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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엔다니 Feb 10. 2023

현지에서 적응 잘하는 방법 1

집주인과 친해지기

 캄보디아에서 얻은 또 하나의 가족!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집주인 내외분이다. 실제로도 아주머니, 아저씨가 아닌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가끔 한국 얘기가 나오면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칭얼대는 내게 지금 보고 있지 않냐며 너스레를 떠시기도 하셨다.

 처음부터 엄마, 아빠라고 호칭한 것은 아니었다. 단신 부임이라는 코이카 원칙에 따라 혼자 살다 보니 밥도 먹을 만큼만 해야 한다. 나중에 시집가면 평생 집안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며 집에서는 손하나 까딱 못하게 막아주신 엄마 덕에 요알못인 나에게 먹을 만큼 일 인분의 양에 맞춰 요리하기란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아예 음식을 넉넉하게 해서 주인댁과 나눠먹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음식이에요. 맛 좀 보세요~’

 첫 음식으로 캄보디아에 없는 음식인 미역국을 선보였다. 그다음 날. 맛이 좋아 한 번 따라 해 봤다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캄보디아식으로 만든 미역국을 내미셨다. 내가 한 거랑 맛이 거의 같았다. 나한테 레시피도, 재료도 묻지 않으셨는데 이걸 어떻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쌍엄지를 치켜들었다. 나의 반응에 아주머니께서 기분이 좋으셨던지 그날 저녁에도 음식을 날라주셨다. 아주머니께서 음식을 건네주시며 빈 그릇을 가져가시려는 찰나! 아주머니의 손목을 잡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아주머니께 한국에서는 맛있는 것을 얻어먹고 난 후에는 그 그릇을 다시 채워서 돌려주는 관습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빈 그릇에 미리 준비해 둔 한국 음식을 담아드렸다. 아주머니께서 좋은 문화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미소를 지으셨다. 그 후 접시는 항상 가득 찬 채로 우리 집과 주인집을 오갔다. 양국 음식들이 두 집을 오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현지 식구들과의 관계도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 주인댁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딸네 부부가 직장에 가있는 동안 안주인 어른께서 어린 손자들을 돌봐주신다. 캄보디아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문 앞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계셨다. 주인댁 아주머니께서 그날따라 유독 나를 반기셨다.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수다를 끝내셨는지 손자를 등에 업고 내게 오셨다. 오호호 호호~ 아줌마 특유의 웃음소리로 신나게 웃으시면서 동네 사람들이 행(손자 이름)이 쫀찌읏 꼬레(한국사람=나) 아들이냐고 물어봤다며 자랑을 하셨다.(캄보이아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다.) 맞장구를 치며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다 보니 졸지에 두, 세 살 난 아들이 생겨버렸다. 갑자기 내게 생긴 아들 = 주인댁 아주머니 딸의 아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나는 주인댁 아주머니의 딸이 되었고, 이때부터 주인댁 내외분을 엄마, 아빠라 부르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배가 불러있던 내 아들의 친엄마는 예쁜 딸을 낳았고, 그 공주님은 어느덧 첫 돌을 맞이했다. 나도 쓰레이 뺃(아기의 이름)의 돌잔치에 초대되었다. 캄보디아에서도 돌잔치를 하나보다. 한 달 전부터 엄마가 손녀딸 생일을 알려주며 꼭 참석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잔치 시작은 저녁 여섯 시인데 꼭두새벽부터 마당이 시끌시끌했다.

 돌잔치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돌잡이! 그래서 준비했다. 쌀, 실, 돈, 연필, 청진기, 테니스공, 책 등 급하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아 돌잡이 상을 만들어 엄마한테 선보였다. 이게 뭐냐고 묻는듯한 어리둥절한 표정의 엄마. 한국에선 첫 돌에 이런 이벤트를 한다며 각각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 드리니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는지 내 방에 뒀다가 파티 시작하면 나보고 짜잔~하고 들고 나오라고 하셨다.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으시다.

 해가 저물자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낮에 각각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줄 때에는 아무거나 집어도 상관없다며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란다고 하던 쓰레이 뺃의 엄마와 할머니. 막상 돌잡이를 시작하자 일심동체가 되어 엄마는 아기의 몸을, 할머니는 돌잡이상을 움직여 쓰레이 뺃이 돈을 잡게 하는 데 성공했다. 생각해 보니 슬쩍 어떤 직업이든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엄마들이란!!!(나도 내 아들 돌잔치에서 아기가 청진기 잡으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뺏었었더라는..!)

 잔치를 베푸는 의미는 아이가 무사히 첫 생일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고 장차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한국과 같지만 식순은 조금 달랐다. 초대받은 손님들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다가 일곱 시가 다가오니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사람들이 아기와 케이크 주위에 모두 모이자 초에 불을 붙였다. 이 하나의 촛불에 스파클라 폭죽을 점화시키며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00시에 새해맞이를 하듯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일곱 시 정각이 되자 생일축하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뒤는 여느 생일 파티와 같았다. 왜 하필 일곱시지? 일곱 시가 갖는 의미가 궁금했다. 잔치가 파한 후 가족들과 함께 손님 맞느라 못 챙겨 먹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물어봤다. 정식으로는 아이가 태어난 시각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저녁 일곱 시를 임의로 정했던 것이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정확하게 첫 돌이 되는 순간에 축포를 터뜨리는구나! 친구의 생일에 딱 맞춰 축하를 해주고 싶을 때, 우리는 날짜가 바뀌는 00시 00분을 기다린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우리 집주인 내외분을 엄마, 아빠라 부르며 식사도 함께하고 명절 때 절도 따라다니고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분들은 캄보디아에서 나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셨고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셨다. 여행객으로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현지 문화들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말이다. 초등학생 때 가훈을 적어내는 숙제를 낼 때면 너무 흔하고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보니 이건 흔하고 진부한 말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해외 생활도 마찬가지다. 나의 보금자리가 안녕해야 낯선 타지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를 위한 첫 번째 단추가 나와 함께 생활하는 현지 가족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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