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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잼 Aug 17. 2021

새벽 등산과 인절미 그리고

아빠.

아이패드 그림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엄마를 본 사람은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데, 아빠를 보고 나면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정서적인 면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 내 정서의 대부분은 아빠가 물려준 것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의 작은 산에는 약수터가 있었다. 새벽마다 긴 행렬이 빈 통을 들고 서서 물을 떴다. 짙푸른 남색물을 가득 머금은 하늘을 바라보며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시간, 새벽 공기를 깊이 호흡하고 나면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등산 코스의 마지막은 항상 방앗간이었다. 콩고물이 묻기 전의 인절미는 그 시간이 아니면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몰랑거리는 인절미 봉지를 찰싹찰싹 때리며 집으로 돌아오면, 기름을 잔뜩 두른 프라이팬에 찹쌀을 가득 풀어놓는다. 은근한 불에 인절미 양면을 노릇하게 굽고 나면 겉바속쫀의 인절미 부침개가 완성된다. 굳기 전에 나무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설탕에 찍어 먹으면 하루의 시작이 온통 달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침을 일찍 서두른 탓인지 부드러운 인절미를 뱃속 가득 채웠기 때문인지, 인절미 마냥 눌어져서 실컷 늦잠을 자던 일요일. 세상은 온통 재미난 경험투성이고, 삶이란 매일 이렇게 푸르고 부드러울 것이라 확신하던 시간들


삶이 딱딱하고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을 때마다 어린 시간을 떠올리며 산을 오른다. 아빠와 함께 오르던 그 작은 산을, 이제는 홀로 오른다. 내려오는 길에 들르던 방앗간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더 이상 아빠도 몰랑거리는 것을 사다가 내 입에 넣어주지 못한다. 아무것도 삼킬 없을 같은 날, 아빠가 입에 넣어주던 따뜻한 인절미가 떠오른다. 인절미를 먹기 위해 내일은 아침을 서둘러봐야겠다. 세상이 밝고, 몰랑거리고, 부드럽다는 것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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