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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Nov 29. 2021

가을의 독서노트

가을에 읽은 20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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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는 세네 권, 많게는 열 권 정도를 동시에 읽는 탓에 한 권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기도 한다. 독서노트는 완독을 기준으로 실어왔다. 이번 계절에는 보고 있는 중인 책들이 유난히 많다. 가을 동안 읽은 책들을 소설, 시, 비문학과 그림책 순서로 정리해 담았다. 읽다만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이번 가을의 독서노트가 그랬듯 여름에서 가을까지 이어진 마음으로 다음 계절의 노트에 담길 것이다.


때론 앉은자리에서 두꺼운 책을 한 숨에 끝낼 때도 있고, 오분 십 분씩 짬을 내어 서서 읽을 때도 있고, 볕이 좋은 낮 시간을 아껴 두었다가 기꺼이 책을 편 적도 있다. 자기 전 커다란 베개에 두꺼운 책을 얹고 스탠드를 가까이 내려 혼자 보내는 시간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부터 나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온전한 나의 것들. 조용한 시간과 흘러 들어오는 글자, 집중하는 상태만 남은 지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궁금함이 사라지지 않게 돌보고, 또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하여 이 취미이자 배움을 이어 나갈 것이다. 서른을 앞둔 가을엔 이런 걸 읽었다. 이게 나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책들과, 창 밖의 첫눈과 함께. 책을 읽으러 간다.





소설
바람의 그림자 _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책에 관한 이야기에다가, 생소한 스페인 문학이라 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잊힌 책들의 묘지 3부작' 중 시작하는 이야기로 8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긴 소설이다.


메인 줄거리가 진행이 되고, 중간중간 작은 이야기들이 구덩이처럼 파여 있어서 움푹 빠졌다가 나오고, 돌아오면 결국 큰 싱크홀의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그 커다란 가장자리를 걷게 되며 비로소 전체의 모습을 알게 된다.


중반부가 지나치게 늘어지는 느낌이지만, 초반부의 흡입력 덕분에 끊을 수 없었다. 인물과 역사를 활용하여 교차되는 플롯 등 다채롭게 풀어낸 떡밥에 비해, 수거가 무성의해서 아쉬웠다. 방임한 채로 지나가버리거나 요약으로 마무리한 것도 많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들을 걸으며 미스터리 속에 잠긴 사람이 되어 본 것 같아 만족한다. 하지만 시리즈의 다른 책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는 않겠다.



해리포터 일러스트 에디션 / 마법사의 돌 _J.K. 롤링, 짐 케이

4편, 불의 잔까지 나온 짐 케이의 일러스트판 해리포터를 드디어 영접했다. 마법사의 돌과 불의 잔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아하지만, 정주행을 위해 첫 편부터 차근차근 읽고 있는 중이다.  


그림이 더해졌다는 것 외에도 가장 크게 다가온 점은 번역이다. 2000년에 발행된 초판 버전을 닳도록 읽은 나에게는, 신선한 두 단짜리 레이아웃과 잡지 냄새가 나는 종이 질감, 외국 느낌 물씬 나는 그림, 얇아진 폰트와 넓은 자간 때문에 아예 다른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 책을 여러 번 반복하여 보다 보면, 뒤이어 나올 문장들을 외워버려서, 기억하며 되짚어가는 재미가 있는데, 나에겐 마법사의 돌 책이 그러하다. 오십 번쯤 봤을까... 그래서 번역에 둔한대도 읽히기 쉬운 문체가 색달랐다. 딱딱하게 끊어지는 번역체에 익숙해져 있어서 알던 분위기가 나지 않아 아쉬운 것도 있다.


개정된 발음이 바른 번역에 가까운 것을 알고 있지만, 글씨의 어감이나 모양으로까지 아껴왔아서, 달라진 명칭들이 나만의 아쉬운 점 중 하나다. 두들리가 더들리라니.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충격에 빠졌다. 두들리가 좀 더 두더지 같고 짧뚱한 느낌인데 더들리라고 하니 좀 더 날렵해 보인다. 이어서 피튜니아..? 누구세요. 프리빗가.. 뭘 빗어요, 뒤이어 그린 고츠에서 암울해졌다. 헤르미온느는 남아준 게 감사하다. 헐마오니는 정말 용납이 안 된다.


그리고 커다래진 책의 크기에 맞게 한 페이지에 두 단으로 글이 들어가 있다. 줄 간격이 충분히 넓어 길게 했어도 읽는 데엔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은데, 나눠 보니 은근 호흡이 끊긴다. 한 숨에 읽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배려인가 싶다. 오히려 스마트폰 글씨들의 호흡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높겠다.


시리즈의 시작인 마법사의 돌에서만 느껴지는 전율들이 있다. 짠하고 용기 있고 다 하는 해리와 함께, 후에 나올 중요한 단서들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심장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라이터와 피그 부인, 뱀과의 대화 등 몰아치는 떡밥을 줍다 보면 처음 해리포터를 보았을 때, 밤을 새우느냐고 코피를 흘리던 어릴 적 내가 떠오른다. 새 편이 나오고, 또 한국판이 나올 때까지 손꼽아 기다렸다가 봤었기 때문에, 일 편에 등장한 것들은 삼사 년 후에나 회수할 수 있었다. 끝과 과정을 다 숙지한 후에 봐도 짜릿하다.


새로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덤블도어, 해리, 특히 페투니아 이모 모두 오은영 박사님께 상담받아야 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마법세계라니... 부엉이 날릴 시간에 카톡 혀... 또한 두 권이 아닌 한 권으로 보니, 한 장이 짧게 느껴지면서 각 장마다 끊기는 지점이 케이 드라마 뺨친다. 쫄깃해서 빨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책을 안 보던 어린이들도 괜히 계속 읽게 되는 게 아니다.   


아쉬운 점만 나열했지만, 그림을 하나하나 게살 파먹듯 보느냐고 오래 걸렸고, 읽는 내내 보내오던 익숙한 겨울 속으로 들어와서 행복했다. 작가가 그리면서 정말 행복했겠다 싶다. 다양한 시점에서 구성된 장면들과 더불어, 내용과 딱딱 맞는 그림 배치가 특히 만족스럽다. 도판이 있는 책들도 넘어가서 그림을 봐야 하면 몰입감이 줄어드는데, 편집 때 매우 신경 썼는지 대부분 그 내용이 있는 곳에 딱 그 장면의 그림이 나온다.


그림의 양도 대 혜자다. 찔끔씩 나오는 게 아니라 배 통통 두드리며 여려 부분 맛볼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3D 느낌보다는 손맛을 살려 스케치가 보이는 것도 있게 러프한 일러스트들이 너무 아름답다. 낡고 번지고 튀긴 종이의 느낌까지 통일성이 느껴진다. 영화의 어느 장면이 생각나서, 영화의 콘티나 무드 보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이애건 앨리 그림이 가장 예뻤고, 9와 4분의 3 승강장을 통과하는 컷이 없어 슬펐고, 기대되는 것은 예언의 구슬들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그림의 양과 책의 편집, 요즘의 책 값을 생각하면 가격이 무척 싸다고 느껴진다. 망설이시던 분들 기운 내서 장만하세요, 후회 없어요. 뒤이어 나올 시리즈들도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어 기쁘다. 다른 일러스트 판인 미나리마 에디션은 좀 더 아기자기한 분위기이던데 또한 궁금하다.


일러스트판을 쭉 보고 나니, 노래진 종이와, 많이 봐서 모서리가 터진 빛바랜 버전으로 다시 한번 정주행 할 결심이 든다. 일단! 그림이 있는 비밀의 방으로 갑니다.  




사건은 식후에 벌어진다 _제3,4회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지인의 책이다. 아는 사람의 책은 처음인데, 기분이 아주 신기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빛이 난다. 글을 쓰며 살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햇빛 _박지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과 함께 사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느껴진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어서, 글씨의 모양마저 무늬로 보인다. 주문을 중얼거리는 것 같은 흐름들이 많았고, 머릿속의 의식이 흐르는 강물에 얇은 종이를 살짝 덮어 떠낸 느낌이다. 시 한 개마다 와 전체의 흐름이 연결되는 것이 책 한 권의 시집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이전의 시와 그다음에 등장하는 시 내용이 키워드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 속 말이 이 책의 주제 같다.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_마종기

사소한 것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시인'임이 느껴진다. 요즘은 독특한 문체나 캐릭터가 있는 시인들이 많은데 화려함이나 거한 비유 없이도 따뜻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꼼꼼하고 여린 시선 속들이 와닿는다.

책 사이에서 점이 되어버린 날벌레로 시를 쓰는 사람은 목덜미를 물어뜯는 사슴을 티브이에서 본 감정으로도 시를 쓴다. 그런 점이 좋다.


 아주 작은 날벌레가 어디서 날아와 읽던 책장에 앉았다. 나는 책을 잽싸게 닫아 날벌레를 죽였다. 읽기를 계속하려고 다시 책을 여니 벌레는 죽어서 검은 점 한 개가 되어 있었다. 뜯어낼 건더기도 없었다. 날벌레의 날개도 부서지고 눈알도 다리도 심장도 다 함께 뭉개져서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책장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벌레의 본래 모습을 그려본다. 이 날벌레도 이름은 있었겠지.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이름. 입김이 시신을 다칠까 봐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미안하다. 나에게 이 날벌레는 너무 작고 나는 조팝나무 꽃보다 너무 작다. 작고 큰 것은 어차피 비교하기 나름이다. 미안하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인가> 중 <검은 점의 장례> 중 일부


<깨꽃>, <추운 날의 질문> 두 시가 특히 눈에 밟혔다.



빛의 자격을 얻어 _이혜미

첫 페이지를 읽은 후에 숨을 골랐다. 시작인데도, 글의 영롱함이 심상치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빛이 나서 잘 닦인 유리공 같다. 정신없이 밑줄을 치며 읽었다.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생각했고, 앞쪽의 0번 파트가 가장 좋았다. 해설에서 '식물화된 주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식물처럼만 살자는 나의 다짐 때문에 좋게 읽힌 건가 싶었다.


시가 노래인지 노래가 시인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들의 가사 같다. <원경>은 이예린의 '바다가 되고 싶어요'가 떠오른다.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함께 올해의 두 시집으로 꼽겠다. 작가의 다른 책을 예약주문받고 있어 때마침 주문했고, 지금 옆에 있다. 곧 읽을 것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성장을 함께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것처럼,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




비문학


밤의 사색 _헤르만 헤세

헤세가 이야기하는 불면과 자살, 고통과 절망은 이러하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 데미안처럼 작가의 성장 속에 고통에 대해 성찰했던 부분을 모았다. 밝은 분위기의 책인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자연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두 부분 모두 한 사람의 것이다.


어쩌면 이런 순간의 강렬한 빛이 나머지 모든 빛을 가려버리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순간에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머지 보통의 삶이 너무 힘들고 구차하고 실패한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해결되려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고,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존재한다. 고통이 곧 삶이고, 기쁨과 가치는 오직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다.(...)
지옥을 향해 가라.
지옥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삶은 오로지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이자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많은 행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최대한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고자 한다. '권태로운 삶'도 하얗게 불태우듯 살아내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려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강으로 _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로 완전 그냥 좋아하게 된 작가의 데뷔작이다. 여러 분야의 것들을 잘 엮어내는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첫 책부터 이랬구나, 놀랍다. 외로운 도시의 흐름보단 덜 정리되어있고, 경계가 없지만, 그래 왔듯 여러 실의 가닥으로 떠내는 미신가 팔찌처럼 어느 순간 무늬가 되어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실로 무늬를 짜내는 사람에 가깝다. 지식이 많은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큐레이션을 잘하는 사람은 귀하다. 꽃가루와 요정 이야기의 근원, 유럽의 신화, 단테, 지리학, 전쟁의 역사, 사이비, 성경과 토목... 이런 것들이 흘러 결국엔 강으로 간다. 정리된 한 줄기의 서사보다는 강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처럼, 책 속에 나왔던 테이프에 녹음된 이야기처럼, 강으로 강으로 흐른다.


별사탕처럼 일상적인 하루가 나올 때 등장하는 사람들과 풍경, 날카롭던 기분까지 묘사하는 그 부분들을 아껴서 두 번씩 읽곤 했다.


너무 넓은 이 책보단, 홀로인 도시 예술가들에 관한 외로운 도시가 좀 더 좋았지만, 이 또한 행복하다. 아직 글을 쓰는 중인 같은 시대의 사람이기에 나올 다른 책들을 기다리는 기쁨이 있다. <작가와 술> 또한 대기 중이다. 아껴서 조금씩 읽을 테다.   


나는 한참을 철길 지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빛은 물이 빠지듯 사라져 갔지만 공기는 여전히 더웠다. 루이스는 꼭대기에 성을 이고 캄캄한 나무의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는 섬처럼 보였다. 나에겐 그곳이 분쟁 중인 경계지 위에 세워진 도시처럼 느껴졌다. 아슬아슬하게 정복된, 다시 말해 자연계와 인간계가 불안정한 휴전 상태를 이룬 곳 같았다.
207 페이지. 이런 인트로를 읽고 집중을 안 할 수가..


울프 일기 _버지니아 울프
요 며칠 '울프의 일기'에 빠져있다. 울프의 정원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읽어 사 왔는데, 두께에 기가 눌려 솔직히 다 못 읽을 줄 알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 조금씩, 과자를 먹듯 읽고 있다. 50살이 된 자신을 위해 남기는 일기. 역시 남의 일기 읽기는 재밌어... 거대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남아 있을 단 한 명의 독자, 50살의 나를 위해 일기를 남긴다. 부디 건강하길!

7월 1일 목요일의 일기 중


<자기만의 방>과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에 이어 흘러오게 된 곳. 반 읽고, 반 남겨두었던 것을 평화로운 주말에 마저 읽었다. 자신이 쓰는 책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장 많다. 좋은 평가에 기뻐하다가도, 악평에는 독기가 차올라 다른 사람 책에 혹평을 하기도 한다. 끝나가는 책에 지긋지긋해하다가도 한 달 만에 새 글을 써내리는 설렘, 새벽 감성에 자신의 글에 실망했다가 다음날 좀 괜찮다고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라던가, 성실하게 글을 써 나가는 모습은 신성하게까지 보이는 작가의 생이 현장감 있게 담겨있다.  


 동료이자 동반자였던 레너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 여행하고 산책한 하루들, 아팠다가 다시 기운을 차려 일어나는 모습까지 그냥 한 사람의 마음을 지켜보았다. 슬프고 비극적인 모습은 볼 수 없고, 아픔 속에서도 지속해나가는 비장함만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조울증을 겪으며 안정적이고 싶어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쓸쓸하다.


역사에 남은 인물이지만, 비슷한 면에서 느끼는 기묘한 위로도 있었다. 글로나마 볼 수 있던 어떤 단면들로, 나의 하루들이 가득하게 느껴졌기에 책의 무지막지한 두께가 줄어드는 것이 슬플 정도였다. 밑줄이 많아 차마 옮기지 못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었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이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모습으로라도, 그 어디에서라도.



끌림 _이병률

대학생 때, 오랜 시간 여행을 갔던 터키에 이병률의 <찬란>을 들고 갔다. 당시 이병률의 끌림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떠돌아다니는 삶이 아름다워 보이게 마법을 걸었다. 그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오래된 기분들이 떠올랐다. 낡았지만, 닳지 않았고, 촌스럽지 않아 줘서 고맙다.  



속초 _김영건


속초에서 속초를 읽다. 책 속의 장소는 거의 가 보지 못했다. 영랑호에 반해서 근처 집 가격을 찾아보았고, 상상 회로를 오천 번 가동했다. 다음번에는 꼭 산요가를 방문하고 싶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_목정원

책의 모양만큼이나 아름다운 글들. 공부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사랑한다. 내겐 생소했던 분야에 인생을 흠뻑 적셔 사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뜨겁게 던져보는 그 세계가 궁금하다면 읽기를 추천한다. 아쉬운 점 한 가지는 글씨가 작다.


 끌로드 아저씨는 작가를 오페라의 세계로 이끌었고, 오랜 세월을 대가 없이 나눴다. 그걸 '오페라를 빚졌다'라고 표현했는데,  또한 작가에게 공연예술이론을 빚졌다. 미식가는 맛을 직업으로 하기에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한다. 번개 맞은  순간을 위해 지지부진한 순간들을 통과하는 우리의 .


시작하는 글은 뒤에 나올 모든 내용들을 압축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온다. 다른 글들도 공들여 쓴 것이 눈에 띈다. 공연 예술에 대한 현시대의 시선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목소리로, 미투와 테러와 죽음, 또 세월호까지 이야기한다. 앞쪽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뒤 쪽의 글들이 더 좋았다. <연극을 끝까지 보기 위하여>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특히 편지로 끝을 맺는 구성으로 눈가까지 찡해졌다.


무언가를 진하게 알아가고, 사랑하고 싶어 진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_빈센트 반 고흐

울프의 일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불행한 개인보다는 창작자로서의 열망이 돋보이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동생의 눈치를 보며 유화 물감을 쓰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저 다음 그림을 그린다. 시대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개인이 더 잘 느껴진다. 중간중간 나오는 테오의 편지를 보며 서로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종이와 언어를 넘어 느껴진다. 형에게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헌신해온 테오의 삶이 크게 느껴진다. 고흐는 우리의 생각만큼 외롭진 않았을 테다. 다른 편지들도 테오의 답장과 함께 읽고 싶어 진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여동생이 있었고, 아몬드 나무 그림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조카를 위해 그렸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좋아진 그림은 과일나무 연작과, 생폴 드 무솔 요양원의 풍경들이다.  



요가의 언어 _김경리

요새 빠진 요가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쭉 읽긴 했지만 동작들을 하나 배우거나 성공했을 때 다시 찾아봐야겠다. 책처럼 그림도 그려보고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름들도 외우겠지. 팔레트의 색 이름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외우게 된 것처럼!





그림책


100층짜리 집 하늘 편 / 바다 편 _이와이 도시오

오리지널 100층짜리 집을 보고 시리즈로 보게 되었다. 역시나 너무 귀엽고 입이 떡 벌어지는 페이지들이 많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던 입시미술을 보는 듯하다. 오리지널 책이 더 좋았지만, 이런 바글바글한 그림들은 언제나 내 취향이다.

 

바다 편의 해달이 최애 페이지이다. 수업 때 자료로 활용하는 편이라 책을 정말 꼼꼼하게 보게 되는데도 새롭게 발견하는 점이 많다. 바다 편에서 숨겨진 인어공주를 찾아보세요.  


색을 칠하면 물자국이나 붓의 터치감이 있을 텐데, 도저히 보이진 않고, 색연필 자국을 보아하니 손으로 작업한 것 같은데, 도대체 과정이 어떤지 너무 궁금하여 인터뷰들을 찾아보았다.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컴퓨터 작업으로 선 정리 후 채색을 한다. 인쇄를 해서 다시 손으로 마무리를 하고, 그걸 스캔하여 책이 된다고 한다. 작가가 주제를 잡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는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럴만하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선물해도 좋겠다.


https://www.smlounge.co.kr/best/article/34311



일과 도구 _권윤덕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책이다. 특이한 종이 질감이 느껴지는데, 비단에 아교칠을 했다고 한다. 그림과 내용 모두 좋다. 그냥 좋다... 하트.....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덕후의 마음. 취재에 도움을 주신 목록이 훈훈하다.


 

봉지 공주와 봉투 왕자 /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 / 신기한 그림 족자 _이경영

그림책을 나누는 친구분이 이경영 작가를 좋아하여 함께 보게 되었다. 우리 전통 이야기와 일상이 따뜻하게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봉지 공주와 봉투 왕자는 어렸을 때, 상상해 봤을 만한 내용들을 이야기로 그려냈다. 귀여운 발상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보다 보면 즐겁고 또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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