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
“아버님은 어디 계시니?”
”친구 집에 놀러 가셨는데 오지 않으시네요.”
”아버님도 저녁 같이 드셨겠구나?”
”네. 아버지는 어떠실지.”
”몇 시간만 지나면 아침이 될 테니 버텨보자꾸나.”
서서히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월선의 품에서 피곤했던 홍심은 자고 있다. 정이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아 계속 서성이고 있다.
”정이 어머니! 큰일 났어요!”
몇 번 봬서 낯이 익은 정수 삼촌의 목소리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정이구나.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그게.. 돌아가셨어요.”
”뭐?”
놀란 정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일을 어쩌냐 정이야.”
”꿈인 것만 같아요 삼촌.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아.. 그렇지. 정아. 어제 너희 아버지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어.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짚을 꼬아 짚신을 만들고 있었다. 대화 나누던 중 속이 안 좋으시다며 잠깐 눕겠다고 하시더구나. 그래서 그냥 쉬시라고 하고 잠깐 방을 나와 있었지.”
”네 그래서요?”
”방에 잠깐 누워 있다 보니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단다.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잠깐 깼는데 형님 생각이 나서 방에 가보았지.”
”살.. 려. 사람.. 살려.”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리더구나. 화들짝 놀래서 문을 열었는데. 형님 몸이 기괴하게 꺾여 있으시더구나. 입에는 거품도 묻어 있고 숨도 헐떡이시더라.”
같이 얘기를 듣던 월선과 정이는 눈을 감았다. 홍심은 여전히 자느라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 정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같은 증상으로 아버지도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는 마을 사람들과 월선의 도움으로 치러졌다.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자매는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다. 특히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정이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알 수 없는 시선을 땅에 뒀다.
”에고 불쌍한 것들. 아직 어린애들인데 어쩌다 부모가 먼저 가버렸나.”
”정이하고 홍심이는 봐줄 사람이 있는가요?”
”이 집안에 저주가 있다는 거 같아. 여기 오래 있으면 나한테까지 저주가 올까 봐 무섭네.”
모인 마을 사람들은 자매가 불쌍하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중이다. 월선은 그런 사람의 시선에 행여 자매가 다칠까 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정이야. 혹시 너희를 봐줄 친척 분이 계시니?”
멍한 눈으로 정이는 월선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며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월선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장례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자매와 월선만 집에 남겨졌다. 아이들이 걱정된 월선은 차마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자매에게 다가왔다.
”얘들아.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듣거라.”
정이와 홍심은 대답 대신 알겠다는 눈빛을 보낸다.
”정이도 알다시피 홍심이가 신내림을 받기 전까지는 불행이 따를 거다. 하지만 정이는 홍심이를 신에게 바칠 생각이 없을 테고 내 생각에는 지금 강림하려는 신은 사악한 존재라고 확신한다. 어차피 신내림은 명목일 뿐 결국 몸을 뺏기는 처지가 될 거 같구나. 그래서 내가 방안을 좀 고민해 봤단다.”
월선은 차분하게 계획을 얘기했다. 정이만 괜찮다면 월선은 정이와 살고 신내림을 피하기 위해 홍심을 평소 알고 지내는 주지 스님이 계시는 절에 맡기는 방법이다.
”법주 스님이라고 하는데 거기라면 홍심이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게다.”
”아주머니 그게 정말인가요?”
월선의 계획에 정이는 깊은 관심을 보인다.
”언니! 난 싫어. 엄마 아빠도 돌아가셨는데 우리까지 헤어져야 해? 난 싫어!”
”홍심아. 언니도 싫어. 하지만 우리 힘으로 신에게 벗어날 방법이 없어. 자주는 아니어도 언니가 널 만나러 갈게.”
하지만 정이는 몰랐다. 이 대화가 홍심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리라고.
”먼저 간 내 아내는 홍심이에 대한 후회가 커져 있었어. 언니로서 무책임하게 동생과 헤어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
”그러셨군요. 상심이 크셨겠네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때문에 창훈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다. 앞에 놓인 휴지를 뽑아 전해드렸다.
”내가 승호 군에게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아내를 애도하고 싶어서는 아니라오. 혜인이가 죽고 나서부터 아내는 부쩍 홍심의 얘기를 많이 했지. 꿈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홍심이가 떠올랐다고도 하고 죽은 혜인이 옆에 같이 있는 모습도 봤다고 하더군. 심증은 확신으로 변하며 홍심을 만나야 한다고도 얘기했다네.”
”아버님 혹시 제가 전화로 얘기드린 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