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스님 안에 계세요?”
낮잠을 주무시는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월선이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법주 스님이 나오셨다. 보통 체격에 특별하지 않은 인상이다. 하지만 눈썹이 짙고 힘 있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법주 스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왔다. 나이가 들으니 낮잠을 안 자면 하루가 많이 피곤하단다. 나도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허허.”
”여전하시네요.”
”전에 편지에 썼던 아이들이니?”
”네. 맞아요.”
정이와 홍심은 헤어짐을 직감했는지 더욱 손을 꽉 부여잡았다. 홍심의 마음이 일렁거리며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쌍한지고. 키가 큰 네가 정이고 이 쪽이 홍심이렸다?”
월선이 자매를 보며 대답을 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스님. 안녕하세요 이정이라고 합니다. 이 쪽은 제 동생 이홍심이고요.”
”안녕하세요. 홍심이예요.”
낯섦에 홍심의 목소리가 땅끝으로 기어가듯 사라진다.
”홍심아. 천천히 시간을 가져보자꾸나. 월선아 오늘은 다 같이 여기서 하루 자고 가면 어떻겠니? 나도 집안일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참 편하겠구나.”
”아이들도 인사를 나눠야 할 테고 내일 일찍 떠나겠습니다.”
자매는 그래도 오늘 하루 같이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기쁨을 느낀다.
저녁을 먹고 정이와 홍심은 사랑방으로 갔다. 월선과 법주스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월선아. 홍심이의 몸을 뺏으려는 악귀를 보았다고 했지?”
”네.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의 사악함을 가진 강한 존재였습니다.”
”흠. 홍심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든 보호해 볼 수 있겠다만.. 사악한 악귀가 언젠가는 뜻을 이루지 못한 복수를 할 텐데. 걱정이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방도가 없겠습니까?”
”내가 한 번 만나봐야 할 거 같다. 조만간 홍심이에게 깃드려는 악귀를 불러내 보마. 그때 나를 도와주러 네가 와줘야겠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알겠다. 홍심이 보다도 정이가 걱정이구나. 너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놓겠지만 혹시 모르니 내가 법력이 담긴 목걸이를 하나 줄까 한다.”
”감사합니다. 정이를 지키기에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언니? 자?”
”아니 아직 안자. 미안해 홍심아. 언니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말을 하다 눈물이 흐르는 정이였다. 그런 정이의 마음을 아는지 홍심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언니가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 하지 마. 그리고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맞아.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지. 오늘 보니 법주 스님 좋으실 거 같더라.”
”난 좀 무서워 보이던데. 언니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돼.”
”스님말씀 잘 들어야 해. 나도 월선 아주머니 잘 도와야겠지. 우리 서로 최선을 다하자. 언젠가 꼭 같이 살자.”
”사랑해 언니.”
”나도 사랑해 홍심아. 이리 와봐 우리 안고 자자.”
정이의 품에서 홍심은 큰 위안을 얻었다. 품에 안긴 홍심을 보며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정아 갈 시간이 되었어.” 월선이 깨우는 목소리에 자매의 눈이 떠진다. 정이는 일어나자마자 홍심의 모습을 살펴본다.
’정말 헤어지는구나. 하지만 오늘은 결코 울지 않을 테다.’
”홍심아. 이제 언니 가야 해.”
”언니!”
홍심은 갑자기 응석을 부리며 정이를 잡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며 마음을 접는다.
”홍심아. 다음에 언니 데리고 다시 오마.”
”네. 언니 잘 부탁드려요 아주머니.”
”걱정 마라.”
”누가 누굴 걱정해. 너나 법주 스님 말씀 잘 들어. 언니가 꼭 만나러 올게.”
가져갈 짐도 없이 월선과 정이가 문 밖으로 나왔다. 법주 스님이 밖에서 염불을 외우며 염주를 만지고 있다.
”정이야 이리 와 보렴. 목걸이 밖에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법력이 깃든 나무와 불경을 새겨 넣은 목걸이니 꼭 착용하고 다니거라. 어느 정도 널 지켜줄 수 있을게다.”
”감사합니다 법주 스님.”
목걸이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보고 정이는 목에 걸었다.
”스님 다음에 오겠습니다.”
”그래. 정이를 잘 부탁하마. 무슨 일 생기면 꼭 서신 하고.”
”네. 몸 건강히 계세요. 홍심아 다음에 보자.”
”홍심아 언니 갈게. 말 잘 듣고.”
말을 꺼내면 울 거 같아 홍심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든다. 덤덤해 보이는 홍심의 모습에 정이도 마음을 들키지 않고 싶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월선과 정이의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홍심은 바라봤다.
”들어가자 홍심아. 지금 헤어진다고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니요. 같이 있다고 헤어짐이 없는 것도 아니란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대로 맞추면서 사는 게지.”
”네 스님.”