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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25. 2022

아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


                      아기



오래된 8mm 비디오테이프 속

세상에 갓 나온 딸아이가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데 꾸벅꾸벅 졸면서

하얀 입술에 천근만근 힘을 주고 있다


하여간 눈꺼풀의 무게가 지구를 들어 올리듯

내려 감고는 아랫입술에 힘이 슬슬 풀리는데

일순 경기를 일으키듯 낭떠러지에서 놀라 잠을 바위처럼 밀어내고 입술을 잡아당겨 문다


이마에 땀까지 송글이며 온 힘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기억을 쫓아 더듬고 또 더듬는데

우주보다 더 무거운 잠은 입술의 힘을 푼다


아이고야!

자꾸 입술의 힘은 풀리고 눈꺼풀은 내려오고

머리는 달콤함에서 점점 멀어지고

턱이 아래로 축축 늘어지고

벌어진 입에서 묽은 침이 떨어지네




아기는 순수하다. 물처럼 순수하다. 너무 순수하여 이기적이다. 자연은 이기적이다.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잔다. 순수 자연의 욕망을 거침없이 쫓아간다. 배려나 고마움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탄생과 성장과 죽음의 윤회 속에 생명의 환희는 숭고하다. 30년이 다되어 성장한 딸의 아기 모습을 보니 한없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생존의 본능 속에 살던 아기가 어른이 되어 독립해서 살아간다.


아기새도 둥지 속에서 벌레를 받아먹다가 날개를 펴고 미련 없이 날아간다. 과연 엄마와의 인연이 이어지는지 궁금하다.


자연은 냉정하다. 거기에 미련도 없고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다. 그저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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