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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Feb 27. 2022

겨울의 독서노트

겨울에 읽은 22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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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글씨들을 어느새 다 읽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야심 차게 눈 오리를 사두었는데 얇게 내린 눈 덕분에 단 한 마리의 오리밖에 만들지 못했다. 풀릴 날씨에 걸맞은 책들을 기다린다. 정원과 식물에 관한 책을 잔뜩 쌓아놓은 책상에서 집 마당을 그린 자수를 놓는 주말이다. 벌써 작약 싹이 올라오고, 바람도 맵지 않고 조금은 향긋해진 걸 보니, 비로소 새로운 해가 온다.


새해 기념으로 오래된 서점에서 책을 사기도 하고, 누군가 읽은 책을 따라 읽기도 하고, 좋아하는 도시의 서점에서 기념품으로 만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읽거나, 여행의 짐에 기꺼이 끼워 넣어 조용한 오후를 책임지기도 했다. 겨울의 갈피마다, 고요하게 곁을 지킨 글자들에 대한 짧은 요약이다.






문학


듄 _프랭크 허버트
무거워서 들고 보지 못 함  / 새해 달력에 그려보았다

드디어 다 읽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부랴부랴 서점에 들러 책을 봤을 때, 두꺼워서 받은 충격이 무색하다. 세계관과 인물의 설명이 많고, 내용의 전개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읽다 보면 길지 않고 적절하게 느껴진다.

서서 보고, 누워서 보고, 기대서 보며 읽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흡입력 있는 장편 이야기를 만나 기뻤다. 이런 덕질 거리를 자기네들끼리 보다니 서양인들... 꿈에도 등장할 정도로 한참 빠져있었다. 헝거게임의 원작 책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주 빠르게 다 보고 나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좋았다! 고 느꼈던 감상과 비슷하다.


 2권을 지지부진하게 보는 중인데, 본격적인 우주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종이가 잘 넘어가질 않는다.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서 도전한다면 1권으로 충분하다. 방대하고도 복잡한 세계관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편을 추천한다. 비교하자면, 압도적인 소리와 스케일, 폴의 미모에 덧붙여 책보단 영화에 한 표를 던지겠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_이규리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인 마음. 절대 가운데로는 아무도 오지 않도록 동그란 모양으로 추는 부드러운 춤.


요즘 노래들의 가사 같다. 어떤 시들을 곡과 가사를 쓰고 본인이 노래까지 부르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여겼다. 구절만큼이나 시에서는 제목이 주인공이다.


추신. 아무래도 문학과 지성사의 디자인이 눈에 더 익는다. 모서리의 얇은 선과 너무 넓게 느껴지는 종이. 종이도 얇은데 글씨가 너무 얇아서 뿌옇다.


특별히 좋았던 시: 그러므로 그래서 / 느리게 또 느리게 / 정말 부드럽다는 건 / 4월의 눈





비문학



다시 그림이다 _마틴 게이퍼드

줄을 리을자로 서서 보았던 호크니의 전시 이후, 볼 책 목록에 있었던 한 권이었다. 전시에서도 따로 상영해주던 다큐멘터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에서도 인터뷰이의 멋진 태도가 책을 이끌어간다. 10년간 나눈 대화를 한 권으로 엮었고, 살아있는 거장으로 불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양의 새로운 도전, 같은 길을 여러 번 담아내는 모습, 아홉 개의 카메라로 작업하는 최근 작품까지. 시도 이후의 시도들이 감명 깊었다.


모든 것이 드로잉이고, 그림이 될 장면이다. '다시'가 아니라 '여전히 그림이다.'





침묵의 봄 _레이첼 카슨

살충제에 대한 호소이자 진지한 보고. 소름이 돋는 건 오십 년 전 상황이란 사실이다. 지금은 얼마나 더 악화되었을까. 시골에 살며 제초제 살충제 농약 등 엄청난 양으로 뿌려지는 약들을 가까이에서 본다. 애써 심은 고추가 탄저병에 걸려 한 해 농사를 망친 후엔, 다음 연도에 보호 살균제를 뿌린 적이 있다. 직접 키워 먹는 집도 이런데, 농사가 생업이면 살충제 사용이 더욱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인 대한들이 많이 나와야 해소될 풍경이다.  


땅과 새, 물과 곤충을 밝고 올라선 인간의 이기심이 자세히 서술되어있다. 새로운 독극물에 노출되어 적응할 시간이 생기기 전에 다시 새로운 물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용성인 화학물질이 동물성 지방을 통해 다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짧은 시야가 부끄럽다.


‘인간은 생물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 유발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호프 자런이 자신의 고향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것. 그리고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한 도시가 목화라는 단일 식물을 위해 살충제를 뒤집어쓰는 걸 막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한 것이 어떤 방향이 될 수 있을까. 현 상황에도 적용되는 이 이야기들을 벌새인 나라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해야겠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_윌리엄 모리스

자신의 철학을 깊고 좁게 설파하는 선언문. 강연록이기 때문에 기대한 것보다 부담스럽거나 비껴간 내용도 있었으나 전하고자 했던 가치는 이해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이 신이었던 시대에 던져진 주장이지만 지금도 통용되는 것이 많아 읽어볼 만하다.


지금까지 살 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 첫째는 건강한 신체, 둘째는 과거, 현재, 미래와 교감하는 활달한 정신, 셋째는 건강한 신체와 활달한 정신에 적합한 직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주거환경입니다.


사진 속 내용은 불교의 정신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장식예술이 공예로 불리는 요즘 공예 비엔날레 주제가 예술과 공예의 경계였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된다. 정확한 답이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다. 교수님이 시대정신을 강조했었는데, 요 며칠 환경과 인상주의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것은?  





더 로스트 키친 _에린 프렌치

이런 건 인생의 단 한 번 뿐이다. 자신의 삶을 가득 눌러 담은 진짜니까. 요리와 버무려진 삶이 담긴 글을 너무 좋아하여 각종 요리 에세이를 독파할 만큼 언제나 흠모하는데, 여기 오랜만에 '찐' 발견이다. 랩 걸을 읽었을 때만큼 좋다. 요 며칠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의 인스타도 보고, 유튜브로 영상도 검색해보았다. 마침 책을 덮은 후에는 굴 파스타와 토마토 스튜를 화이트 와인과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완벽한 주말! 상황이 허용된다면, 로스트 키친에 꼭 가보고 싶다.  


 추신. 아버지 짝사랑은 그만두시길 잘하셨습니다. 구원은 셀프.





공간이 만든 공간 _유현준

단순하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을 넘어 논리적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감탄스럽다. 영상에서는 단편적인 것 들만 보여서 아쉬울 정도! 예수를 현 상황에 비유하는 등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다. 건축에 깃든 역사와 지리 인류학 또한 배울 수 있다. 귀한 강의를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다니!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_정세랑

이병률이 핫핫핫 핫하던 때에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여행 에세이란? 텐텐같은 것. 말랑한 사람이 잘 열어두는 창문 같은 글이다. 본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을 모두 골고루 닮았다. 당연한 점인가? 작가가 좋아하는 '다정하고 평범한' 사람이자, 그러한 본인의 이야기이다. 물론 다정하고 평범한 사람은 많지만, 이걸 글로 남기기 때문에 작가다.


예전에 여행중인 본인의 모습을 서술한 것이라, 방어적이고 부드러운 회고형이다. 날뛰면서도 날카로운 현재성이 있는 글이 여행 에세이의 매력인데, 기대하던 점이 아니어서 아쉽다. 더블유와 함께한 타이베이 여행이 가장 재미있었다.이런 류의 내용을 원한다면 별로 선호하진 않지만, 장강명의 '5년 만에 신혼여행'이 더 흥미롭다.


추신. 책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만족도 오백 프로였던 책과 원두 선물. 조용하게 글씨를 읽을 때와 향긋한 원두 향기를 맡을 때는 견줄 수 없을 만큼 같게 행복하다. 보고 있나? 많이 많이 고맙수다





있으려나 서점 _요시타케 신스케

귀여운 이야기. '심심할 때 읽는 29가지 별난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눈물 한 방울 나는 결말을 주의하세요.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엄마가 빌려왔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알고리즘을 통해 길러진 독서습관이라 백발백중 내서타일! 이 책을 읽고 바로 연달아 읽은 '우리 각자의 미술관'이라는 책에 있으려나 서점을 패러디한 내용이 나와 소리를 꽥 질렀다. 뭐야, 이젠 아날로그조차 알고리즘에 지배당한 거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_정현주

나와는 인연이 먼 환기 미술관. 세 번의 헛 발걸음과, 저번 달 내내 실패한 티켓팅 후 책이라도 보자 싶어 읽었다. 김환기와 김향안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삶의 내용을 편집하였다. 미화된 점이 많겠지만, 편지는 보면 참으로 마음이 간지러워진다. 해쭈와 쁘보의 연애썰 영상 보는 느낌 ㅎㅎ... 둘의 사랑이 행복이면 그리 살아야지 뭐 별 다른 모습이 정답일까 싶다. 그곳이 자신의 그릇인 것이다. 엄마에게 내용을 말해주니 일초 만에 숨도 안 쉬고 '그렇게 살면 안 돼.' 엄마 말 들어서 손해 볼 것 없으니 이렇게 살지는 않도록 한다.


화가의 아내가 아니라 문필가로서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 향안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삼중 통역가 박래헌 전시를 본 기억이 겹쳐 보였다. 환기 이 사람아 답답하다, 싶다가도 책의 마지막에는 목이 콱 막히게 슬펐다. 스타 이즈 본 영화를 볼 때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아닌 대낮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부부의 연이란 뭘까. 사랑하며 살다 갔으니 그 또한 행복이다 결론지었다. 책에 등장한 예시들이 시대에 남은 예술가나 철학가 쪽은 남편인 것이 현실이어서 안타까웠다. 다른 방향도 이루어지는 시간들이 오길 기대한다.

  




단어의 집 _안희연

알라딘에서는 내가 샀던 책의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문자를 준다. 덕분에 빠르게 보게 되었다. 시인이 채집한 단어들로 지어진 집에 들어가 보는 시간이다. 시집보단 소소한 한 꼭지의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어느 창문에서는 시인들만 비출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이 드리운다. 한 단어를 만났을 때 공명하는 순간. 프리즘처럼 번지는 순간을 잡아챈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 표현한 말처럼 '놀이터'에 가깝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 한글자사전도 이러한 형태이지만, 그보단 훨씬 부드럽고 이야기가 가미되어있다.

 

단어를 쭉 적어 스탠드 옆,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던 말랑한 시절이 몇 년 전의 나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는 그런 감성이 닳아서 바로 보고 마는 사진이나 가득 붙여놓는다.


추신. 녹는점, 어는점, 끓는점에 대해 써볼 것. 238페이지의 5번에 대한 답도 써 볼 것. 탕종이라는 단어와 유루, 밀코 메다 부분이 특별히 좋았음.






결혼 10년 차, 강남에 내 집이 생겼습니다 _쿠오오 부부

새해를 맞아 읽지 않을 것만 같은 책을 봤다. 왜냐하면 집값은 천국만큼 오르고 잔고는 인센스 종이처럼 얇게 향기만 풍기니까. 세상은 행동하는 자의 것! 정말, 부지런해야 할 구석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도 초록 식물 잘 키우면 소원이 없겠네 _허성하

시드는 식물들의 해답이 있을까 하여 보게 되었다. 몬스테라 아단소니와 녹영 키우고 싶어 졌다. 식물들은 추운 날씨에 배송되어 기운을 못 차리는 걸로 결론 지음.


 


달빛 속을 걷다 _데이비드 소로

헤세처럼 끊임없이 재편집되는 소로의 글들. 감동적으로 좋았던 문우당 서림에서 속초를 기억하는 의미로 샀다. 습지가 있는 앞마당을 만들겠다는 여전한 괴팍함을 확인했다. 말년에 쓰인 생태, 자연, 분야의 글을 보니 덕후의 집요한 묘사가 빛을 발한다. 차분한 모습도 충분히 좋지만, 젊은 시절에 팔팔 뛰며, 세상을 물어뜯을 기세인 월든이 더 좋았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_헤르만 헤세

목련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 “대립”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림이 아름답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_사샤 세이건

극문학을 전공했다 했는데 오히려 인류학자가 바라본 우주 같다. 종교와 임신, 성인식과 고해성사, 유모 마르하, 결혼식과 아버지에 대해 여성으로서 내는 목소리. 모든 게 필연인 이 우주의 한 장면에 대해 소박하게, 거대하지 않게 말한다.




바다, 바닷가에서 _호아킨 소로야


윤슬이 그림을 통해 내 눈까지 비치는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마주했던 물과 동그랗게 부서지는 햇살들의 앞에 서 있다. 아이들을 그린 그림은 이중섭이 생각났다.


추신. 독서노트를 쓰며 발견한 것. 이 책의 작가가 그래서 누구...? 누군가 편집해서 썼을 텐데 누구세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림책


오늘 숲 속에 간다면 _레이철 피어시, 프레야 하르타스

환장하는 그림책 종류. 이런 걸 꼭 해보겠어.




지하 100층짜리 집 _이와이 도시오

그림 그리러 오는 초3 친구에게 백층짜리 집 영업을 성공했다. 그 친구가 생일 선물로 부모님께 받은 미니 책을 빌려주었다. 너어어어무 귀엽고 뿌듯하고 한가득 고마운 마음! 지하라 아무래도 칙칙하다. 지렁이 파트가 최애!




나만의 산타 _나가오 레이코
케이블카 메이벨_버지니아 리 버튼
겨울 _이소영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세 권의 동화책. 각각 다르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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