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Sep 11. 2022

여름의 독서노트

여름에 읽은 38권의 책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텐데, 정주행의 시즌이 있다. 확 당기는 입맛처럼 혹은 딱 들어맞는 계절이라든가 하는 이유로, 잊을 때쯤 다시 꺼내 들게 되는 것들. 올여름 동안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한 번, 싹 훑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2022.8.11.목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_여름의 일기 중에서
최근 좋아하는 것들을 정주행 하며 느낀 점. 어려움에 빠져야 한다. 좋아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달려가는 편인데, 대부분 극복하는 장면들이다. 무언가를 멋지게 해결해나가려면 그런 상황에 처해야, 해결이라도 할 수 있다.


바위처럼 무거운 불의 잔 일러스트 책도, 다 포함시키지 않은 수십 권의 만화책과 마저 읽는 중인 책들을 포함하면 엄청난 양의 글자들을 우걱우걱 삼킨 셈이다. 추려보니 너무 많이 읽어서 놀랐고, 벅차서 써놓은 주저리들이 까뜩이라 또 멈칫했다. 원래 오타쿠들은 잘 벅차거든요... 과한 부분이 있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분명 티브이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했는데 언제 이렇게 읽었는지, 녹아내린 여름이 여기에 흔적을 남겼나 보다. 


작년의 독서노트를 보니, 지난 여름 또한 왕성한 읽기를 한 걸 보면,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다. 이글이글한 땡볕과 거친 빗금을 내리는 장마 아래, 무성하게 자라는 풀과 잡초가 가진 에너지를 받아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별다른 휴가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독서는 집에서, 거의 내 방의 아늑한 침대에서, 야심한 시각에 이루어졌다. 발이 시리고 풀벌레 소리로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오늘 밤에도 사랑하는 글씨들 속으로 풍덩! 할 예정이다. 




새롭게 단장한 오덕존



해리포터와 불의 잔 _ JK 롤링


일러스트 판으로 정주행 중인 해리포터. 앞선 시리즈와 달리 구판으로는 네 권이 한 권으로 합쳐진 불의 잔이라 무척이나 무거워서 들고 볼 수가 없었다. 무릎에 올려놓으면 잠시 후 발이 저릴 정도다. 


가장 많이 본 건 마돌이지만, 최애를 꼽자면 불의 잔이다. 전체 내용의 절반쯤이고,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퀴디치 월드컵이나 다른 나라의 마법학교들이 등장하며 세계관이 커진다. 시작부터 흡입력이 있고 스피디한 전개에 빨려 들어간다. 정주행러이기에 눈에 띄는 촘촘한 떡밥들도 있는데, 단서들을 끼워 맞추고 나중에 억지로 풀어내지 않고 미리 작가가 짜 놓은 얼개에 흘러들어 가듯 자연스럽다. 집요정 해방운동부터 호그와트 지하까지 떡밥을 뿌려놓았다가 이해될 지점마다 적절하게 확 푸는 타이밍이 예술이다. 예를 들면, 매번 호그와트로 학생들을 데려다주는 마차가 이번 불의 잔에도 등장하는데, 불사조 기사단에서 세스트랄의 존재가 밝혀진다. 


일러스트는 테두리가 추가되었다. 그림에 무늬가 있는 액자를 두르는 건 특별히 좋아하는 형식이다. 소단원마다 판화와 같은 아이콘도 추가되었다. 아름다워서 놀랐던 마법사의 돌, 비밀의 방에 비해 지지부진했던 아즈카반의 죄수의 그림들을 회복하는 분위기다. 버로우와 월드컵 숙소 컷, 우표를 잔뜩 붙인 아서 위즐리의 편지 컷이 마음에 들었다. 단연 최고는 용 페이지. 압권이다. 


하지만 한 권에 내용을 다 넣으려다 보니 그림을 많이 실을 수 없었던 느낌이다.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있는데 나오지 않은 장면이 많아 가슴을 퍽퍽 치며 보게 된다.  

누구세요 말포이라기엔 다소 다부져 보이는디


또한 말포이, 세드릭, 크룸이나 플뢰르 같은 인물 묘사가 아쉽다. 크룸은 세드릭이랑 겨루는 미남이라면서요... (갑분 tmi 아무도 안 물어봤음 영화 통틀어 아쉬운 캐스팅: 지니 세드릭 초) 작가 스타일이 예쁘고 잘생기게 그리는 데 약한가 보다. 왜냐하면 리타나 스네이프는 소름 돋는 싱크로율이기 때문. 

(새로 번역되며 적응 안 되는 바뀐 이름 중 하나. 벨라가 아니라 빌라… 뭘 빌려요)


nn번째 정주행을 하며 생긴 새삼스러운 의문. 아이폰도 워치에 찾기 기능이 있는데, 그렇게 중요한 지팡이라면 다들 제발 분실 방지 마법이라도 단단히 걸어두쇼! 그리고 폴리주스 먹고 변한 매드아이를 덤블도어가 알아채지 못한 다는 것이 말이 안 됨. 또! 불의 잔에 왜 본인 인증 안 걸었냐고요 ㅠㅠ 혼돈 마법 걸 생각 왜 못했냐고요 ㅠㅠ 잊어버린 비번 찾을래도 문자 인증을 해야 되는데 흑흑. 


불의 잔에서 이름이 나와서 경기에 떠밀리는데 또 살려고, 막상 닥치니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해리의 모습이 짠해 죽겠다. 친구들을 저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뽑힌 순간에도 덤블도어와 해그리드의 눈치를 본다. 시리우스가 걱정할까 봐, 자신을 만나러 올까 봐 편지에 할 말을 다 못 적는 해리도 안아주고 싶었다. 어리광도 부려본 적 없는 어린아이. 하지만 도움을 받지 않고 과제를 행한다거나, 다른 인질도 구하는 모습은 그리핀도르 그 잡채... 눈물 난다. 또 마음을 울렸던 부분은 부모님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위즐리 부인이 와 준 것. 넘나 갬동이다, 장모님께 잘해라 이 자식아...



불꽃 성격 어디 안 간다.



짜릿 ㅠㅠㅠ 우리 주인공 용감한 거 보세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_ JK 롤링


기다렸다가 일러스트판으로 마저 읽으려고 했지만, 알다시피 실패했다. 많이 읽어 모서리가 닳은 구판으로 이 이야기의 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껴서 소화하면서 읽겠다고 자기 전에 딱 참고 한 권씩 뿌셔서 깔끔하게 월-금에 클리어. 나 규칙적인 인간이였자나…


처절한 해리의 고립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외로운 심리 묘사가 와닿았고, 블랙가 집의 음산한 기운이 담긴 묘사 또한 엄청나다. 해리가 반장 배지를 받은 론을 보고, 자문자답을 하며 마음을 살피는 부분도 좋았다. 


불의 잔까지 앞쪽 시리즈만 쪽쪽 빨아먹느냐고 뒤 쪽은 비교적 많이 돌지 않았는데, 온갖 중요한 떡밥 회수나 읽으면서 충격받았던 내용들이 다 불사조 기사단에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블랙하우스나 오클러먼시, 부모 세대 이야기와 더불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덤블도어의 고백이 이번 정주행에서 특히 읽기 괴로웠다. 한 인간의 과오. 추앙받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면과 오랜 시간을 고백하는 감정 묘사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해리의 찢어질듯한 슬픔도 생생하고 마음이 아프다. 





나.. 나름 호그와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_ JK 롤링


볼드모트의 존재로 인해 공포에 떠는 분위기가 마치 라이크 코로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썩어 바랜 덤블도어의 손으로 1권은 시작된다. 이어서 팬시브를 여행하는 2권. 스치듯 지나가는 단서들이 나중에 밝혀질 걸 생각하면 오싹하다. 볼드모트를 파악하기 위해 기억을 모으고 거기에서 디테일을 잡아내는 덤블도어, 더 대단한 부분은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서 단서들을 연결해나가는 능력이다. 그걸 아기새처럼 따라가는 해리도 기특하다. 또한 해리의 최종 러브라인도 등장한다. 해리가 해리로서 성장하는 모습, 그 속성이 익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펠릭스 펠릭시스 나눠주고 덤블도어와 떠나는 해리... 또 짠해서 눈물 촉촉하게 흘려주었다.  덤블도어에게 약을 먹이는 부분은 해리포터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끔찍한 장면이다. 



덤블도어가 하는 말들은 어쩔 때 불교와 가깝게 느껴진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며, 나니아의 아슬란처럼 종교적인 느낌도 나는 면모가 더 부각된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날의 맑은 날씨, 등장하는 사람들 정의로운 해리, 지니와의 이별. 직접 하얀 무덤 앞에 선 것처럼 슬프다. 


비 오는 해리 생일날, 커피 마시면서 집에서 해리포터 읽기... 내가 생일이다. 해리포터가 실시간 연재 중이었던 해리포터 키즈 썰을 하나 풀자면,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한 숨에 읽은 초딩 나.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기다림 1. 다음 시리즈를 작가가 빨리 써서 영국에 나오길 기다린다. 영국의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줄을 서서 책을 샀다는 기사를 본다. 기다림 2. 우리나라 판으로 번역되길 기다린다. 기다림 3. 동네 서점에 들어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새 시리즈가 나오면 헐레벌떡 받아 읽는다. 그리하여 불의 잔은 밤을 새워 보느냐고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혼혈왕자가 누구인지 스포를 알려준 같은 반 박땡땡... 잊지 못해... 그림 그리러 오는 초등학생들과 가끔 신나게 해리포터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런 썰들을 풀어주면 매우 좋아한다. 역시... 나이를 떠나 오덕끼린 통한다 ㅎ





나의 말많아에 질려벌인 해리... 견뎌견뎌~~~~~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_JK 롤링


시작부터 헤그위드가 죽고, 귀가 잘리고, 사람이 죽는다. 외로움으로 시작되는 결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가 실감 난다.  


순간 해리의 마음은 천막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학교 운동장의 후미진 곳에서 지니와 함께 보냈던 오후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그 오후 시간들이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마에 번개 흉터를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찬란한 몇 시간을 훔쳐 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들은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했다.  /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


초반에 유난히 아름다운 구절이 많다. 가족이 있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위해 함께 떠나려고 준비하는 부분에서 또 한 번 마음이 미어진다. 덤블도어의 비밀이 밝혀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매번 눈물 버튼 눌리는 부분인 도비의 죽음. 그 바닷가 장면이 생생하다. 또 하나는 마지막에 부활의 돌로 죽은 사람들을 만날 때. 죽음의 성물은 특히 왜 이리 슬픈지,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자주 정주행 하지 못했다. 


다시 보니 마지막 편은 정리를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설명 메들리가 펼쳐진다. 죽기 전에 넘나 구구절절... 마지막에 지팡이랑 돌 깔끔하게 딱 처리 안 해서 고구마 백개다. 해리포터 시리즈, 이 자체로 사랑하지만 아주 쬐이이이에끔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개인적인 이익을 좇지 않은 사람이라고 내가 믿을 수 있는 마법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너 일거다, 해리 포터." 그립훅이 마침내 말했다. 


어느새 후루룩 끝에 서 있다. 이 여정의 끝까지 함께한 우리 용감한 해리.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한 바퀴 한 듯하여 뿌듯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혼혈왕자부터 죽음의 성물까지 이틀 만에 여덟 권을 읽었다. 도랏맨... 그 와중에 티브이 보고 운동하고 일하고 등산하고 다 했는데 언제 읽었지. 해리포터 정주행은 역시 나의 오래된 광기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밤새워 읽게 하는 소중한 이야기들. 당분간은 이 여운을 아꼈다가 일러스트판이 연결해서 나오면 불사조 기사단부터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뒷부분에 소홀하였다고 인정하며 뼈까지 싹싹 발라먹기로 다짐. 이렇게 꼼꼼하게 공부했으면 하바드 열 번 갔겠네. 고시 볼 기세. 새 책 사이에 쌀밥처럼 아는 맛 끼워 넣으며, 잘 봤다. 건강과 호기심과 집중력이 남아 즐거운 취미를 계속해 나갈 수 있어 기쁘다. 이제 다른 정주행 루프 속으로...





퀸즈 갬빗 _월터 테비스

드라마를 두 번 정주행 후에 책까지 읽게 되었다. 이런 내용은 늘 즐겁고, 전개가 빠른 편이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후룩 읽었다. 읽히는 그대로 화면이 떠오른다. 정말 그대로 영상으로 옮겼군. 숨겨진 내용이 있을까 해서 봤는데 드라마를 글씨로 복습한 기분이다. 아마 작가가 티브이 작가였어서 흐르듯 표현을 잘해둔 탓도 있을 테다. 


캐스팅을 잘했고, 드라마의 가장 공은 미술팀에게 돌리고 싶다. 사실 별 내용은 없는 성장 스토리지만, 플롯이 밀당을 잘한다. 체스를 몰라도 즐겁게 볼 수 있으니 드라마나 책 중 아무거나 접해도 좋을 것이다. (정종연의 노예로서) 티브이 프로그램 지니어스를 좋아한다면, 이런 내용 맛도리임을 보장합니다. 9장에서 홀로 공부하는 부분이 가장 좋았고, 베니와의 관계성도 딱 담백하다. 도움을 통해 해결하는 결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부담감과 도전을 홀로 이겨낸 것도 멋지다. 역시 구원은 셀프야! 





캔디캔디 _나기타 케이코, 이가라시 유미코


https://brunch.co.kr/@chocowasun/77


며칠 전에 보기만 하고 군침을 흘리던 앞집의 장미가 집 안으로 성큼 왔다. 가을을 위해 미니장미를 가지치기하던 중, 수레째로 가져가라 하셔서 때 아닌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림 그리던 친구가 김장 담그는 모습 같다 할 정도로 데크가 빨간 장미로 가득! 온갖 꽂을 수 있는 통은 다 나와서 여기저기 물에 담가 두고,  몇 개는 묶어 이곳저곳 선물하였다.
행복은 이처럼 정신없이 들이닥치기도 하는군! 약간 기빨렸지만 덕분에 요 며칠 즐겁다. 오랜만에 캔디를 정주행하고 여운에 잠겨있었는데, 비록 하얗고 푸른 캔디스 화이트 장미는 아니지만 마음이 달래 졌다. 이 허함을 해리포터로 채우는 중! 돌려 돌려 돌려 막아! 오늘도 주어진 수업을 잘 해내고, 일주일을 잘 마무리해야지.
2022.6.17.금 / 그저 다음 그림을 향해 _여름 일기 중


정주행 시즌이라면 또 꼭 읽어줘야 한다. 캔디에 대해서는 고백의 흔적도 있다(위의 3 heroes 글). 다 읽고 또 며칠을 여운에 허덕이는 터에, 마침 장미 폭탄까지 맞게 되어 이번 여름 하면 장미가 떠오른다. 심장 뛰게 하는 모든 클리셰의 집합이자 원조. 여러분이 아는 그 맛, 주인공의 성장일지! 바로 여기가 원조 맛집입니다. 수십 번째 다시 보는 중이지만 읽을 때마다 벅찬다. 


컬러판은 6편, 원작은 애장본이라는 이름으로 5권이 있는데 흑백판은 엄마와 내가 하도 돌려본 탓에 책등이 다 까졌다. 이번 정주행에서는 오랜만에 컬러판으로 보았다. 아마 스무 번 넘게 읽었을 텐데, 언제나 캔디가 포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울게 된다(도비의 장례식 장면처럼). 볼 때마다 울음 포인트가 달라진다. 이야기 전개는 매우 빠른 편이고, 버려지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꼭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결말이 딱 적절하게 정말 아름다운 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두 장면.  


등산을 하며 엄마와 캔디에 대해 토론을 하였는데, 역시 클리셰, 음 딜리셔스라는 결론. 캔디 너무 멋있고 테리 생각보다 못났다고 박수 짝짝 쳤다. 캔디와 어긋나는 타이밍. 마음과 인연은 다르니 거기까지인가보다 생각해야 한다. 엄마 왈, 스테아가 제일 낫다. 


윌리엄의 존재, 레인 선생님과 포니 선생님... 카슨시네의 샘, 배에서의 쿠키, 엄브릿지만큼 꼴뵈기 싫은 닐... 그리고 그 누구보다 멋진 캔디! 어디에 누구와 있든 캔디가 있는 곳은 늘 분위기가 좋다. 멋진 새럼... 캔디에게 언제나 자극을 주는 건 알버트씨. 알버트씨로 인해 삶의 핸들이 확확 꺾인다. 캔디도 그만큼 힘이 되어주기에 멋진 관계다. 테리도 알버트도 떠나도,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믿음으로 홀로 굳건한 캔디의 모습에 코 끝이 찡해지고 안아주고 싶어 진다. 모험하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캔디에 다시 한번 이 책을 펴 들게 하는 힘이 있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단다
꽃은 지고 난 후에 더 아름답게 피고
강해져야 해 캔디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찾는 거야
운명이란 남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야


소망이 있다면, 다른 좋아하는 것들처럼 영화나 드라마화되어 책과 번갈아가며 정주행을 돌리고 싶은데, 저작권 문제 때문이라는지 예전 애니메이션 외에 영상화되지 않아 슬프다. 





덧붙임) 노다메 칸타빌레

정리하면서 지난날의 나에게 좀 멀미 난다. 어후, 이것 저것 왜 이렇게 많이 봤지. 아무래도 정주행의 시즌이었다. 좋아해서 잘 개어놓았다가 땡길 때마다 퍼먹는 게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 드라마, 유럽판, 최애 편인 영화 시리즈까지 한 바퀴 돌았다. 영상을 끝내고 다시 만화를 읽는 중이다(무한 루프). 


처음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게 된 것은 2006년 언저리. 환상의 커플, 풀하우스, 삼순이로 다지고 디브이디 대여점에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싹 흡수한 나는, 유행 중인 일드도 빠르게 섭취하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 주인공의 성장물에 환장하기에, 그 시절 감성으로 노다메에 푹 빠지게 되었다. (친구는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다녔다.) 


좋아하는 장면을 향해 꾹 참고 처음부터 펴 드는 편인데, (예를 들면 헝거게임 2편에서 경기장 틈을 향해 활을 쏘는 캣니스를 보기 위해 1편부터 정주행 중인 지금), 노다메에서도 그런 포인트가 있다. 치아키가 노다메의 연주를 들으며 신이 나를 위해 노다메를 내린 것이 아니라, 노다메를 위해 자신을 만나게 했다고 깨닫는 부분. 처음, 두 대의 피아노를 함께 치는 장면에서 치아키가 나를 위한 레슨이었어? 깨닫는 장면이 복선이다. 노다메를 위한 레슨인 줄 알았지만 결국 치아키를 위한 수업이었던 것처럼, 이 모든 여정이 결국 노다메를 위한 것이다. 다시 보니, 처음부터 치아키는 노다메에게 반하고 빠졌다. 이상한 소리를 해도 늘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알아가고, 스스로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두 사람의 쌍방 구원 관계에 이마를 짚게 된다. 이런 존재를 만날 수 있을까. 


엎드려서 악보 보며 공부하는 장면도 좋아한다. 계속 공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다음 페이지로 넘기게 된다. 공부하는 거 안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해리포터나 퀸즈 갬빗에서도 주로 공부하는 장면 좋아하네...? 대리만족인가. 요새 임윤찬의 연주에 빠져 콩쿠르 전 편을 막 돌려보는 중이라 더 과몰입 상태다. 


드라마, 유럽 편 특별판, 영화로 이어지는 영상은 완벽한 실사화를 이뤄냈다. 캐스팅, 캐릭터부터 연출까지 고증이 잘 되었다. 영상을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본 터라 그림체가 아쉽다 생각했으나, 볼 수록 이렇게 간결한 느낌으로 잘 그리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장면도 기가 막히게 적절하다. 오버스러운 내용을 깔끔한 그림체로 중화하는 분위기. 예전에 그려진 책이기에 지금 웹툰들과 같은 디지털 방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질감처리도 좋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영상과 책 모두 정주행 할 때마다 극심한 흐린 눈이 필요한데, 바로 성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유명세에 기웃거리다가 하차하는 사람도 많을 듯. 2002년쯤에 책이 그려졌고, 신판을 내며 고쳐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그때 다시 도전해봐도 좋을 테다. 변태 영감이나 술집에 가는 등, 강력한 진입장벽을을 뚫고 나면 멋진 성장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골라 드세요. 






작가들의 정원 _재키 베넷

화가들의 정원을 보고 함께 읽게 되었다. 돈 벌면 고향의 땅 사고, 나무 사고, 집을 고쳐서 산다. 비슷한 삶의 방향. 아름다운 농가가 많았고, 직접 가본 것처럼 생생한 로드멜도 있었다. 로얄드 달의 정원도 예쁘네. 




어금니 깨물기 _김소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나오자마자 주문했다. 기다렸다가 낮에 일하는 중간에 읽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끊어 보았다. 엄마가 해주는 옛이야기들과 닮았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날카로운 묘사들이 구멍 난 은수저에 담겨 푹푹 찍힌다. 가족은 뭘까. 부모가 된다는 일은?

진심 너무 놀람 저 친구 나 아닐까.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_에히리 프롬
진정한 사랑에서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 
우리는 소비하고 고대하지만 우리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실망한다. 


좋은 글은 시대를 넘어 유효하다. 마른 생각에 불쏘시개를 넣어주는 글. 잠 안 오던 더운 새벽에 읽고 서늘해졌다. 문득 산다는 것이 무료하고 흘러가는 태도가 무섭게 다가온다. 




식물의 방식 _베론다 L. 몽고메리

식물을 일상에 비유하여 좋았다.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랩 걸 이후 읽고 싶었던 그런 책이다. 과학분야 책도 골고루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난다는 것 귀한 일이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_윌 곰퍼츠
그가 설명하는 '산책자'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 작가가 품은 열정과 언명은 대중과 함께 움직여야 할 운명이다. 완벽한 소요자, 정열적인 관찰자라면 움직임의 주기적인 변화와 유한과 무한에 에워싸여 대중 사이에 자리한다는 것에 헤아릴 수 없이 기쁠 것이다."
바로 이는 인상파들에게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라고 강렬하게 자극하는 말이었다. 보를레르는 살아있는 작가라면 자신의 동시대를 기록하고, 재능이 뛰어난 화가나 조각가라면 자신의 특별한 위치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알아보는 눈을 타고난 사람은 얼마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이는 그보다 더 적다.... 미미하고 아주 적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존재할지 모를 신비로운 미적 요소를 밝혀내는 데 투신하는 것보다 그저 '현대 사회'는 모조리 추악할 뿐이라 단정 짓는 일이 훨씬 쉽게 마련이다." 그는 당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덧없음 속에서도 영원한 것'을 찾아낼 것을 촉구했다. 일상, 특히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인 현재에서 보편성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적은 목표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새 도감 _김현태, 천지현, 이우만
넘 멋져...

후투티와 딱새로 인해 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요즘. 공부할 방법이 없다 찾다가, 늘 그렇듯 책을 보게 되었다. 보리에서 나온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식물, 동물도감은 초등학생 때 사서 아직도 닳도록 본다. 같은 시리즈로 얇은 책, 양장 책, 큰 책 여러 버전의 새 도감이 있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궁금해서 영상을 엄청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지 보고 싶다. 


어릴 적, 도감이나 지도를 매우 좋아하여 탐방하던 때처럼, 처음부터 쭉 읽었다. 댕기물때새가 가장 귀여웠고, 나그네새도 기억에 남는다. 다 천연기념물 보호종 혹은 요새 개체가 줄었던 이야기가 많아 슬프다. 도감이라 학명과 더불어 북녘의 명칭까지 골고루 담겨있다.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는 울음소리를 표현한 부분이다. 


요즘의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어 뿌듯했던 독서였다. 언젠가 보리의 도감 세트를 꼭 사리라...





이탈리아 저니 _앤 데스메

이탈리아의 어느 집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곳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읽은 이탈리아 풍경 그림책. 끝없는 밭과 손가락같이 가는 나무들. 판테온. 색을 많이 쓰지 않고 그린 페이지들이 마음에 든다. 





사계절 생태도감 _모리구치 미쓰루

너무 아름다운 생태 일지. 방학 때마다 이런 걸 만들어보면 좋겠다. 





숲 속 100층짜리 집_이와이 도시오

사랑하는 시리즈. 나를 보여주려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빌려왔다. 안의 그림만큼 나누려고 한 마음도 예쁘다. 




여름밤에 _문명예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엄마의 큐레이션은 언제나 취향저격! 논이 가까운 곳에 사는 데, 개구리는 꽥꽥 울다가도 지나가면 동시에 조용해진다. 없는 척하는 것 은근히 웃긴데 책에 나와 공감되었다.  





멸종 동물공원 _이예숙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팝업북으로 만들었다. 기후 위기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밭의 노래 _이해인, 백지혜

아름담고 세밀한 그림. 




숲이 아름다운 바다를 만든대요 _요 쇼메이

환경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고요한 화면을 친구들과 파스텔로 여러 번 그려보았다.

 



무슨 떡을 만들지? _김혜균

추석에 어울리는 책. 질감이 만지면 파삭할 듯이 생생하다. 




아델과 사이먼 _바바라 매클린톡

어릴 때 너무 좋아했던 분위기. 탐정, 펜으로 그린 스케치, 바랜 느낌. 




할머니의 사랑 약방 _박혜선, 이승원

읽기만 해도 살살 아픈 배가 낫는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 _박선미, 손경희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매거진의 이전글 봄의 독서노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