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다섯, 여섯, 일곱
이야기 다섯
어릴 때는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이 8에서 9할 정도 된다.
여자 친구가 토라지면 달래주기 위해 수업 한 번쯤은 빠질 수 있었고, 그 혹은 그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울 열정과 체력이 있었으며, 내일 미칠 영향 따위의 걱정보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회적 위치라는 것이 생기면서 내가 빠질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생겨났고, 지금 당장보단 내일이 더 중요한 때도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간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샌가 내 마음을 휘두를 만한 것들을 피하며 살게 되고, 내 평정심을 헤치는 것들을 먼저 버리게 된다.
마음에 겨우 자리가 나면 일이 들어앉았고. 또 겨우 자리가 나면 미래가 들어앉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내어줄 자리는 현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이야기 여섯
삼십 대의 사랑이란 건 그렇다.
어릴 때처럼 조건 없이 누군가에게 함빡 빠질 수 없다. 나와 맞는 성격이 어떤 성격인지도 알아버렸고 연애하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도 파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손짓과 눈빛은 이런 거고, 그의 무관심은 이런 것이며 그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잣대가 많고 기준이 많고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예시들이 많다.
결국 눈멀어 나오는 패기로 무턱대고 한없이 들이밀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기적 같은 가능성조차 스스로 박탈한 채 미련만 철철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틀린 상대에 마음을 쏟고 열정을 쏟을 만큼의 여유도 없다.
무엇보다, 거절당했을 때의 부끄러움을 견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수없이 많이 다쳐와서 이제는 내 마음을 지키고 싶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 발동한다. 결국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이 동하여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 보내더라도 인연이 아니었다는 말로 합리화하며 마음 한편이 저리는 걸 그저 감정의 동요라 치부해버린다.
그래야 내가 오늘, 내일의 내 하루를 휘청이지 않게 지킬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야기 일곱
직업 특성상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현장에서 20대 초반의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또 자신보다 어린아이와 연애 중이었다.
남자아이는 현장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회인이었다. 그 아이에겐 돈을 받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었음에도 그의 여자 친구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여자 친구의 전화와 현장에서 스텝들의 눈치를 동시에 받으며 그리 길지 않은 촬영 기간 동안 아이는 수척해져 갔다.
그의 여자 친구는 자신이 화가 났으니 당장 집 앞으로 올 것을 '명'했고 남자애가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기어이 올라오라 우겨댔다.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으니 이젠 끝내자는 협박과 함께. 결국 며칠의 밤샘 촬영을 마치고 남자아이는 새벽 막차로 여자 친구 집으로 향했다. 무려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백하자면, 내 과거의 모든 순간이 떳떳한가 하면...... 아니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지만!! 저 아이와 비슷한 투정을 나도 부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그래. 그땐 다 그러지...'가 아니다.
안도였고 안심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와서, 나는 이제 그 시절이 끝나서 참 다행이다.
잠시나마 그 아이들의 어림이 부러웠지만, 아마 앞으로 평생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없으면 죽을 것 같고 오늘 안 보면 사라질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든 내 손으로 움켜쥐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은 그런 모래 같은 사랑 말고,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도 발맞춰 걸을 수 있고 잠시 눈에 안 보여도 덤덤히 서로의 발전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앞서가는 뒷모습 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우직하고 따듯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꿈꾼다.
그렇다.
마음에는 사랑보다는 현실이 그득하고, 시작되지도 않은 마음을 줄 가상의 상대보다는 오늘의 내 평화가 더 중요하지만, 그래서 요동치는 마음조차 못 본 척할 때가 그런 삼십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