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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Nov 03. 2017

월간마당 특별편

[기고] 가을에 봄

1년 만에 돌아온 월간 마당, 특별편      

[기고] 가을에 봄

Posted by 식물맘 입력: 2017/11/3 16:10:23



bgm. 참깨와 솜사탕 _ 봄바람




11월의 마당엔 봄의 꼬리가 내린 비스듬한 볕이 살랑거린다.    

  

9마리의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노란 잔디 위에 몸을 부빈다. 영양이 넘쳐 보이는 햇살이 아깝다. 뭐라도 말리고 싶어서 이불을 널어본다. 잘 말린 이불에 돌돌 감기면, 적셔두었던 가을 낮에 기분이 낙엽처럼 가벼워진다.       


아직은 해가 남아있는 오후, 코를 훌쩍이며 담요를 덮고 좋아하는 밴드의 새로운 노래를 반복 재생한다. 채도가 빠진 풍경을 배경으로 듣는 노래의 가사는 ‘아직도 거리엔 봄바람’.     


계절이 변해간대도 아직 그대로죠

난 그대로 난 이 자리에

수북하게 고여있고

지나가는 많은 날들이 내게는

아무 의미 없는걸     


커튼 앞 바닥에 발이 시리고, 꽃을 띄워놓은 항아리의 물이 아침이면 어는데, 가을의 신곡에서 쌉쌀한 봄 맛이 난다. 뜨겁고 차가운 계절 사이에 설레고 쓸쓸한 바람이 분다. 가을과 봄은 슬며시 닮았다. 식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가을에 봄꽃이 핀다.       



서리가 내리는 새벽의 추위가 지나고 내려앉는 햇살은 언 땅을 녹이는 봄의 것과 닮았다. 흙이 가루 같이 가물고, 뿌리가 썩게 질척했던 요란한 계절 후 숨을 고르던 나무는 비로소 봄인 줄 알고 꽃 몇 송이를 가지에 달아본다. 눈뜨면 잊는 꿈같이 겨울은 짧고, 뜨거운 여름은 너무나 옛날 같아서, 주렁주렁 피우진 못하고 몇 송이만.      


어쩌면 봄이 너무 바빴던 것이다. 그때 미처 피우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더 추워지기 전에 늦더라도 세상 구경시킨 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남들 다 나오는 봄 말고, 낭창한 가지 속에 돋보이고 싶어서, 꼭 지금 나오고자 한 꽃도 있을 것이다. 그중 몇 개는 다른 꽃들이 피니까 얼떨결에 함께 갔을 수도 있고, 햇살이 너무도 먹음직스러워 볕탐을 참지 못하고 피워버렸을 수도 있겠다.      


가을에 핀 꽃처럼 세상이 정해준 때에 맞지 않게 이르고 뒤늦은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라던가, 육 학년 때까지 했던 흙놀이, 스물다섯의 어리광... 아무것도 없는 벽을 쓸다 보면 걸리는 못 머리처럼, 멋대로 길에 자라 자꾸 걸려 넘어지는 깻잎 뿌리처럼,  균일한 결에 빗겨 나 툭툭 튀어나온 것들.   

   

그때의 행동이, 기회가, 순간이 어떻다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일렀건, 적당했건, 늦었건 이미 지났고, 바꿀 수 없으니까. 다만 생각하는 것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한 번 더 이해하려 한다. 툭 튀어나온 사람과 감정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 속도가 여러 개인 톱니바퀴가 모여 사람이 세상이 만들어지니까. 때에 맞지 않은 것들을 애써 평평한 선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봄인 줄 착각했거나, 일부러 가을에 나오고 싶었거나, 남들 하니까 얼떨결에 피었거나 하여 가을마당에 미소 한 조각 걸리게 한 꽃들을 떠올리며. 오늘 그림 그리러 오는 친구들에게 더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해야지.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지 말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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