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문밖의 홍심은 발로 문을 차고 뭔가로 내리찍고 있다. 쾅쾅 거리는 소리 때문에 정신이 점점 아득해진다. 엄마도 죽고 홍심이는 정상이 아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홍심아! 정신 차려야 해! 엄마도 죽었어. 제발”
말에 효과가 있었는지 홍심의 행동이 잦아든다. 홍심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뭔가 힘들어하는 중이다. 정이의 귀엔 어린 홍심의 목소리와 알 수 없는 남성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어두운 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홍심이 넘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홍심아!”
두려움 보다 홍심에 대한 걱정이 커진 정이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로 넘어진 홍심의 머리엔 피가 흐르고 있다. 아무래도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다친 모양이다.
”홍심아. 일어나 봐. 피가 나네. 어떡해.”
문득 월선이 떠올랐다.
”홍심아. 미안해. 월선 아주머니를 빨리 데려올게.”
정이는 잘 보이지도 않는 밤길을 내달리듯 달려갔다. 여기저기 긁히고 몇 번 구르기도 했지만 다시 벌떡 일어나 달렸다. 산에 올라가면서부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월선 아주머니!”
아무도 없는 산속에 정이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한참을 달려가던 중 인기척을 느꼈다.
”정이니?”
월선의 목소리가 꿈처럼 다가온다.
”아주머니. 저 좀 도와주세요. 홍심이가. 홍심이가.”
숨이 차서 말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월선은 정이의 모습만 보고도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일단 내려가자. 가면서 듣도록 하마. 업히거라.”
”네? 저 무거운데요.”
여기저기 긁혀서 피가 나는 정이의 종아리를 본 월선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괜찮다. 일단 좀 업혀 보거라. 힘들면 얘기할 터이니.”
”죄송해요.”
월선의 등은 포근했다. 연약해 보이기만 했었는데 믿을 사람이 월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힘드시죠? 저 이제 괜찮으니 내려주세요.”
”조금만 더 가자꾸나. 홍심이는 상태가 어떠니?”
”지금 기절해 있어요.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주머니가 떠올랐어요.”
”잘했다. 생각보다 신이 빨리 움직였구나.”
”저희 엄마도 돌아가셨어요.”
정이는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네. 자다가 깼더니 홍심이는 상태가 이상했고 엄마는 몸을 떨고 있으셨어요. 얼굴색도 보랏빛에 입에는 거품같이 하얀 게 묻어 나오고 있었어요.”
”혹시 이 산에서 버섯 같은 걸 따갔니?”
문득 어제 홍심이와 집에 갈 때 버섯을 딴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분명 엄마하고 예전에 따서 먹었던 버섯이었는데. 분명한데.’
”엄마하고 따서 요리해 먹었던 버섯이 보여서 집에 가는 길에 좀 따갔어요. 근데 그 버섯은 정말 괜찮아요.”
”정아. 홍심이에게 강력한 신이 함께한다고 한 거 기억하지? 아마도 넌 환각을 봤던 거 같구나. 이 산에는 음기는 강하고 안개도 자주 낀다. 독버섯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이것도 신의 계획이었던 게 아닐지..”
”그럴 리가 없는데..”
어느새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정이는 이제 정말 괜찮아졌다며 계속 업고 가겠다는 월선의 등에서 기어코 내려온다.
”고집하고는. 조금 빨리 걸을 수 있겠니? 시간이 좀 지체되었구나.”
”네. 전 뛰지는 못하겠는데 아주머니 먼저 저희 집에 가주시면 안 될까요? 최대한 빨리 가볼게요.”
”알겠다. 여기서부턴 마을이니 그래도 괜찮겠지.”
뛰지 않을 거 같아 보이던 월선이 고무신과 버선을 벗고 뛰어갔다. 집에 도착한 월선의 눈에 쓰러져 있는 홍심이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에 피가 흐르고 있지만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아 안도감이 들었다. 월선의 소리를 들었는지 쓰러져 있던 홍심도 조금씩 움직인다.
”으으..”
”홍심아. 편하게 누워있으렴. 월선 아주머니란다. 눈을 한 번 떠볼 수 있겠니?”
월선의 목소리에 따라 홍심이 몸을 가눠본다. 힘겨워 보이지만 잘 움직이는 걸 보고 월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잠깐만 누워 있으렴. 아주머니가 안의 상황도 좀 살펴봐야겠어.”
열린 문안으로 새까만 어둠이 가득 자리 잡고 있다. 바깥은 달빛이 있어 그나마 보이기라도 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다가가던 월선은 움찔했다. 코를 찌르며 파고드는 비릿한 토냄새가 느껴졌다.
”여보시오.”
어둠 속에서 사람의 형체처럼 보이는 걸 발견하고 월선이 불러 본다. 형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두렵지만 가까이 다가간다. 어둠도 적응이 되는지 방안 내부의 모습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정이 어멈? 일어나 보시오.”
몸을 흔들어 봤지만 차갑게 굳어진 통나무 같은 느낌이다.
’죽었구나. 고약한 신 같으니. 주변 사람까지 죽일 필요가.’
웬만한 신은 신내림을 받을 사람만 괴롭히는 편인데 홍심의 신은 고약한 성향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 방을 나와 부엌에 들어가 봤다. 정이의 말대로 버섯을 넣은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잠깐 이 버섯은?”
틀림없이 독버섯이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들. 아니지. 환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겠지.’
정이와 홍심에게 생긴 이 비극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월선은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