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밤
집에 도착한 정이는 엄마를 도와 저녁 준비를 한다. 엄마는 어제의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정이를 힐끔 쳐다본다.
”정아. 어제는 엄마가 많이 힘들어서 얘기를 다 못 들어줬어.”
”괜찮아요. 엄마 혹시 월선 아주머니 아세요?”
”글쎄다. 어디 사는 분인데?”
”산속 사당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세요.”
”혹시 무당?”
”어. 맞아요. 아세요?”
”알긴 하지. 한참 전에 아이 잃고 나서부터는 마을에서 본 적이 없었던 거 같구나. 갑자기 그 사람은 왜?”
정이는 왠지 월선을 만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실은. 오늘 홍심이 데리고 월선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어제 홍심이가 꾼 꿈도 있고 아무래도 평범한 일이 아닌 것만 같아서요.”
”얘야. 월선인가 하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우리 집에 갑자기 무당이 왜 생기겠니? 홍심이는 멀쩡한데.”
”아직은 그렇죠. 아주머니가 그랬어요. 조만간 신병이 시작될 거라고. 그리고 어제 꿈 얘기를 자세히 듣고 나면 엄마도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휴.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누자꾸나. 일단 아버지 밥부터 가져다 드리자.”
엄마와 자매는 밥을 먹으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엄마는 대수롭게 느끼지 않는다.
”홍심아. 엄마도 어렸을 때 무서운 꿈 꿀 때가 많았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키 크려고 할 때 무서운 꿈도 꾸고 한다고 하셨어. 그리고 굿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우리 집은 너희들도 알다시피 하루 벌어먹고사는 집이니.”
”월선 아주머니가 돈은 받지 않으시겠대요.”
”말이 그렇지. 어떻게 또 그럴 수 있겠니. 그리고 엄마는 그 여자의 속도 도통 모르겠다. 너희들도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좋겠는데.”
정이는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이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엄마. 나 머리가 좀 어지러워요. 속도 메슥거리고.”
홍심이가 칭얼거린다.
”급하게 먹어서 그래 홍심아. 언니는 지금 속이..”
얹힌 것처럼 속이 좋지 않다. 토가 나올 거 같아 급히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한참 동안 토를 했다. 특별히 빠른 속도로 먹지도 않았는데 저녁에 먹은 밥을 거의 다 게워냈다.
”언니 괜찮아?”
”아우 죽겠어. 빨리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러지. 너도 속 안 좋아?”
”응. 근데 참을 수는 있을 거 같아. 머리가 좀 어지럽긴 해.”
엄마도 몸이 별로신지 자리에 누우셨다.
”얘들아 오늘은 일찍 자자. 엄마도 일을 많이 해서인가 몸이 으슬거리네.”
아버지는 식사 후 친구 집에 가셨는데 늦게 돌아오실 모양이다.
정이는 잠결에 끙끙 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이 떠졌다. 옆을 보니 홍심이가 괴로워하고 있다. 엄마도 몸이 안 좋으신지 앓는 소리를 내신다.
”홍심아! 일어나 봐!”
”으으..”
정신이 드는지 안 드는지 홍심이의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큰일이네. 약초라도 구해야 하나.”
옆에 엄마도 힘드신지 앓는 소리를 내신다.
”정아 일어났니? 엄마도 머리가 지금 너무 아프네. 아무래도 음식을 잘 못 먹었나 보다. 넌 괜찮니?”
”네 전 괜찮아요. 아무래도 아까 자기 전에 토해서 그런가 봐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며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뒤에는 홍심이가 있는데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어 두려움이 생긴다.
”호.. 홍심아? 괜찮아?”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같은 것이 들린다. 자세히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언니 돌아본다?”
마음을 먹고 있는 힘껏 뒤로 돌아봤다. 홍심이는 어느새 일어서서 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그래? 나 무서워. 엄마 홍심이가 이상해요.”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
엄마를 쳐다봤는데 아까 전과는 다르게 얼굴색이 좋지 않으시다. 약간 보랏빛이 감도는 느낌에 몸도 많이 아프신지 오들오들 떨고 계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엄마와 홍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정이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 홍심아! 제발 정신 차려!”
홍심의 기괴한 중얼거림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엄마 사이에서 정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아버지라도 계셨으면 좋으련만.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소식도 알 수가 없다. 홍심의 중얼거림이 멈추더니 정이 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울고 있는 정이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다가간다.
”멀쩡하구나?”
”홍심아 뭐라고?”
”넌 왜 멀쩡하지?”
’홍심이가 아니구나.’
순간적이지만 홍심이의 몸을 노리는 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 큰 두려움이 몸을 굳게 만든다.
”저.. 홍심이를 살려주세요.”
”계획이 틀어졌군. 방해자는 죽어야 해.”
섬뜩한 눈빛의 홍심은 주방으로 달려간다.
’정신을 차려야 해.’
긴장을 놓치는 순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필사적으로 살아날 방법을 고민해 본다. 홍심이 나간 방문을 걸어 잠갔다.
’엄마를 깨워야 해.’
”엄마. 일어나셔야 해요.”
엄마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까까지의 떨림은 멈추고 엄마는 몸을 움직이고 않고 있으시다. 떠 있는 눈의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 엄마?”
나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어 본다. 사람의 온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무거운 장작 같은 느낌이 든다.
”엄마? 일어나야 해. 엄마!”
돌아가셨나 보다. 밖에는 아까 뛰쳐나갔던 홍심이 돌아왔는지 문을 열려고 흔들고 있다.
”문 열어라. 네 이년.”
”홍심아. 너까지 왜 그래!”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환상인지 구분이 안 되는 긴 밤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