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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Mar 23. 2016

귀촌일지 ;예상과 걱정 사이

 우리 귀촌할 수 있을까? (1)

;예상과 걱정 사이

우리 귀촌할 수 있을까? (1)




    

 길을 걷다 친구와 함께 과연 너는 어떤 인간상으로 지내게 될지 서로의 미래를 점쳐보던 중이었다.   

  

“엄청 산에다가 집을 딱 지어놓고 살 것 같아. 우리가 놀러 가면 너는 황토방 문을 열고 나오는 거야. 

옆구리에 채반을 끼고 나물 이름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지. 만두머리도 필수야.”

“웬 만두머리? 내가?”


“아니 너의 남편이. 그리고 그분은 꼭 도자기를 구우셔야 할 것 같아.”     


 대로변 한복판에서 무릎이 꺾일 만큼 웃겼던 이 이야기는 친구가 그려본 나의 미래이다. 서울에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언제나 사람이 넘쳐나는 이 도시의 주인인척, 나름 도시인 코스프레를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나를 ‘자연인’으로 불렀다. 신발을 구겨 신어서 인가? 오래전부터 푹 묵힌 촌티는 감출 수 없이 묻어나왔는지, 또 내 천성을 들키고 말았다.   




 나의 이런 천성은 어디에서 왔겠는가. 기억의 한 페이지만 들추면 온갖 신기한 시골 이야기가 줄줄 쏟아져 나오는 홍엄마와 만두아빠에게서 물려받았지. 도시에 살게 되었지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시골스러운 짓, (엄마 왈)돈 내고 이틀이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캠핑’은 가족의 낙이었다. 아기인 나를 데리고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출퇴근했던 아빠와, 버너와 일회용 접시, 과도로 모든 요리를 문제없이 뚝딱 해내는 엄마 덕분에 나에게는 캠핑이 놀이동산보다도 신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만두가족 캠핑 풍경



 사실 캠핑은 무척이나 귀찮고 소모적인 일이다. 따뜻한 온수와 폭신한 매트리스, 손만 뻗으면 닿을 수많은 양념 통을 뒤로하고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챙겨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갈바닥에도 베기지 않을 푹신한 살들과 달려오는 벌레들과 친해질 마음, 그리고 귀찮음이 0g도 없을 쉽게 들썩이는 엉덩이만 있으면 된다. 추울 땐 가장 춥고 더울 땐 가장 덥게 굳이 밖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온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실행 버튼을 누를 수조차 없다.       



   

 그러기에 캠핑은 귀촌의 예행연습으로 삼기에 맞춤이다. 


수많은 전시회,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있는 친구들, 언제든 굶주린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24시간 편의점, 금방 오는 버스들, 창가에 높은 바 스툴이 있는 카페 없이 살 수 있을까. 낮은 불이 켜진 고요한 텐트 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얻게 될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아무리 사서 노숙을 즐기는 세 사람이지만,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귀촌이란 뿌옇고 형체 없는 연둣빛 환상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막상 진지하게 시작하려 하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로는 지금 살고 있는 생활과 금전적인 문제였다. 각자의 학교와 공방과 가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도대체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아주 천천히 예전부터 이야기해왔던 문제들이지만 크고 사소한 걸림돌들은 더 가까워질 뿐 사라지진 않았다.      




 우선 나의 학교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졸업을 귀촌 시작의 기점으로 삼았다. 공방은 집을 줄여 옆에 함께 짓기로 했다. 청주에서 지내는 아빠가 우리가 점찍어둔 청주, 오송, 세종 등 그 근처의 땅을 물색했다. 세 사람이 각각 내던 월세와 생활비를 합치고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면 돈은 그럭저럭 맞아 들어갈 것 같았다.      


 귀촌이라는 목표를 위해 나는 휴학 없이 동기 중 가장 빠르게 졸업을 했다. (이런 것만 일등하기 달인)

 엄마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알던 소중한 인연들과 매주 보던 귀여운 아이들과 안녕해야 했다. 

아빠는 2년 정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집터를 찾으려 다녔다. 셋이 모이면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의견을 맞춰보았다. 위치는 어디가 적절한지, 주변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있던 집을 고칠 것인지, 새로 지을 것인지. 집을 짓는다면 크기가 어떠한지, 외관은 어떻고 구조는 어떤 형태일지. 모아둔 사진들과 물어물어 얻은 얕은 지식으로 대강의 항목들을 차근차근 정해나갔다.




 어쩌면 더 현실적일 문제는 가족의 의견 일치다. 캠핑으로 다져진 야생력과 타고난 촌티는 세 사람의 레이더가 철새처럼 자연스럽게 시골로 향하게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러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모두가 행복해할 삶인가, 최대한 길게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까지 것 뭐 어때. 근사하게 지내보자’와 같은 예상에서 

‘과연 귀촌을 하기는 하는 걸까? 돌려줘 내 창전동 라이프!’의 걱정까지. 


모든 일이 그렇듯, 결과는 예상과 걱정 사이에서 매듭지어진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온몸으로 부딪힐 차례다.

 이제 단단히 마음을 동여매고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그저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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