 알게 됐다. 

그는 훤칠한 키에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에 나와 동갑이었다. 나는 그가 참 멋있었다. 

술자리를 함께하고 다음날 그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보자고 했다. 술 마시 자고 하지 않고 영화 보자고 하는 그가 더 멋있었다. 

차가 막혀 영화 시간에 조금 늦은 내게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럼 먼저 들어가서 보고 있을게 천천히 오라고 해줬고 내 몫의 커피까지 사가며 더 필요한 것은 없냐고 다정스레 물었다. 그가 참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됐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그는 뭘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난 고기가 먹고 싶다 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다녔다. 그와 손을 잡고 있는 그 순간이, 그의 손이 좋았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사주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니는 그의 발과 바쁜 눈이 좋았다. 

결국 약간 떨어진 곳의 그의 단골집으로 향했다.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단골집 사장님은 그에게 '여자 친구랑 왔네?'라고 했고 그는 내 손을 잡고 '여자 친구 이쁘죠?'라고 했다. 난 설레었다. 

밥을 먹으며 술을 한잔 하면서 그는 말했다. 


사실은 결혼을 했다고. 그러나 나는 너랑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그러면 내가 그에게 잠시나마 설렜던 걸 들킬까 봐, 애초에 나도 그 이상은 생각도 안 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웃으며 앉아있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 멋지고 괜찮은 남자가 솔로 일리 없지. 역시나 그렇지. 


1차 충격에서 벗어날 때 즈음인 어느 날, 친구와 bar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내가 자기 이상형이라고 꼭 한번 보고 싶다고. 그는 나보다 연상이었다. 싱글인 내 또래도 희귀한데 연상이라니. 그가 뭐하는 사람인 지보다 그가 희귀하게 남은 싱글 오빠라는 사실과 꽤 훈훈한 외모는 그를 한번 더 만나기에 충분했다. 다음번 만남에서는 그는 말했다. 

사실은 유부남이야.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들과의 아주 짧은 만남들은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남았다. 

내 짝이 있긴 한 걸까, 이제 나는 유부남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걸까. 

분명 어릴 땐, 뭐야. 뭐 이딴 쓰레기들이 다 있어. 이러고 넘겼을 거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그들이 괜찮은 사람 일리 없고 내가 기다리던 내 짝일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탐났다. 


절망이라는 건 겪을수록 방패가 두꺼워지는 게 아니라 그 절망의 깊이만 깊어질 뿐이었다.




이야기 열하나


사실은 말이다, 돌아보면 모두가 정답이었다. 


유부남들을 두 번 만날 필요도 없었고, 아니다 싶은 남자들을 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꽤나 절망적이었고 모든 헤어짐이 아팠다. 하나의 세상이 내 눈 앞에서 문을 쾅 닫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그들과의 헤어짐 모두가 옳은 선택이었다.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이건 아닌데 싶으면 빠르게 놓아라. 나를 믿어라. 


돌아보면 모두가 정답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의 비는 무지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