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콘텍스트 간의 새로운 연결이 창조
변화의 첫 효과는 질문의 변화다. 즉, 달라진 환경은 질문의 변화를 요구한다.
창조창조는 콘텍스트와 콘텐츠의 새로운 연결이다는 콘텍스트와 콘텐츠의 새로운 연결이다
예전에는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서는 방송 시간에 맞춰 일찍 귀가해 소위 '본방사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제 (SBS TV에서) 모래시계 봤어?"라는 질문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이제 본방사수가 과거의 용어가 된 오늘날, 우리의 대화 방식도 변했습니다. 얼마 전 종영된 '나의 완벽한 비서'에 관한 대화를 생각해 보면 " '나의 완벽한 비서' 어디서 봤어?"라고 묻게 됩니다. 더 이상 특정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었는지가 아니라,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어떤 플랫폼에서 시청했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질문의 변화를 통해서 단순히 언어적 표현의 차이가 아닌, 미디어 소비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으로 생각의 틈을 넓혀보고자 합니다. '무엇을 보았는가(Content)'에서 '어디서, 어떻게 보았는가(Context)'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본방사수 시절에는 콘텐츠가 소비자 선택을 좌우하던 시대였습니다. 신문 지면의 TV편성표가 일상이었던 1990~2000년대, '모래시계'나 '대장금' 같은 인기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청자들은 방송사가 정한 시간에 맞춰 TV 앞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 시기는 방송국이 편성한 시간표에 맞춰 시청자가 따라야 하는 선형적 콘텐츠 소비 방식이 지배적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콘텐츠의 힘'이 있었습니다. 시청자들의 선택권은 제한적이었고, A부터 Z까지 방송사가 제공하는 순서대로 콘텐츠를 소비했지만, 그 선택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대박 콘텐츠'의 강력한 영향력이었습니다.
재방송 일정도 불규칙했기에 방송 시점을 놓치면 다시 보기 어려웠던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모래시계', '대장금'과 같은 압도적인 콘텐츠의 매력이 시청자들의 선택을 좌우했습니다. 결국 본방사수 시대에도 콘텐츠의 질과 흡입력이 소비자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핵심 동기였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넷플릭스, OTT 서비스의 등장으로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콘텐츠를 선택하는 비선형적 소비 방식이 가능해지면서 본방사수 문화가 사라졌고, 시청률 50%는 전설이 됩니다. 시청자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면서, 단일 콘텐츠가 가졌던 사회적 영향력과 집중도는 크게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콘텐츠 = 콘텍스트'로 여겨졌던 상황에서 콘텍스트가 콘텐츠를 주도하는 상황으로 역전됩니다.
여행 사진 콘텐츠를 볼 때, 우리는 각기 다른 목적에 따라 디바이스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서는 빠른 확인과 간편한 접근성이 우선시 되고, 태블릿(Tab)에서는 더 넓은 화면을 활용해 사진을 확대하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할 적에 활용합니다. 더 전문적인 편집이나 수정 작업이 필요할 때는 PC를 선택합니다.
이처럼 사용자의 목적(Goal)이라는 콘텍스트가 디바이스 선택을 유도하는 현상은 과거와 확연히 다릅니다. 본방사수 시절에는 콘텐츠에 맞춰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따라야 했지만, 지금은 사용자가 자신의 목적과 상황에 맞게 디바이스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맥락적 사고에 주목할 때
일상 대화 속에서도 드러나듯,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콘텐츠 중심에서 콘텍스트 중심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콘텍스트로 변화는 미디어산업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주문형(On Demand) 미디어 소비 방식이 음식 배달, 온라인 쇼핑 등 일상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된 점을 보면 콘텍스트 중심의 미디어 소비 변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모두가 인공지능을 통해 빠르게 콘텐츠를 생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오히려 생각을 달리해 보면 어떨까요? 이제는 '무엇을' 만드는(생성하는) 노력보다 '어떤 맥락을' 제시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미 풍부한 콘텐츠에 어떠한 맥락(콘텍스트)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본방사수 문화의 소멸은 창조와 혁신 개념의 근본적 변화로 해석됩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기존 콘텐츠를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기업과, 개인에게도 중요해 진 것입니다. 콘텐츠 자체보다 콘텍스트가, 창조보다 재해석과 재맥락화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서, '콘텍스트를 통한 차별화'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 전 Apple Computer 제품 디자이너 경력의 Andrew Hargadon 교수는 "재조합 혁신(Recombinant Innovation)"이라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기존 아이디어를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게 된다면 혁신을 이룬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콘텍스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보는 '근육'을 길러야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맥락들이 파생되고 있기에, 더 신중한 선택과 연결의 지혜도 필요로 합니다. 누구나 맥락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무나 맥락을 읽는 생각의 힘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맥락 context은 질문 자체를 바꾼다
새로운 맥락을 찾기 위한 여러분의 질문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