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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육펜스 Nov 29. 2021

<리뷰>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오래 전 도서관에서 본 독립영화, 

           종교와 신념, 이데올로기를 아이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와 신선하고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때 적은 리뷰를 옮겨본다. 


“신성일의 행방불명“ 을 보고     


인적은커녕 농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외딴 곳,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보육원 천사의 집, 이곳에서 식욕은 곧 죄악이다. 아이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 초코파이만을 먹는다. 물론 식당은 없다. 먹는 행위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므로 아이들은 쥐새끼처럼 주방에 숨어들어 가마솥 안에 들어있는 초코파이를 하나씩 집어 나온다. 그리곤 침대 밑에서, 고장 난 냉장고 안에서, 재래식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후다닥 먹어 치운다. 


하지만 이 교리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만들어 낸 원장의 거짓말이다. 이것은 거짓된 말씀이고 믿음이지만 천사의 집에선 견고한 이데올로기가 된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누구도 아무 때나 먹어선 안 된다.”원장은 말한다. “도둑질 할 수 있지만, 살인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세속의 교리와 같다. 원장은 폭언도 폭력을 쓰지 않지만 오직 말씀만으로 천사의 집을 통제하고 지배한다. 


원생 신 성일에게 원장은 곧 신이며 그녀의 교리는 하나의 신념이다. 성일은 초코파이를 한 입 먹을 때 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금식을 선언하고 실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신실한 아이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었다. 먹지 않아도 살이 안  빠지는 체질이라는 점이다. 원장의 신뢰를 독차지하고 있는 성일에게 아이들은 고까움을 느끼고 “네가 왜 이렇게 뚱뚱한 줄 아느냐, 타락했기 때문이다.”라며 조롱과 멸시를 보낸다. 그러나 성일은 꿋꿋하게 신념을 지킨다. 그리고 그 신념은 천사의 환영을 보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엄마의 얼굴을 닮은 천사, 성일은 단 한 번도 엄마를 본 적 없지만 금식을 할 때도 실패했을 때도 따뜻하게 성일을 안아주며 그 길을 응원해주는 천사의 환영을 엄마라고 확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의 집에 이 영애가 오게 된다. 다른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영애에게 식욕은 본능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초코파이를 삼키는 아이들에게 “여기 식당이 어디니?“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던지고, ”타락은 뚱뚱한 게 아냐, 너랑 나랑 같이 자면 그게 타락이야“라며 어른 흉내를 내는 영악한 아이다. 배고픈 영애는 원장실을 찾아간다. 아이들에게 물어봐서 소득이 없으니 원장에게 물어볼 참인데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고아원 안을 휘젓고 다니다 주방을 발견하곤 들어간다. 외출 중 표시가 있지만 신경 쓸 영애가 아니다. 그런데, 평소였다면 초코파이 몇 개가 전부였을 가마솥 안에 쌀밥이 있다. 비빔밥의 재료들도 함께... 영애는 당연하다는 듯 밥을 퍼서 나오다가 주방 한 켠 창고 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을 열어 보려는 순간, 권사님으로 불리는 주방 할머니가 영애를 제지한다. 결국 영애는 보지 못했지만 주방엔 할머니와 영애 외에도 누군가가 또 있었다. 


그날 오후, 천사의 집 아이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원장과 수위 아저씨가 주방 창고 방에서 “그 짓“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짓“이란 밥 먹는 행위다. ”어떻게 원장님이 그 짓을 할 수 있어? 말도 안 돼“ ”정말 그 짓을 했다니까, 수위 아저씨랑 같이 앉아서 호호호 하고 웃더니, 혓바닥을 날름날름~“ 주방에 숨어 있었던 또 다른 아이는 민기였다. 초코파이를 가지러 갔던 민기는 외출 중 표시를 보고 돌아오려다 호기심이 생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원장의 밥 먹는 행위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거짓이냐, 아니냐 말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평소 원장의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세력들은 체제 전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성일과 가장 친한 친구 갑수도 그 중 한 명이다. 보육원을 탈출해 도시로 가는 계획을 갖고 있던 갑수와 세력들은 원장의 ”그 짓“에 분노하고 원장의 세계가 완전히 잘못돼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때 아이들은 또 한 번 경악한다. 영애가 운동장 한 가운데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벌건 대낮에 대놓고 ”그 짓“을 하는 영애를 보며 아이들은 영애가 느껴야 할 수치심과 죄책감을 대신 느낀다. 원장은 영애의 행위에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예배당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성일에게 영애의 잘못을 알려주라고 말한다. 성일은 말한다. ”사람은 원래 밥을 먹지 않게 돼 있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밥 먹는 죄를 주셨어, 그것을 식욕이라고 해, 우리가 뭘 먹을수록 우리는 주님과 멀어지게 돼“ 


죄를 죄로 생각하지 못하는 영애는 결국 예배당 탁자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게 된다. 원장은 민기도 함께 올라오라고 한다. 외출 중 표시가 걸린 주방을 함부로 들락거리는 것을 권사님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둘은 함께 밥 먹는 벌을 받는다. 영애는 무심하게 밥을 씹어 먹지만 민기는 먹는 것이 고역이다. 민기 또한 전복세력 중 한 명이지만 원장에 의해 뿌리 깊게 주입 된 이데올로기를 깨는 것은 쉽지 않다. 벌 받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영애가 밥알을 씹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구토를 시작한다. 삽시간에 예배당은 지옥이 된다.  


함께 구토를 하던 전복 세력의 리더 영광이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먹는 게 뭐 어때서 그래?”라며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낸 영광, 원장을 노려보며 보란 듯 우걱우걱 먹는다. 원장은 화가 난다. 그 순간 “마...맛있네, 맛있어”라며 어색하게 호기를 부리던 영광이 초코파이를 놓치고 원장은 초코파이를 주워 영광의 입에 쑤셔 넣는다. “먹어, 먹어, 어디 한 번 먹어봐” 영광은 발버둥 치고 전세는 원장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보인다. 그때 갑수가 나선다. “원장님도 같이 드시죠. 아까 먹었잖아요~ 수위 아저씨랑 같이” 원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성일은 예배당을 뛰쳐나와 도시로 향한다. 자신이 믿어오고 구축해 온 세계가 사실은 거짓이었단 걸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목격한 도시는 타락 그 자체였다. 라면, 돈가스, 소시지, 떡볶이 먹을 것이 널려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식당에서, 포장마차에서, 길에서 부끄러움 없이 막 먹어댔다. 성일은 혼란스럽다. 급기야는 피자집 창문에 돌을 던진다. 피자 한 조각을 적선하듯 건네는 어린 아이와 아버지의 호의도 무시한다. 지금까지 믿어온 말씀이 거짓이란 걸 알게 됐지만 한 순간에 그 믿음을 배반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배고픔의 고통 앞에서도 친구들의 멸시 앞에서도 성일이 버텨온 것은 오직 그 믿음 때문이었다. 


성일에게 환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원장을 잡아 무릎 꿇린 후 초코파이를 던지며 조롱하기도 하고,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던 아이들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터져 버리기도 한다. 환시 속에서 성일은 전복 세력의 리더 영광을 미워하며 비난한다. “이제 도시로 가, 가버려, 혼자 가란 말이야” 진실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구축해 온 세계를 무너뜨린 영광을 성일은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광은 대답한다. “이젠 도시로 갈 필요 없어, 여기가 도시거든...” 성일은 아이들과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원장에게로 다가간다. 숟가락질을 하는 원장의 손을 가만히 잡는 성일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신이자 우상이었던 원장의 몰락, 성일은 원장에게 배신감보다 비애를 느낀다.


며칠 째 쫄쫄 굶은 성일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초등학교 운동장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런데 원장이 온다. 성일을 찾으러 온 건 아니다. 아들을 데리러 왔다. 아들을 대하는 원장의 몸짓과 눈빛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맹목적인 애정이 보인다. 치킨 가게로 들어가는 원장과 아들을 홀린 듯이 따라간 성일, 원장은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치킨 가게 앞에 서 있는 성일을 발견한다. 원장은 성일을 데리고 와 치킨 한 조각을 내어준다. “먹어, 괜찮아” 원장의 말에 성일은 쪽쪽 치킨을 한 번 빨아본다. 하지만 끝내 씹지는 못하고 내려놓는다. 원장과 원장 아들의 접시에 놓여있던 치킨 한 마리가 거의 없어질 즈음, 성일은 드디어 치킨 조각을 다시 들어 올린다. 성일의 앞에는 깨끗하게 살을 발라 먹은 치킨 뼈다귀만 남았다. 그 순간 성일은 천사의 환영을 보게 된다. 순백이었던 천사는 피투성이가 돼 있었다. 그리고 성일의 손에는 피 묻은 칼이 쥐어 있었다. 천사는 성일의 신념이었다. 성일이 치킨을 먹겠다고 타협하는 순간, 성일의 신념은 산산조각 났고 천사도 죽어버렸다. 


그 뒤 성일은 도시에서 영영 행방불명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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