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11

홍심의 꿈

by 고성프리맨

“엄마. 홍심이에 대해 할 얘기가 좀 있어요.”

”밭일하고 들어와서 좀 피곤한데 다음에 하면 안 되겠니?”

”하지만 이건 좀 중요한 얘기라서요.”

”알았다. 빨리 얘기해 주렴.”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며 정이는 내심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다 듣고 난 엄마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아닐 수도 있지 않겠니? 우리 집엔 무당 하던 사람도 없었단다.”

”그래도 좀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한 번 지켜보자.”


정이는 엄마의 반응에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일 월선 아주머니를 만나봐야겠어.’


”홍심아. 오늘 다쳤던 상처는 좀 어때?”

”이제 괜찮아. 근데 언니 오늘 얘기 들어서 그런가 잠자기 무서워.”

”언니가 옆에서 꼭 붙어서 잘게. 어서 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리다가 자매는 잠이 들었다.




집이 불타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홍심이 눈을 떴을 땐 밖에서 자고 있었다.


”엄마! 언니! 아버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는데 눈앞에서 집은 타고 있는 상황이다. 그때 불속을 뚫고 누군가가 걸어온다. 가족이 아닐까 싶었는데 화염 덩어리의 무언가가 걸어온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며 이대로라면 홍심이의 몸도 화염과 하나가 될 거 같다.


”나와 혼인하자.”


마음속에서 울림 같은 소리가 느껴진다.


’네? 누구신가요?’


”나는 너이고 너도 내가 되어야 한다.”


알아듣기 힘들지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인 운명이다.”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언니의 목소리다.


”언니!”


언니의 몸에 불길이 거세다. 얼굴은 반쯤 녹아내렸다.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언니! 내가 갈게.”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와 혼인을 하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부터 사라지게 해 주마.”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언니를 살려주세요."

”나를 받아들일 생각인가?”

"전 모르겠어요. 아직 어려요."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머리가 복잡하고 쓰러질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눈앞에 불타는 언니를 그대로 보는 것도 견딜 수 없다.


”네. 시키는 대로 할게요. 제발 언니는 살려주세요.”

”뜻대로 될지어다.”




”언니!”


눈이 번쩍 떠졌다. 옆에서 언니가 자고 있다.


’꿈이었구나.’


홍심의 목소리가 현실 속에서도 들렸는지 정이도 눈을 떴다.


”홍심아 무슨 일이야?”

”언니. 나 어떡해. 이게 신내림인가 봐.”

”무슨 얘기야. 알아듣게 말해줄래?”


자세히 들은 정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따 월선 아주머니를 만나러 가자. 방법을 알려주실 거야.”

”정말 그럴까? 근데 꿈에서 내가 결혼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는 걸까?”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어떻게든 쫓아내 줄게.”

”언니가 다칠까 봐 너무 무서워.”

”내가 잘못되더라도 널 지킬 거야. 반드시.”


아침 일찍 월선을 만나러 자매는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 날이 흐리다. 구름도 검은빛이 감도는 게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한 번 가봐서인가 월선의 집을 찾는 건 수월했다.


”월선 아주머니. 계세요? 저희 왔어요.”


잠시 후 월선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월선의 모습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옷매무새도 단정하고 얼굴 단장도 한 모습이다.


”일찍 왔구나. 오늘 너희들이 올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집터를 둘러보고 느꼈는데 홍심이에게 들어가려는 신은 보통 존재가 아닌 거 같더구나. 분명 하루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정이는 홍심이 꾼 꿈 내용을 차분히 전달했다.


”홍심아. 신을 받아들이겠다고 확실히 전달한 것이냐?”

”잘 모르겠지만 무서운 마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한 느낌이 들어요.”

”큰일이구나. 며칠 안에 신내림 굿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아주머니 홍심이를 노리는 신을 떠나보낼 방법은 없나요?”

”하아. 장담은 못 하겠구나. 약조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방안을 써봤을 텐데 일단 신병 증상이 곧 나타날 게다.”

”부탁드려요. 제발.”

”일단 신을 달랠 수 있는 제사를 해야 하는데. 한다고 해서 쉽게 떠난다는 보장이 없단다. 아니라면 대신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단다.”


정이는 홍심을 쳐다본다. 홍심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언니인 제가 대신 받으면 안 될까요?”

”안된다. 넌 신을 받을 수 있는 몸이 아니란다. 자칫 잘못하면 신의 노여움 때문에 화를 입을지도 몰라. 홍심이에게 깃드려는 신은 강한 존재이기도 하고.”

”그래도. 홍심이를 돕고 싶어요. 전 기꺼이 그럴 거예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 내일부터 계속 우리 집으로 오려무나. 굿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한 번 해보자꾸나.”

”아주머니 감사해요. 그런데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저희 부모님은 가난하세요.”

”되었다.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일 테지. 나도 아이가 있었단다.”

”결혼하셨었어요?”

”무당은 결혼을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그리되었었어.”

”아이는 어디 있어요?”

”엄마를 잘못 둬서 멀리 가버렸어.”


괜한 얘기를 꺼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정이였다.


”괜찮다. 다 지난 일이고 내 잘못이지. 너희를 보니 문득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홍심이 정도 되었을 거 같구나.”

”죄송해요 아주머니.”

”해보자꾸나. 하나 명심해야 해. 잘못되면 나도 너희도 큰 화를 입게 될 게다.”

”전 각오가 되어 있어요. 동생만 괜찮다면요.”

”언니.”


월선과 이야기를 마친 자매는 내일 만나기로 약속하고 길을 나섰다. 몇 시쯤이나 되었을까. 날이 캄캄해져가려고 한다.


”나 때문에 잘못된 거야.”

”아니야 홍심아. 네 잘못이 아니야. 신이 잘못한 거야.”


걷던 중 길가에 먹음직스러운 버섯이 보인다. 잠시 멈춰 서서 이리저리 살펴본다.


”버섯이나 따가자.”

”이건 먹어도 돼?”

”응 전에 엄마랑 따봤던 버섯이야.”


앞날이 걱정되었지만 정이는 어떻게든 홍심을 지켜내겠다는 생각뿐이다.


’홍심인 내가 꼭 지킬 거야.’

이전 11화목회자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