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아. 오늘 우리 집에서 볼래?”
”아침부터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그러엄. 너무 보고 싶지.”
”너 좀 이상하다? 목소리가 좀 차분한데. 무슨 일 있지?”
여자의 직감이란 것일까? 무슨 일 없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정말 무슨 일 있구나? 내가 학교 가는 것 때문에 바로는 안되고 점심때 갈 수 있는데 넌 스케줄이 어떻게 돼?”
”난 오후에 2개 정도 더 들어야 해서 이따 한 3시 이후부터는 시간이 괜찮을 거 같아. 무슨 일이 없다고 하고 싶었는데..”
말을 이어가려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갑자기 왜 그래. 나도 슬프잖아.”
수화기 너머 그녀도 울고 있는 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이렇게 나약해지면 우리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려고 그래! 정신 차려!’
”아침부터 미안해. 울지 말고. 이따가 보자.”
”알겠어. 학교 잘 다녀오고.”
’괜히 전화를 걸었나.’
아침부터 힘을 얻고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소영이까지 울려버리고 말았다. 무슨 내용인지 말도 안한채 갑갑하게 만들어 놨으니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심란할까 싶어 걱정이 된다.
’씻자.’
수업이 끝났다. 일어나야 하는데 멍하니 앉아 있다. 휴대폰 진동이 느껴진다.
’소영이겠지.’
전화를 꺼내보니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뭐야 스팸이잖아.’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지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일어난 김에 소영이에게 전화도 건다.
”경남아. 지금 끝났어?”
”응. 이제 집에 가려고.”
”집 가기 전에 학교 앞 커피숍으로 와. 나 미리 와 있었어.”
”어? 벌써?”
”하루 종일 심란했거든. 너.. 혹시.”
”혹시..?”
침을 꼴깍 삼킨다.
”여자 생겼어?”
”여자?”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질투를 했구나. 질투한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푸핫. 여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렇잖아. 갑자기 아침부터 심각하게 무게 잡으면서 얘기 꺼내고. 다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더니 집으로 와서 상의해야 한다고 하질 않나.”
”미안해. 그런 건 아니고. 암튼 내가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알겠어. 빨리 와!”
”넵!”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녀가 날 위해 기다리고 있는 카페를 향해 달린다. 정말 빨리 달려서 10분 정도 만에 카페 앞에 도착했다. 땀이 흘러 티셔츠가 살짝 젖었다. 혹시나 냄새가 나면 어쩌지 싶어 맡아봤는데 다행이다. 혹시 몰라 가방 속에 가지고 있던 향수를 꺼내 몸에 살짝 뿌린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소영이는 평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책을 보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녀가 내 여자친구여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반갑게 걸어가려다가 갑자기 멈칫거려졌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하는 걸까. 얘기를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있긴 할까?’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고민했다. 머리로는 그녀를 위해 몇 번이고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고민했지만 그럴수록 마음만 아파졌다. 지금도 이렇게 눈앞에 있는 그녀만 보면 좋은데 헤어지는 건 답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또 답 없는 무한 반복적인 질문의 늪으로 빠져갈 즈음 소영이가 불렀다.
”뭐 해? 일로와.”
”어.. 어. 나도 모르게 멍 때리고 있었네.”
”뭐야 거기 우두커니 서서. 바보같이 멍하게 있더라고. 괴상하기 짝이 없군!”
”괴상하기까지 했어? 하하. 그냥 책 읽고 있는 네 모습이 너무 이뻐 보였어.”
”내가 지성미가 있긴 하지. 또 반했구나?”
장난기 어린 그녀의 눈빛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한숨은 쉬고 그래. 자 이제 빨리 말해봐. 무슨 일인데?”
”휴. 그러게 아직 젊은데 뭐가 문제지. 어제 잠도 잘 못 잤는데. 정리해서 말하는 게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 이해해 줄 수 있지?”
”무섭게 왜 그러지. 알겠어. 말해봐.”
차분하게 엄마와 대화를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생길 수도 있을 상황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얘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