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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Apr 11. 2016

귀촌일지 ;예상과 걱정 사이

생활 편 _ 봄 식탁

;예상과 걱정 사이

생활편 _ 봄 식탁





 겨울에 집을 짓게 된 만두가족.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씨 덕분에 중간 중간 공사가 중단되어 예상 했던 것보다 삼주정도 늦게 입주하게 되었다. 방마다 다른 색깔로 페인트를 칠하던 날, 한 두 방울 비가 내리더니 순식간에 눈꽃송이로 변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새소리, 동물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소복소복 눈 쌓이던 소리만 가득했던 느타리봉. 도시에서 살적에 본 눈은 바닥에 닿기 무섭게 차들이 슝슝 가르고 지나가 온지도 모르게 사라지던 것. 그 눈들은 다 높고 시린 이곳에 모여 조용히 머물고, 겨울의 끝과 함께 천천히 사라졌다.      


페인트 칠하던 날, 설국이 된 느타리봉.


 우리 또한 겨울의 끝을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빨리 마당도 갈아놓고 씨앗도 심고 싶고 데크도 색칠하고 샘가도 만들고 싶었다. 따뜻해지면 할 것 리스트는 하염없이 늘어만 가고 있던 중에도 열심히 시간은 흘러 온 땅이 녹기 시작했다. 땅의 기운이 꿈틀대고, 공기가 뿜어내는 푸근한 냄새가 코끝에 닿아올 쯤, 미지근해진 날씨를 뚫고 홍아트 출동! 식물과 나물에 일가견이 있는 엄마는 추위가 풀리기 무섭게 목욕바구니와 가위, 과도를 들고 집 근처를 누비기 시작했다.     

 

 전적이 화려한 봄의 신 스틸러 홍아트는 과거, 황사 알러지로 학교도 가지 못한 나를 데리고 쑥을 뜯기 위해 황사가 불닥친 동네를 누비며 환자의 노동착취를 서슴지 않았다. 채취와 채집을 즐기는 엄마에게 느타리봉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맵과 신선한 미션을 제공하는 게임과도 같을 것이다. 심지어 엄마가 틈이 났다 하면 정말 집중해서 하는 게임 또한 에브리타운.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집을 짓고 식물을 수확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겨우내 눈송이와 칼바람을 견뎌낸 냉이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채 차가운 바람이 가시지 않은 느타리봉이 엄마에게 내린 미션은 냉이 찾기! 엄마가 한 번 발을 디디는 순간, 반원 오 미터의 냉이들은 부들부들 떨며 뽑혀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어야 한다. 


떨고 있는 냉이를  끌어내는 엄마의 손


몇 번 따라나섰다가 그 끈질김과 집요함에 나는 진즉에 손을 털어버렸다. 목욕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로 냉이를 몰살시킨 후에는 집으로 데려와 무자비하게 목욕을 시킨다. 수십 번 물을 받고 휘휘 저어 흙을 털어내고 하나하나 예쁘게 다듬고 나면 오감으로 봄을 맞이할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냉이를 씻어준다.


 엄마의 메인 스킬은 ‘요리’ 그 중에서도 ‘한 가지 재료로 무한 가지의 응용 요리’이다.

 느타리봉에서 반토막짜리 첫 겨울을 지나, 맞이하게 된 봄은 냉이가 그 시작을 알렸다.    


  



 엄마가 지휘하고 내가 피쳐링한 냉이요리 메들리! 

만두네 밥상으로 가장 먼저 찾아온 봄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 냉이 된장찌개     

가장 낮은 레벨의 냉이요리. 보통 냉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냉이 된장찌개이다. 여태껏 지냈던 집들은 불이 시원하게 세지가 않아 채수와 육수를 우려내고 쓰는 것이 로망이었던 엄마는 이사의 시작과 함께 채수공장을 가동했다. 멸치가 있다면 멸치 머리와 함께 양파껍질, 파뿌리, 사과 껍질 등을 큰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주면 된다. 동화 속에서 마법사들이 마법의 물약을 제조하는 광경과 흡사하다. 채수만 있다면 모든 음식의 맛이 풍부해지니까! 잘 우려낸 채수에 된장을 풀고 다들 아시는 그런 재료들을 넣고 한소끔 끓고 난 후에 냉이를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준다. 그렇다면 칼칼하면서도 기분 좋은 흙내음이 도는 냉이 된장찌개가 완성된다. 밥과 찌개를 함께 먹다가 두부를 으깨서 한 톨의 쌀알도 남기지 않게 싹싹 비벼먹으면, 겨울을 이겨내고 푸릇하게 생기가 도는 냉이답게 입맛도 기운도 향긋하게 돋아난다.       



* 냉이 밥       


급식에 나오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시골 내음 물씬 풍기는 뿌리채소밥은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잔반통으로 버림당하던 인기 없는 메뉴 탑텐에 속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꼭 ‘내가 먹을게.’ 하며 좋아하는 이는 있기 마련.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만 육세부터 산낙지도 씹어 먹던 바로 나! 

뿌리채소밥과 같은 맥락에 있는 냉이밥은 밥과 마른 김만 있어도 신나게 한 그릇을 비워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양념간장 투척 후에 뭉친 부분이 없게 쓱쓱 비비고 숟가락 가득 골고루 담아내어 김을 척 얹어 야무지게 한입하면 그 조화로움이 기가 막히게 미각을 자극한다.     

 


* 냉이 주먹밥    

냉이 밥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남은 야채와 냉이를 잘게 다져서 소금 후추 참기름을 넣고 주먹밥을 만드는 틀에 넣어 찍어내면 간단한 냉이주먹밥 대령이요. 후딱 만들어 놓으면 입맛 없는 점심에 한두 개 집어 먹다 가출한 입맛이 거짓말처럼 돌아온다.      



* 냉이 튀김     


캐온 냉이 중 튼실한 놈을 골라 튀김가루와 탄산수를 섞은 반죽에 묻혀 튀겨낸다. 모든 튀김은 옳은 맛이 난다. 그냥 다 옳아. 냉이 꽃과 쑥도 튀겨보았는데 냉이 튀김이 제일이다.

딸의 요리를 맛보고 아빠는 이연복 셰프의 튀김보다 맛있다고 했다. 

아빠, 이연복 셰프 튀김 먹어본 적 없잖아...      



* 냉이 또띠야     

냉동실 벽에 납작 붙어있던 또띠야를 후라이판에 앞뒤로 구워내고, 남은 채소를 썰어서 냉이와 함께 돌돌 말아 한입 크기로 썰면 된다. 머스타드에 찍어먹으면 햄이 없어도 맛있는 기적 같은 맛이 난다. 맥주안주로 환상이다.      



* 냉이 삼겹살과 볶음밥     


사실상 냉이요리의 하이라이트. 오늘의 메인이다. 우리가족이 열광한 바로 그 메뉴! 냉이 삼겹살! 언제나 옳은 삼겹살을 앞뒤로 노릇노릇 익혀주고(벌써 침이 고인다. 벌써 맛있음.) 다 익기 직전에 냉이를 한주먹 집어서 올려준다. 느끼한 맛을 지긋하게 없애버리는 냉이파워는, 언제나 첫 젓가락인 것처럼 고기를 먹게 한다. 

자칭 ‘냉.삼’을 먹느냐고 이 근방의 냉이 씨를 말리다 시피 한 것은 우리끼리의 비밀. 하루 캐다 하루 먹기 바빴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냉이를 먹어치웠다. 지인들에게 소개시켜주면 백 프로 취향저격 당하는 이 조합, 모두에게 ‘냉.삼’은 올 봄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임이 틀림없다.   

   

모든 구움 뒤에는 볶음이 있노라. 구웠으면 볶아야지! 고기를 먹다가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그때 고기를 한 줄 더 굽는다. 익힌 고기는 잘게 자르고 김치와 먹던 파절이, 파와 마늘을 볶아준다.    

볶음밥은 늘 아빠담당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조언과 단독행동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넣고 자르다가 완성된 볶음밥을 한입 먹게 되면, 왜 그렇게 자부심이 가득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계란과 냉이까지 아낌없이 투자하면 그 맛은 제곱이 된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자동으로 수저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맛이다. 


친척들이 모여 고기를 먹으면 가장 많이 잘 먹는 친척 오빠는, 아빠의 볶음밥을 먹기 위해 무려 고기를 덜먹으며 식사의 페이스를 조절했다. 한번 맛본다면 볶음의 대가, 만두의 뜻에 전도당해 어느 순간 고기 양을 조절하게 되는 본인을 발견할 것이다. 






이 외에도 냉이 수제비, 냉이 오리고기, 냉이 고추장불고기, 냉이 전, 냉이 두부찌개 너무나 많은 요리들이 있다. 땅의 숨결을 거쳐, 엄마의 마법같은 실력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와 향긋한 봄을 알린 냉이 요리는, 할 일은 많지만 피곤한 봄철에 너무 큰 힘이 되었다. 봄아 고마워, 엄마도 고마워, 그리고 냉이야 내년에도 또 자라주렴!(또 먹게... 냉이 못듣게 소곤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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