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가 들면 삶은 대체로 뻔하고 따분해진다. 웬만한 것들은 다 해봤기 때문이다. 돈이 넉넉지 않아서 소비해보지 못한 제품이나 서비스들도, 각 회사들의 브랜딩의 산물로 ‘프리미엄화’ 되어 있을 뿐, 내가 소비한 것들과 드라마틱하게 다른 효용감을 주지는 않는다.
2.
인생의 일정 분기점 뒤로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매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처음 느낀 감정은 거의 없다. 이는 악보의 도돌이표와도 닮아있다. 결국 다시금 특정 멜로디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3.
따분함 속에서 다시 설렘을 느끼고 싶다고 외치는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이 아닌 시점에 설렘을 느끼고 싶다는 것은 어폐가 있으니 말이다. 엄청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먹기 직전에 설렘을 느끼지, 한 다섯 입 정도 먹는 와중에 설렘을 느끼지는 않지 않은가.
4.
설렘을 바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듦을 서글프다고 여기면서 젊음을 추앙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같다. 나도 종종 그러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나이가 듦에 따라 반대급부로 얻게 되는 새로운 감정들이 있다.
5.
나이가 들면, 일정량의 경험과 감정들이 축적되면서 ‘어떤 역치’를 지나치게 된다. 이를 통해, 세상에 펼쳐지는 무수한 현상들의 이면을 비교적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깊이도 생긴다. 무언가를 파고들고 그 과정에서 깊이가 생기면 눈에서 빛이 난다.
6.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설렘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갖게 된 안정감은, 따분함과 지루함을 양산할 뿐이다.
7.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도 없다. 이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없더라도 세상에는 많으니, 너무 외롭다고 느끼지 않아도 된다.
집중할 대상이 무엇이든, 집중의 산출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8.
당신의 안정감은 퇴색되어 있는가, 빛을 발하고 있는가?
집중할 대상을 찾으면 그 안정감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안정적이지 않은 무언가로 나를 이끌고 그곳에서 설렘을 찾을 것이다.
9.
안정감을 바탕으로 다시 다시 불안정함으로..
불안정에서 다시 안정으로
난, 이 두 상태를 평생 반복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반복을 주도적으로 하는 게,
조금 더 인간답고 재미있다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