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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May 17. 2016

귀촌 일지 ;예상과 걱정 사이

생활 편 _ 마당 가꾸기

;예상과 걱정 사이

생활편 _ 마당 가꾸기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고 가장 먼저 눈 맞추는, 하루 끝에는 세 식구가 함께 한 바퀴 돌며 그날의 저녁을 챙겨가는 곳. 걱정과 기대와 신기함과 뿌듯함, 그리고 고마움까지. 모든 것이 거름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는 곳. 우리 집 마당은 어제보단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마당 지도.


 세모난 모양의 땅 위에 네모난 건물을 두 개 세우고 나니, 남쪽을 향해 길고 뾰쪽한 모양의 마당이 생겼다. 처음 가져보는 마당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많은 고민과 조언이 있었다. 동네 아저씨는 지내다 보면 관리가 어려워 결국 시멘트로 덮어버리게 된다 했다. 겨울에 오게 되어 다른 집들의 마당을 보고 담장 너머 배울 수도 없었다. 결국 그냥 모든 일에 그러했듯, 해보고 싶었던 것은 다 해보지 뭐. 농사를 짓기에는 워낙 맨 땅이기도 하고, 어렵다는 첫해이지만, 심고 싶었던 것은 그냥 다 심어보기로 했다. 식물원에 갈 때나 책을 볼 때마다 업데이트해두었던 찜한 식물 목록을 하나로 묶어보았다. 그리고 예전에 조그맣게 텃밭을 해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 키우기 쉬운 작물들과 꽃, 나무 몇 가지를 골랐다. 이제 예쁘게 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상상에 나는 이미 타샤 튜더였다. 우거진 풀숲과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서, 재배한 딸기로 만든 스무디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기 전에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집을 지으면서 땅이 너무 질척하여 쏟아부어놓은 한 트럭의 잡석들. 트럭 가득 실려와 마당에 흩뿌려진 돌들은 꾹꾹 다져진 덕분에 땅 깊숙이 침투하여 겨우내 얼고 녹고 또 더 깊숙하게 박혀있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돌을 다 파냈다. 어떻게? 손으로. 약 100평 정도의 마당은 기계가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다. 동네 아저씨들은 그냥 심어도 된다고 했지만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자갈밭에 소중한 씨앗을 뿌릴 수 있지. 그리고 그건 정말 말도 안됐다. 다시 생각해봐도 절대 무언가를 심을 수 없을 그런 땅이었다. 어느 야외 주차장과 다를 바 없던 자갈밭을 그나마 흙이 대부분인 밭으로 바꾸기 까지, 해가 뜨고 정확히 서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땀 벅벅이 되어가며 정말 고생스럽게 일했다. 욕 반 땀 반으로, 새 터전을 일구는 화전민의 마음으로, 세 사람 모두 파스와 안마기를 달고 살며 한 달여 시간이 지났다. 아빠가 공수해 온 엉덩이 의자와 멀쩡한 호미 한 자루, 깨진 호미 한 자루, 삽 한 자루, 다용도실에 있던 플라스틱 체 두 개. 이 아이템으로 정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거대 미션을 이뤄냈다, 결국. 이건 무슨. 한 삽씩 옮겨서 산을 옮겼다는. 그런 전설을 몸소 재현해 낸 그런 상황이다.      



노동의 현장, 소중한 도구들.


 그리고 놀랍게도 또 한 번의 고비가 온다. 자갈을 거르고 나니 고랑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도 농사가 지어진 적 없는 맨 땅을 파서 높게 쌓아 올리려고 하니, 일단 삽을 꽂는 것부터 극한 힘듦이다. 삽에 몸을 완전히 싣고 온 체중을 올려놓아야 땅에 삽이 꽂힌다. 그러면 그걸 들어내서 가운데로 쌓는 것이다. 지금, 앉아서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어깨와 허리가 당겨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렇게 들어 올려진 땅은 곡괭이와 호미로 잘게 부수어주어야 한다. 보기엔 너무너무 쉬워 보여서 어이없게 화난다. 숟가락 들 힘까지 아껴서 찍어 내려야 흙들이 부서지는 척이라도 한다. 정말 고랑 만들기는 우리 세 식구가 9시쯤 일어나서 세시쯤이 되면 도저히 더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정말 에너지가 끝나서 잠드는지도 모르게 자버리는, 하지만 만든 것은 대여섯 고랑뿐인, 그런 일이다. 힘을 다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심어야 할 식물이 생겼을 때마다, 한 줄 한 줄 고랑을 만들었다. 다른 집은 트랙터가 슉 지나가면 훨씬 더 높고 곱게 생기는 고랑을, 원시시대 농사짓듯 일일이 만들어냈다. 방법도 모르고 요령도 없어서 더 힘들고 고생스럽게 한 것이 틀림없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고 울화통이 터져했지만, 결국 늘 그렇듯 꾸역꾸역 다 해냈다. 그리하여 지금, 5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 일궈진 고랑과 빈칸이 없이 식물이 심어진 마당이 되었다.          





안녕 친구들. 처음 모종 심던 날.


 이렇게 지나간 힘듦은 또 그만큼의 애정이 되어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할 지라도 내 눈에는 국립공원 부럽지 않다. 이미 내 자식 같은 존재인걸. 집을 잠깐이라도 떠났다 돌아올 때면, 가방을 문 앞에 던져놓고 달려가 확인하는, 내가 바로 식물 맘! 처음 가꿔보는 큰 밭과 작은 잔디밭은 어느새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애정의 주인이 되었다. 신기하고 또 아주 많이 고마운, 서툰 손길에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식물들. 딸기를 노리는 까치와 쌀알을 쪼아 먹는 참새, 해 질 녘이면 말을 거는 고양이, 밤이면 발자국을 꾹꾹 남기고 사라지는 고라니까지. 모두의 놀이터인 우리의 마당은 이렇게 아주 거친 흔적들과 또 고운 결로 만들어졌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어나 씻고 밥을 먹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나니 어느새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 빨간 장화를 신고 마당에 나가 한 아이 한 아이 눈을 맞추고 길어진 그림자를 걸었다. 한 칸 한 칸 심다 보니 물뿌리개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어진 마당에, 아빠가 사 온 호스를 쭉 빼서 끝에서 끝까지 물을 주었다. 나를 둘러싼 공기는 아주 차분했고 또 달궈진 햇볕에 그을린 땅은 따뜻했다. 때 이른 개구리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바람은 천천히 낮게 불어왔다. 흩날리는 물방울에 식물들은 생기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군가가 평화를 한 컵 부어놓고 간 것 같았다. 일궈낸 힘듦보다 변화하는 마당의 모습이 주는 다정함이 더 크게 자라나는 순간이었다. 한 뼘 자라난 나의 마음처럼, 오늘도 한 조각 변한 나의 사랑스러운 마당. 벌써 몇 년 후의 모습까지 그려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내일 더 나은 모습이 되는 것. 비록 지금은 연약하더라도 열심히 살아가자. 마당아, 그리고 다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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