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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May 28. 2022

봄의 독서노트

봄에 읽은 21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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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봄의 독서노트


아카시아 꽃이 지고 찔레꽃 향기가 으깨지는 길.  뻐꾸기가 전깃줄에 앉아, 시곗 속 모습처럼 간혹 가다 뻐꾹 거리는 오후. 선풍기와 에어컨 필터를 꺼내 시리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물에 싹 닦아낸다. 금방 지는 꽃들은 마당에서 최대한 보다가 잘라서 물에 꽂아 실내로 데려와 며칠이라도 더 본다. 손목의 시곗줄 위치만 하얗게 남고 타버리는 햇살이 찾아왔다.


모아보니 좋아하는 작가들의 다른 책들을 읽은 편이 많았다. 좁고 깊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분야도 찾아 읽어보길.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일.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대화. 길어지는 저녁 식사시간. 건강한 요리 하기.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달라지는 꽃향기로 샤워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등산. 매일 달라지는 인체를 체감하는 요가. 동네 산책. 고양이 냄새 맡는 시간. 아이스커피. 그저 그런 나의 날들을 지탱해주는 몇몇 일들 사이에 의미 있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일은 '책 읽기'. 펴 들기까지 유혹이 많지만, 한 번 눈에 글씨들이 붙고 나면 넘실넘실 헤엄치는 내용 사이로 생각을 던진다. 마음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더라도, 결국엔 두터워지길 바라며. 쌓아보니 이만큼이라고? 싶었던 책탑을 차곡차곡 책꽂이로 돌려보낸다. 만나게 될 새로운 책들에게도 치얼스!



읽은 것 치우려고(그래야 새 책 또 사니까) 정리하다가 놀랐다





문학




달까지 가자 _장류진

너무 우리네 이야기 같아서 소설이 아니라 수필인 줄 알았다. 코인 이야기인 걸 모르고 봐서 제목이 스포가 아니었다(라며 스포를 해버렸네 죄송… ) 우리 모두가 기다려온 J. 너무 부럽고, 또 부럽다. 친구 얘기 듣는 기분으로 밤에 스탠드와 가습기를 켜 두고 조용하게 호로록 읽었다. 읽기 편안한 내용들이라 삼사십 분 정도면 읽으니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피라네시 _수재나 클라크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이쯤에선 세계관 설명이 끝나겠지... 하며 반을 읽었다. 기묘… 기억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다. 일기로 쓰인 방탈출 같기도 하고, 내면세계가 혼란한 생태일 때를 기록해둔 글 같다. 메이즈 러너, 헝거게임, 작가가 밝혔듯 나니아 연대기의 느낌도 난다. 혹은 브루스 올마이티, 무한도전 나비효과 편이나 인사이드 아웃 등등이 떠오른다.  흥미롭지만 사서 볼 만하진 않다.




가능주의자 _나희덕

좋아하는 시인의 신작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컴백해주심에 한 마리 새우젓은 감사할 뿐! 사두고 읽기 좋은 때를 찾아 기다리다가 따뜻한 봄날 낮에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에 대해 쓴 시를 보고, 역시 나와 결이 같은 사람, 이 모든 것에 대해 대신 말해주어 고마웠다. 장미와 탄소 발자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시인이 있기에 꽃다발을 받을 때 어딘가 모르게 가냘파지는 기분을 시에 얹어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흐르다와 흘러내리다 라는 말을 고찰하는 시인의 시선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구석이 채워진다.


'줍다'에서 처럼 살고 싶고,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은 읽고 목이 꽉 막혔다. 그다음 3부의 소제목이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와 연결되는 점. 각각의 시보다 시들 사이의 유기성에 대해 감탄한다.

 

잊히면 안 되는 사람들, 세월호, 코로나, 기후위기에 대해, 위로보다는 현상에 대해 다룬다. 화도 말도 많은 요즘의 인터넷 세대에 대한 시선이자, 흐느끼는 영혼들을 위한 글이다. 뒤쪽으로 갈수록 어떠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가능주의자이기 때문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과 앤 머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에 이 책을 붙여두고 싶다.





뜻밖의 바닐라 _이혜미

'빛의 자격을 얻어'를 읽고 너무 좋아서 시인의 다른 책을 데려왔다. '호흡의 빛살', '휘도는 눈보라', '공기의 매듭들'처럼 잘 걸러진 영롱한 단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빛의 자격을 얻어'보다 조금 더 먼 곳의 이야기들이다. 혹은 너무 가까워서일까? 더 극에 있는 편이다. 빌려온 이야기들과 극적인 장면. 빛의 자격은 늦가을에 어울린다면, 이건 딱 지금부터 여름 끝무렵까지에 읽기 좋다.


시가 좋은 이유는 마치 장소처럼 날씨나 기분, 방문하는 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나의 여유와 시의 여유 거리에 따라, 내가 넉넉할 때는 시가 많이 들어오고, 팍팍할 때는 얕게 흘러간다. 그래서 여행지에 들고 가기 좋다. 나도 바뀌고 장소도 바뀌니까,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벼운 무게 또한 중요한 점!

 

특별히 좋았던 것: 별과 병. 라라라 버찌. 잠의 검은 페이지를 건너는.

좋았던 구절. '평생 모아둔 라일락을 탕진한 늦봄처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각별한 취향.'  





작가의 탄생 _유진목

생일 같은 책이다. 3막과 웅장한 6막이 좋았다. 시 전체가 소설 속 대화처럼 느껴진다.   





해리포터 비밀의 방 _짐 케이 일러스트판

나에게 해리포터란... 항상 읽고 있는 책. 쌀밥 같은 것... 무슨 책을 읽고 있든 간에 항상 중간중간 껴있다. 피아노 치기 전에 손 풀기 곡, 운동 전 스트레칭, 그림 그리기 위한 선 연습과 같다. 읽기를 예열하기에 딱 좋다. 원작은 너무 많이 봐서 책이 낡았는데 일러스트판은 아직 새것이라 조심조심 뉘어놓고 본다. 그림 구경하느냐고 두 배로 재밌다. 마법사의 돌처럼 압도적인 장면은 없었으나, 기발한 레이아웃이 많았다. 녹턴 앨리부터 다이애건 앨리로 이어지는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든다.




해리포터 아즈카반의 죄수 _짐 케이 일러스트판

해리포터 시리즈가 왜 아동용으로 나오게 되었다면, 한 시리즈에 이야기가 묶이기 때문이다. 앞 뒤의 내용들을 읽지 않아도 볼 수 있게끔 묶음으로 잘라서 배치되었다. 하지만 묘미는 전 시리즈에 걸쳐 떡밥을 뿌려두고 거두는 천재적인 타이밍. 블랙이나 스케버스 같은 내용이 앞쪽에 조금씩 뿌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넘나 짜릿하다. 한 시리즈 안에 깔끔하게 거둬지는 걸 보며 크으, 한 번 소리 내줘야 한다. 다른 책을 읽기 위한 시동으로, 그냥 항상 조금씩 읽는 중이지만 새롭게 보이는 면들이 있다. 읽을수록 마법사 세계 너무 작고, 해리 지금 시대면 유투버 했으면 관종 가능인데.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잘 컸구나... 이런 생각 든다. 내가 찌든 건가... 디멘터도 출퇴근하니.


일러스트 자체는 마법사의 돌, 비밀의 방이 더 좋았다. 그리다가 힘 빠지셨나... 검은 개 페이지나 기차에 디멘터 나타나는 장면은 밤에 읽다가 넘기고 기절할 뻔했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울 수도 있겠다.


기절할만 하쥬?


기특 ㅠㅠ…!! 소망의 거울을 거친 해리는 이렇게 자랐다. 하….


다시 해리포터 존으로 돌아간 책들. 불의 잔은 읽는 중!






비문학



화가들의 정원 _재키 베넷, 리미티드 에디션

책 자체로의 만듦새가 훌륭하여 소장할 가치가 있다. 커다란 케이스에 포스터와 함께 양장본으로 들어있었는데, 사진과 그림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내용도 충실하다. 그림과 정원,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엮여있으니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덴마크의 마을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르느와르와 소로야의 집이 각자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칸딘스키 또한 그림과 자신의 정원과 닮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라는 책을 보고 이 책 또한 관심이 생겼는데, 지금 이 책을 다시 검색해보다가 '작가들의 정원'이라는 책과 함께 시리즈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주문! 한국 버전의 이런 책도 보고 싶다.





바다의 선물 _앤 모로 린드버그

  혼자 있는 시간과 내면의 고독을 바다의 선물들에 비유하여 풀어나간 책이다. 비유와 기승전결이 쉽고도 아름다운 말들로 순서를 기다리며 파도처럼 다가온다. 소라고둥 파트에서는 소라고둥에 비유되는 여성의 삶과 간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가 담겨있다.  아주 예전에 쓰인 글임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 오십 년 전이어도 좋은 것은 시대를 넘나 든다.


나의 생각과 비슷한 점이 많아 맞아 맞아하며 읽었다. 서서 밑줄을 가득 그으며 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물해주고 싶다. '명랑한 은둔자' 이후로 선물하고 싶은 책이 오랜만이다. 아주 얇기에 부담도 없을 것이다. (보통의 시집 정도의 두께) 작가의 다른 책도 보고 싶은데 한국어 번역판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바다에서 보낸 짧은 시간 동안 남긴 글인데 2주간 이런 글을 써내는 걸 보며, 이런 걸 읽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2주를 선물해주고 싶다.




이상한 날씨 _올리비아 랭

예술에 대한 단상.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협곡의 여인' 부분이 좋았다. 작가의 다른 책들보단 정리된 느낌이 강하다. 이상하게도 혼란하게 섞여있는 편이 더 좋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도장깨기 하는 중.




우리 각자의 미술관 _최혜진

내가 평소에 감상하는 모양새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림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덕후라면 응당 하고 있는 일을 미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진행하는지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다. 사진 한 장을 몇 시간 동안 무쳐먹고 볶아서 뜯어서 돌돌 말아서 한입에 쑝 할 줄 아는 오덕들이라면(나포함) 아는 방법일 것이다. 미술의 영역도 같을 뿐!




개와 나 _캐럴라인 냅

개에 대한 집착? 모든 종류의 사랑에는 폐해가 있다. 작가의 다른 책에서 본 한 부분을 깊게 들어가 본 경험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해본 사람만이 이 기분들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이다. 특히, 어찌 그리 사람을 믿는지 천사일 뿐인 개들은 더.

ps. 폰트 머선일.. 넘 불편했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_리베카 솔닛

그냥 펴서 보면 알게 된다. 퍽퍽 찔리는 문장들. 이런 사람들의 글자에 빚을 내어 하루 더 살아간다. 첫 스무 페이지 정도를 읽고 벅차서 닫았다 다시 편다. 한 숨에 읽기 아깝다. 모든 문장을 다 밑줄 치기엔 무의미하여 연필을 내려놓고 다음 장을 넘긴다. 작가의 다른 책들로 접한 정보 덕분에 혼자 내밀한 친밀을 가지고 있지만, 또 새롭게 엮어내는 능력에 감탄한다. 작가의 책들 중 이 책이 어땠는지를 판단하고자 했지만, 좋은 책은 잘라서 맛볼 수 없듯, 그저 멋진 한 조각이다.  




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 _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소설로 풀어낸 물리학. 그냥 물리학 책을 읽겠다. 리를빗 억텐이다. 이성의 사랑 이야기에 엮어 덧붙이니 그저 그렇다. 물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겐 새로우려나? 과학 분야의 책에 한참 빠져 읽던 시절을 떠올리며 폈는데 돌아가는 길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우연한 생 _앤드루 H. 밀러

시작하며와 서문을 읽으면 이 사람의 말빨에 원투펀치 기절하게 된다. 교수님… 살살하세요. 문학을 연구하는 교수님들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같나 보다. 제목과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라는 소제목을 보고 심리학 책인 줄 알고 샀지만 글에 대한 이야기다. 광범위한 분야의 문학들을 아우르는 내용. 영문학도도 현대 영미권 문학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의미 있었다. 누가 한국 버전 이런 책 있다면 알려주세요. 없으면 쓰시고 연락 주세요. 꼭 사서 보겠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_룰루 밀러

(일단 에세이라길래 비문학 파트에 배치한다... 에세이 맞나..? 논픽션이라니...)

어디까지 진짜고 가짠지… 재밌다는 정보만 가지고 기대하며 보기 시작했다. 머릿속 서랍에 과학적 우화에 가깝다고 놓겠다. 평범하고도 위대한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소설 '사랑의 역사'나 '스토너'를 추천한다. 잔인하고 또 아름답기도 하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길. 오르던 사다리가 걷어차이는 느낌을 만끽하길. 글자 속에 두 사람의 인생이, 우주가 있다.




인상주의 일렁이는 색채, 순간의 빛 _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좋아하는 것부터 뻗어나가는 가지. '그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르느와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다. 거기부터 나의 흥미가 시작되었다. 미술사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찍어먹어 본 계기가 인상주의기에 이 책을 읽어보았다. 알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도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가들의 혁명을 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좋아하는 작가나 사조, 그림에서 뻗어나가다 보면 앞뒤의 흐름들도 알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달달 외우는 정보보다는 나만의 시선을 가꾸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_김환기

전쟁을 겪으며 그림을 그린 화가.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 세계 속의 본인. 불안한 생활 속에서도 파리를 그리워하고 숲과 고궁이 있는 서울을 사랑한다. 미술학교를 꿈꾸며 묘사했는데 마지막에 홍익학원이라 해서 소름 쫙.. 실제로 그러고 있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안 후에, 같은 제목의 그림을 봤더니 감동이 더해진다. 미술관은 드디어! 예약제가 사라졌다고 하니, 가볼 엄두를 내봐야겠다. 정말 좋을 텐데! 도합 10번 이상 운이 맞지 않은 사람...



그리움의 정원에서 _크리스티앙 보뱅

책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읽지 않고 사는 터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난 후에 가꾸는 정원에 대한 글인 줄 알았는데, 글로 엮어낸 정원이라는 뜻이었다. 희곡같이 느껴진다. 사랑해서 목 끝까지 행복하고 뜨거워서 죽어버릴 것 같고, 모든 것이 질투 나고 구구절절 좋다가 아쉽다가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나름) 미지근한 사람이라 소설처럼 읽힌다. 아직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는 애송이라 감정의 허들이 높아 버겁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_에릭 와이너

철학에 관한 이야기. 새해의 책으로 골랐는데 조금 읽고 덮어두었다가 이제야 끝낸다. 친구의 아빠가 철학책 분야를 읽어보라 하여 읽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다. 미술사처럼 너무도 넓어 아직 부족하지만, 주울 것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한다. 통신원이었던 작가가 자신의 에피소드를 곁들여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성 철학자도 있어 좋았다. 타투하실 분들은 철학책을 보세요, 멋진 단어가 많다.




럭키 드로우 _드로우앤드류

요즘 시대 돈 버는 사람이다. 열정과 추진력, 마인드를 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체크해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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