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모 Jul 03. 2024

돌풍 불어라, 썩은 오물 날려라

넷플릭스 '돌풍'처럼 대한민국 정화하는 돌풍이 불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결과물에는 만든 이의 의도가 스며있다. 그것이 자동차·집·스마트폰 같은 산업생산품이든 문학·예술 분야의 소설·시·그림·사진·연극·영화 등이든 상관이 없다. 인간이 만들었다면 손에 잡히는 구체적 물성이 없는 사회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대본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됐습니다. 이미 낡아버린 과거가 현실을 지배하는데... 미래 씨앗은 보이지 않는 게 현재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고... 저는 개인적으로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고 암울하더라도 우리 못난 우리들끼리 서로 조금씩 고쳐가면서 쓰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지금 이 답답한 현실에서는 저 자신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니까... 드라마 속에서라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그래서 그 초인이 이 답답한 숨 막히는 세상을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어떤 토대를 만드는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기획이 된 드라마입니다."

'돌풍' 제작발표회 동영상

만일 박경수 작가가 백마가 아닌 탱크 타고 오는 초인(즉 군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현재 사회 시스템을 간단히 백지화하고 낡은 정치인과 구태 경제인은 구악청소라는 명분아래 간단히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아마도 선악 이분법이 분명하고 단순한 드라마가 되고, 지금까지 보아온 드라마처럼 전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어려운 국가이다. 이미 김영삼 정권이 단행한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 숙청으로 국가 아닌 개인욕망으로 군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군사 쿠데타가 등장하는 드라마라면 가상 드라마가 되지 현실 기반한 드라마가 될 수 없다.


박경수 작가는 현재 보이는 상황을 절묘하게 비틀고 섞고 과장해서 불편하지만 있을 법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12부작인 '돌풍'은 총 러닝타임 545분 동안 끊임없는 돌풍을 일으킨다. 대통령을 시해한 국무총리, 그리고 여성 경제부총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돌풍은 광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 2, 3위간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현실과 과거를 빗대 만든 드라마 '돌풍' 대본은 가상이면서도 흡인력을 지녔다. 우리가 보았던 그리고 현재 있는 인물들을 이리저리 섞어 만든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는 가상임에도 현실성을 보여준다. (참고로 극 중 청와대 복도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도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까지는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초상화를 만들었다. 그 이후는 누군지 모르게 초상화를 만들었고... 유일한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고 재임 순서도 바꾸었다.)

작가는 대한민국 모든 부문을 건드리면서 감추고 싶은 내밀한 속살을 아프게 쑤신다. 시청자는 자신이 자리 잡은 정치적 위치에 따라 드라마는 아주 나쁜 드라마로 혹은 시원한 드라마로 보일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작가는 '모두 까기'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듯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 구성원 모두를 찔렀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행정부, 재벌, 검찰, 사법부, 변협, 노조, 심지어 '국민'으로 통칭되는 대한민국 구성원까지도... (그나마 덜 건드린 게 군부 정도다.)


<정수진 경제부총리>

'분노한 장일준 지지자들. 지금 정수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요. 안타깝죠. 한때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피리를 불면 그쪽으로 몰려가죠. 피리소리 감당 못하실 텐데...'


시리즈 드라마답게 매 회차마다 밀도 있게 사건을 배치했다. 과장되고 억지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 극의 전개에 따른 필요조건으로 사용됐다. 물론 설경구와 김희애 두 주인공의 연기력이 극을 충실히 이끌고 있다. 다만 설경구는 2005년 영화 '공공의 적 2'에서 담당한 강철중 검사 역할과 간간이 비슷해 보였다.


드라마 '돌풍'에 관통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이다. 거기에 더해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 혹은 애정, 이 때문에 순수하게 시작했어도 점차 자신이 부패하는 것도 모르고 혹은 알아도 미화되고 윤색되고 당연시된다.

개인의 욕망 중 가장 큰 것은 영생이다. 어찌 보면 자식은 자신의 DNA를 지닌 생명 영속성의 증거이다. 영원히 살기 위해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았다. 사실상 종교는 내세에서 영원불멸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개 필부도 이는 마찬가지일 테고 현대는 디지털 기록에 남는 자신의 평가가 더 중요해졌다. 디지털 기록은 사실상 역사의 사초(史草)가 되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생된다. 그것도 쉽게 대중에 의해서... 밀양 성폭행범들의 행복한 현재 모습도 순식간에 망가뜨릴 수 있는 세상이다. 대한민국은 밀양에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역사 전쟁 중이다. 역사 전쟁은 과거 수정에서 현재 기록해야 할 사안까지 모든 분야에서...


'수진아 부활하고 싶다. 역사 속에서...'

정수진 경제부총리 남편 한민호가 자살 전 남긴 말이다. 대학생이던 전대협 의장 시절 촬영한 사진 뒤편에 적은 글이다.

한민호는 전대협 의장까지 지냈지만 정치권 진입에 실패하고, 그 뒤 재벌과 결탁해 검은 자금으로 사업체를 운영했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자살까지 하게 된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실패한 인생으로 남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부인에게 '역사 속에서 부활하고 싶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모든 잘못은 세탁하고 희석시키고 지운 뒤 민주화 투쟁을 선봉에서 이끈 민주열사로 부활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믿으며, 완벽하고 멋진 인생으로 남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경기장이 된 현재가 드라마로 재생된다. 그리고 추악한 경기장의 심판으로 그리고 참가자로 친구지간인 검사 3명이 등장한다. 검찰이 문제가 있는 조직이라고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백마 탄 초인) 검사 3인 중 1인은 실패해 자살하고, 1인은 대통령이 되어 거짓을 더 큰 거짓으로 덮으며 썩은 부분을 드러낸 뒤 자살한다. 그리고 마지막 1인이 깔끔하게 정리한다. 박경수 작가는 대한민국이 가진 역량 중 제대로 된 법치만 작동해도 훨씬 나은 세상이 될 것임을 기대하는 듯하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거짓에 맞서 더 큰 거짓말로 자신을 죽이면서 좌·우 상관없이 부패한 구조물을 부순 뒤 그 안에 기생했던 인물들을 드러냈다. 그 뒤 친구인 검사가 정리하는 모습은 은유일까 직유일까. 법을 말하고 법의 기준에 따라 단죄하던 사람이었던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드라마를 통해 말한 것이 아닐까? [빈모]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 몇몇을 골라 봤다. 일부 스포일러 일 수도 있겠지만 콕콕 머릿속에 와닿는 말들이다. 


<이장석 검사>

"세상을 더럽히는 자들보다 세상의 변화를 자기 생애에 마무리하려는 자가 더 위험해. 너(서기태)도 동호도" 

"나만 할 수 있다고. 이 나라의 변화를 나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어떤 처벌도 받으면 안 된다고 자기에게 관대한 사람들이 세상을, 나라를 부수고 있어. 장일준도 동호 너도."


<박동호 대통령>

"장석아 성역 없이 수사해."

<이장석 검사>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라. 성역 없이 파헤쳐라. 그런 말 하는 놈들이 성역이던데."


<정수진 부총리>

분노한 장일준 지지자들. 지금 정수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요. 안타깝죠. 한때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피리를 불면 그쪽으로 몰려가죠. 피리소리 감당 못하실 텐데...


<박동호 대통령>

"썩어가는 세상을 어떻게 할까? 질문은 같아. 너하고 나 답이 다를 뿐. 내가 내린 답을 정답이라고 믿고 마지막까지 밀어붙일란다."

(얕게 웃으며) 

"세상 썩은 건 못 보는 놈이 좋아하는 음식은 홍어, 과메기, 취두부... 정석아 냄새나는 것들 내가 먼저 먹을 란다.....(그러면서 홍어를 집어 취두부와 함께 집어 먹는다) 기억해라. 니가 쫓아야 할 냄새니까.

- 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청와대로 식사초대한 이장석 검사와 함께 말을 나누다가 먹은 음식들인데.... 전라도 홍어, 경상도 과메기로 상징되는데... 갑자기 중국음식인 취두부가 왜 나왔을까 싶다. 그리고 홍어와 취두부를 같이 먹는 장면이 애드리브인지 원래 설정인지도 궁금하다.


"이겨야죠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


"이런 말씀하셨어요. 썩어가는 세상을 어떻게 할까? 질문은 같다고. 각자의 답을 향해 끝까지 가보자고."


<장일준 대통령>

"동호야 사람이 우째 좋은 냄새만 풍기고 살겠노. 니도 정치를 하다 보믄 똥을 푸지게 싸는 날이 있을끼다. 그때는 말이다. 고개도 숙이지 말고 부끄러하지도 말라. 그리고 말해라 나는 변을 본 적이 없다. 끝까지 우기면 언젠가는 대로변에서 (똥 싸는) 니를 본 사람도...(살짝 웃으면서) 자신의 기억을 의심할 거다."


<박동호 대통령>

(장일준 묘소에 간 정수진이) "방명록에 썼더라. 장일준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지지자들은 믿고 싶어 하니까. 장일준이 변을 본 적이 없다고."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더 큰 거짓이지. 근데 한 번은 믿어보고 싶다. 진실이 이길 거라고."


<정수진 부총리>

"모욕당할 거예요. 우리의 삶이...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죠. 선배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기록해야 됩니다."

(변협 찾아가서 정수진이 한 말)


<서정연 비서관>

"국민들을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근데 왜 국민들은 그걸 몰라주고..."


<박동호 대통령>

"아니 나는 단 한 번도 국민의 위해서 정치를 한 적이 없다. 나를 위해서 했지.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는 나를 위해서... 불의한 자들의 지배를 받을 수 없는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한 일이야. 그러니 정연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중략) 싸워야지 저한텐 아직 버릴게 남아 있습니다."


"죄지은 자가 부끄러워하는 세상이 꿈"


<장일준 대통령>

"사람이 우째 깨끗한 물만 먹고 살겠노 동호야 썩은 와인 한 잔만 마시자. 딱 한 잔만"

<박동호> 

"마시죠 각 자의 잔을"  그러면서 잔을 마셨다.

<박동호 대통령>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 빛은 없습니다. 어둠이 더 짙은 어둠에 맞서며 스스로 빛을 참칭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왼쪽의 어둠을 걷어 내고 오른쪽의 어둠을 부수고 새로운 빛을 만들겠습니다."


 "저 박동호는 이 세상의 오물들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겠습니다." 

서기태 검사 아버지가 독립운동하던 동료와 6.25 전쟁 참전한 동료들이 함께 서명한 태극기에 박동호가 적은 글 '돌풍'
매거진의 이전글 잊고 싶은 기억을 불러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