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걸음
'아.. 기억이 안 나. 괜찮은 소재였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꿈을 떠올려보려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꾸는 동안 재밌었던 느낌이 들어서 바로 메모부터 해야겠다고 계속 다짐했건만, 눈을 뜸과 동시에 휘발되어 버렸다.
"젠장! 벌써 몇 번째야."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 중 하나는 꿈을 잘 기록하지 못해서라고! 꾸는 꿈만 잘 기억하더라도 말이지..'
어떤 핑계라도 좋다. 단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가 내가 아닌 외부요인 탓이면 그걸로 충분해. 그래도 이번엔 좀 아쉬운데 말이지. 분명 글로 남기면 재밌었을 거 같은데.
비슷한 이유로 가끔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사라지는 기억을 놓치고 아쉬워한 적도 있었다. 메모를 남겨야 해! 라며 사라지는 기억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아 봤지만, 막상 남긴 메모를 보는 순간 흥미는 차게 식어있었다. 남겨진 기록 속 글자를 아무리 조합해 봐도 재미와는 무관해 보였다.
'어째서 이런 걸 재밌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다. 최소한 생각을 휘발시키기 전에 더듬거리며 활자화 시켜 놓기라도 했으니까. 물론 해당 소재를 이용해 글을 쓰진 않겠지만 말이다.
흘려보내고 아쉬워하는 건 비단(非但) 기억뿐만이 아니다. 기회도 마찬가지였었다. 내게 찾아왔던 기회라는 녀석은 하나같이 음흉한 데다 그 모습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스쳐 보내기만 했었다. 겨우 지나고 나서야 '설마 기회였었어?'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해 볼 뿐이었다.
"아.. 맞아. 기회였구나."
흘려보내고 나서야 눈치챘다. 좋게 보자면 그래도 기회가 찾아왔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아쉬운 마음까지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부 아쉬운 순간만 있었을까?
모든 기회란 기회는 놓치기만 한 건가?
그렇진 않다. 가장 큰 기회 중 하나는 잡았다.
- 어떤 건가요?
[아내]..
더 이상 말을 이어갔다간 달리지 않던 댓글에 악플이 써질 수도 있을까 봐, 말을 아끼겠다.
- 아끼지 말고 맘껏 해보시던가요? ^^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 그것은 바로 [40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살기만 해도 누구나 40대가 될 텐데, 그게 무슨 기회가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만?
맞는 말이다. 어떻게 살든 죽지 않고 살아내기만 한다면 반드시 40대의 시간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10대 때에 20대의 미래를 그렸었고, 20대 때엔 30대의 내 모습을 꿈꿨었다. 30대엔? 40대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40대라는 시절에 대해 단 한 번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달까?
모든지 막연하기만 했다. 40대가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가 구체화되질 않았다. 단순히 적응해서 다니고 있는 회사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정도만 그려봤었다. 물론 지나고 나니 회사는 내 삶에서 이미 지워져 버렸지만.
막연했기에 구체화시키기 어려웠다. 명확한 목표라도 있으면 이루기 위해 살아갈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러다 막상 40이라는 숫자를 마주했고 현실감은 없었다. 진짜로 어영부영 살다 보니 나이만 먹게 되었달까..
초조해졌다. 게다가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여러 번 다시 꾸고 아무렇지 않게 휘발시켜도 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실전. 내 삶. 정신이 번쩍 들었다.
40대는 평균수명을 잣대 삼아 보자면 여전히 젊은 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젊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나의 탓일까, 사회적 시선 탓일까. 아무렇게나 살아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노력만 해서 성과가 마구 주어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여전히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 비해 크게 나아진 건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야 실패한 삶이 아니라고 판단받는 나이, 그것이 40대 아닌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때로는 신의 모습을 했을 누군가에게, 때로는 스스로에게 [잘 사는 법]에 대해 물어보지만 합당한 답을 들을 길은 없었다. 마치 휘발되어 버린 꿈처럼, 현실의 내 모습이 휘발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무서워졌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미약하게나마 일군 평범한 일상이 아스라이 사라져 버릴까 봐.
그리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아쉬워만 해서야 되겠어? 지금의 일상에 좀 더 충실해보라고.'
지나간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긴다. 어떻게 발버둥 친다 해도 휘발된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모습 또한 휘발되어 버린 것이다. 꿈과의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모습이 쌓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정도.
겪어보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미리 단정 짓지 말자. 인간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어쩌면 설레어 할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점 한번 보러 갈래? 아주 용~하다는 역술가를 소개받았는데 말이지. 한번 들어봐. 내가 아는 지인이 있는데 글쎄..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휘파람을 불었다는 거야."
"그냥 휘파람을 불고 싶었나 보지. (신종 기선제압법인가?)"
"아니 들어봐. 그 뒤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현 상황도 맞추고, 앞으로 진행될 미래도 예언했대! 그런데 그게 다 맞말이더래‼"
"응.."
시큰둥해하는 내게 한동안 아내는 역술가의 위엄을 묘사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는데, 문득 역술가가 떠오르는 건 무슨 일이지?
'정말. 불확실한 미래의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한번 가볼까?'
인생은 늘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건만, 40대의 백수 타이틀이 불안하게 만드는지 이제는 평생 관심도 없던 역술에까지 관심을 가지는구나.
'자.. 잠깐. 그래도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잘하면 글 소재로라도 쓸 수 있지 않겠어?'
오늘도 영양가 없는 생각을 열심히 해보는 거 보면 아직 갈길이 멀구나. 매일매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좀 차리자. 좀 더 구체화시킨 40대의 계획도 세우고 말이지. 세 달이 채 남지 않은 24년도를 떠올려본다. 분명 지나고 나면 이 순간도 굉장히 아쉬울 것이다. 부디 정신 차리고 당연하다 생각하는 오늘부터 잘 살아내자. 단순하지만 그 안에 부디 삶의 답이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놓아버린 정신줄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