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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29. 2022

문 의사

시골 마을의 치료를 책임지던 돌팔이 의사 이야기

태백산에서 시작한 낙동강이 구불거리며 내려오다  'ㄴ'자로 돌아, 산맥의 흙과 모래를 내려놓는 곳에 고향이 있다. 다시 'ㄱ'자로 구부려지기 전, 강은 넓은 범람지를 남기고 그 위에서 수없이 명멸하는 생명을 보며 흐르고 있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문 의사의 집 대문을 들어섰다. 면역이 생기기도 전에 맞닥뜨린 미세 생물의 공격에 동생의 왼쪽 귀 주변에 메추리 알 같은 종기가 났다. 1970년 초반의 고향은 사방 50리에 의원 하나 없는 외로운 시골마을이어서 10리 길을 걸어  의사 집으로 도달하였다.


의원 겸 주택으로 사용하는 문 의사의 집은 가을 하늘처럼 청명했다. 한 때 위세를 부리던 일본인 선생이 황급히 떠나고 남은 일제식 목조 주택이었다. 마당 중앙으로 수석과 화분으로 정원을 꾸미고 잘 정돈된 화초들이 균형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들거리는 마루가 빛이 났다.


"흐~흠, 많아 아팠겠는데..."


동생을 치과 진찰대에 앉히고 문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비음이 약간 섞인 그의 목소리는 영화배우처럼 정감 있게 들렸고 하얀 피부와 우뚝 선 코, 깊은 눈매가 선량하면서도 의사의 품위를 스스로 풍겨 주었다.


스스로 터지기 직전의 종기는 매스를 대기도 전에 절개되어 누런색 고름이 동생의 빰을 흘러내렸다.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배를 잡고 나뒹굴었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네!"


여름 농번기 철에 전 날 먹은 쇠 간과 막걸리에 토사곽란이 왔다. 마루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로 축담에 쓰러진 아버지의 얼굴은 고통에 찌거러지고 벌린 입에서는 토하지 못하는 침이 줄줄 흘렀다.


"문 의사를 모시고 오너라!"


다급한 어머니의 외침에 자전거를 내어 달렸다. 어두워가는  비포장 10리 길을 달려 찾은 문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밤이라 못 간다는 얼굴에서 참기 힘든 두려움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더 부탁은 못하고 돌아섰다.


은 깊어가는데 아버지의 복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시 큰 형이 문 의사를 데려오기 위해 출발하였다. 그동안 이웃에 사는 고모가 와서 민간요법을 알려주었다. '빼뿌쟁이'라고 하는 질경이 뿌리의 액즙을 먹어보라고 하였다.


그 밤에 플래시를 켜고 신작로 길 옆으로 난 풀숲을 뒤져 질경이를 캐왔다. 질경이의 뿌리 부분을 모아 절구통에 빻아 즙을 내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먹여 보았다.


"어이구! 쑥 내려간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신기하게도  복통이 가라앉아 혈색이 돌아왔다.


그때 문 의사가 자전거를 타고 겨우 도착하였다. 환자를 진찰하고 알 수 없는 주사를 한 대 놓아주고 돌아갔다. 질경이 때문인지 문 의사 때문인지 다음 날 아버지는 거뜬하게 일어났다.


 의사는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그중 첫아들이 나의 초등학교 입학 동창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짧은 기간에 같은 반에서 공부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은 6년을 같이 한 다른 동창보다 더욱 선명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시골 촌 구석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야말로 군계 중에 일학이었기 때문이었다.


손등에 때가 끼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시골 아이들에 비해 그 아이는 상아 같은 뽀얀 살결과 깨끗한 옷차림으로 도시 아이들보다 더 찬란하였다. 흙과 함께 뒹굴며 놀던 우리들과는 급이 다른 귀공자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공부도 잘해 반에서 무조건 1등에다 반장까지 도맡아 하니 선생님의 편애가 그에게로 모였다. 부모의 학구열과 선행 학습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영특한 그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4학년을 앞두고 부산으로 전학하였다. 덕분에 강력한 라이벌을 상실한 나는 2등에서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의사는 돌팔이 의사였다. 일본인 선생을 따라 일본 오사카로 흘러가 치과의원에서 조수로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부산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국내에서 의대나 치대를 졸업하지 못한 데다 정식 의사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처지이라 우선 의사가 없는 오지의 마을에서 불법으로 돌팔이 의사 노릇을 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외과, 내과, 치과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산부인과 환자도 보면서 그 지역의 이름 있는 의사로 소문이 나고 현금이며 곡식이나 패물들을 치료비로 받아 재산이 점점 불어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감의사 면허증에 대한 열망이 쌓여갔다. 그 소망을 그의 아들을 통하여 실현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큰 비밀이 있었다. 부산에 있는 본처와 아들에게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거짓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부산 본가에서는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시골 마을에서 돌팔이 의사 노릇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문 의사의 장남이 부산에서 공부를 하여 치과 대학을 응시하였으나 무려 9번이나 떨어졌지만 도전 10수 만에 겨우 치대에 합격하였다. 아버지의 집념으로 아들 하나를 치과 의사로 만들었지만 아버지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아들은 결국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천륜의 끈을 끊고 의절하고 말았다.


풍문에 치과 의사인 동창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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